수영-함께 살기

세상은 살아가기 힘든 곳이지만 쉽게 살 수 없는 곳도 아닐 것이다.

by 글쓰는 금융인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중에서

세상은 살아가기 힘든 곳이지만 쉽게 살 수 없는 곳도 아닐 것이다.

수술을 받기 위해서 시작한 휴직이다. 그런데,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했다. 재발 가능성이 있다고.


어린 시절 수영장이 너무 무서웠다. 수영과 담을 쌓고 지내다 성인이 돼서 다시 배울 결심을 했었다. 하지만 실패했었다.


전신마취 수술을 할 때 산소호흡기를 하고 “하나 둘 셋”하고 타임아웃이 된다. 죽으면 이런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남은 인생이 길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도전 해보기로 했다.


휴직을 하고 어려운 점은 아침에 일어나기 싫다는 것이었다. 회사를 안 가니 계속 잠만 자고 싶었다. 아이를 등교시키려고 일어나는 것 조차 싫었다. 내가 하기 싫은데 남을 하게 만드는 것은 더 고역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영에 재미를 붙이니 저절로 눈이 떠졌고 아이는 부산하게 준비하는 나를 보면서 부시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오전 9시 수업이라 아이를 8시 30분에 등교시키면서 같이 나와야 겨우 수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 반은 25명이었다. 유아풀에서 하는 수업이라 물이 얕아 무섭지 않았지만, 단체수업이라 오랜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춥고 힘들었다.

수영장.jpeg

대기 줄에 서서 앞뒤 사람과 이야기를 하며 내 또래를 찾게 되었다. 샤워실에서 서로 알몸을 보아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친근했다.


몇몇 사람들이 수업 후 커피를 마시자고 했지만 거절했다. 혼자서 공부하고 일하는 것이 좋고,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나는 수다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나의 생각을 말해봐야 타인은 싫어할 것이고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무런 목적이 없는 수다는 효율적이지가 않아 시간 낭비라고 느껴질 뿐이다.


무엇보다 정석대로 살아온 나는 수영을 배우러 왔으면 이것을 해야지 사람 사귀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있었다.


수영 수업 후 나는 골프를 잡아 두었기 때문에 커피모임에서는 자연스럽게 빠졌다. 그러던 중 수영을 같이 배우는 사람이 골프장에 있는 것을 보았다. 너무 반가워서 말을 걸었다.


나와 동갑으로 나처럼 은행에서 일하고 있었다. 공통점이 있어 그런지 대화가 즐거웠다. 그렇지만 짧은 대화 후 헤어졌다.


내가 사정이 있어 수업을 잠깐 쉬게 되었는데, 그 사이 우리 반은 오리발을 나가게 되었다. 오리발은 자세를 잡기 위해서 신는 도구이다. 선생님이 나의 연락처가 없어서 난처해하자 그 친구가 대신 나에게 연락을 주어 준비물을 제대로 챙길 수 있었다. 친구는 상세하게 자기는 어떤 것을 샀고 사이즈는 어떻고 하는 식으로 알려주어 내것을 준비하는 것도 수월했다. 그것을 계기로 더 친해졌고, 둘이 따로 식사도 하게 되었다.

오리발.jpg 오리발

알고 보니 그 친구는 사람들 사귀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겸손이 몸에 배어 있는 친구 주위에는 같은 반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었다. 덕분에 나도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빨리 가려면 혼자서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고 했다. 아이가 아파 수업에 못 가다 보니 진도가 많이 떨어져서 금세 권태기가 왔다. 하지만 수영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떨어야지 생각 하니 눈이 떠졌다.


세상은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제일 어려운 점은 어느 병원을 가야 하는 것 인가다. 젊은 시절에는 많이 아프지도 않았고 어디 병원을 가도 잘 나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좋은 병원을 찾아다녀야 겨우 낫게 되는 것을 느꼈다. 오래된 친구들은 사는 곳이 다르고 인터넷으로 얻는 정보는 광고 같기만 한데, 수업을 같이 듣는 사람들은 동네가 같다 보니 병원 정보를 교환하기 좋았다. 목적 없는 수다의 목적은 친목을 도모하는 것 그리고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라는 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자유형이 제일 힘들었다. 숨을 쉬려고 밖으로 나와도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서 25미터 밖에 안되는 레인을 서지 않고 가는 것이 안되었다. 물속에서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기분도 여러 번 느꼈다. 그런 것을 친구한테 이야기하면 폭풍 공감이 돌아왔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 힘이 되었다.


나는 숨이 찰 때마다 전신마취 수술에서 깨어날 때를 생각했다. 폐속까지 느껴지는 그 매캐한 공기를, 잠이 오는 대도 밖으로 그것을 내뿜어야 해서 병실에 걸린 시계를 보며 들숨 날숨을 하던 그 때를 말이다.


25미터를 처음으로 완주하던 날, 다시 수술 받을 준비가 되었다며 스스로 기뻐했다. 수영 친구도 같이 기뻐해 주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내 친구는 사라지고 아이 친구 엄마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누구의 엄마가 되면 아이가 먼저 떠오르고 그 엄마가 보인다. 하지만 아이가 매개가 되지 않고 사귄 친구들은, 그 사람이 보이고 나도 나 자신 일 수 있다.


세상은 살아가기 힘든 곳이지만 “함께 하면” 쉽게 살 수 없는 곳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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