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자유는 필요하지 않다.
휴직을 하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아이의 여름 방학이 다가왔다. 한 달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이번 방학이 너무 기대가 되었다.
워킹맘이 되고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니, 방학은 풀기 어려운 숙제였다. 여름에 한 달, 겨울에 두 달.
무언가 의미 있게 보내야 하는 것 같은데, 일을 하는 입장에서 무얼 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인데 내가 처음으로 휴직을 하였으니, 자유롭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한 달 살기 : 동남아 혹은 호주, 제주도
장기 여행 : 유럽, 미국
비용을 따져 보았다. 한 달 살기는 동남아로 가면 천만원, 호주로 가면 이천만원이 나왔다. 제주도는 어느 집을 구하는가에 따라 비용이 크게 달라졌다. 장기여행도 영미권으로 가면 천만원 이상 나올 것 같았다.
장단점을 따져보았다. 해외에서 살게 되면 국제학교나 영어학원에 캠프를 등록하는데, 동남아로 가면 아이는 학원에 간 사이 나는 골프를 치러 갈 수 있었다. 그런데 한달이라는 시간동안 아이의 영어가 크게 늘 것 같지는 않았고 내가 골프를 혼자 그렇게까지 쳐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기여행은 힘들고 아이도 기억을 못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알아보기만 하다 결국 방학이 다가왔다.
아이 숙제를 봐 주는데, 아이가 하기 싫다며 짜증을 부렸다. 여행으로 아이를 꼬셨다. 내가 휴가를 낼 필요도 없고 남편에게 휴가낼 수 없냐고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운전이 서툰 나는 KTX로 갈 수 있는 부산 해운대를 즉흥적으로 선택했다.
수영장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둘이 여행가자고 했다. 가성비를 따져가며 수영장이 있는 해운대 호텔을 예약했다. 성수기라 정말 비쌌다.
여행 당일 아침, 부산이 어딘지 감이 없는 아이는 크록스를 신고 나를 따라나섰다.
짐을 둘러메고, 집을 나섰다. 아이와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에 가서 부산으로 가는 KTX를 탔다. 고사리 같이 작고 따뜻한 손이 나의 손을 맞잡고 여기저기 살피며 나에게만 의지해서 따라오는 아이를 보면서 내가 엄마구나 하고 느꼈다.
제대로 휴직 한번 하지 않고 아이를 만9세까지 키운 나는 매사에 서툰 초보 엄마였기 때문에 그 느낌이 너무 소중했다. 아이에 관해서는 항상 이모님들의 의견을 중시하고 나는 살짝 주눅이 들어있었다.
아이 옷을 사도 이모님이 그 옷이 너무 작아서 내년에는 못 입히지 않겠냐고 하면 내가 마음에 들어도 곧 생각을 바꾸어 옷을 교환하곤 했다. 이모님의 비위를 거슬러 혹시나 그만두신다고 할까봐 노심초사했었다.
휴직을 하면서 처음으로 이모님을 쓰지 않고 살림과 육아에 홀로서기를 하고 있는 내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KTX안에서 아이는 책상을 펴고 간식을 먹고 가져간 놀이를 하며 몇 시간을 잘 버텼다. 부산역에서 숙소까지 또 지하철을 타고 갔다. 부산 지하철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신기하게 봤고, 나 역시 그들을 신기하게 봤다.
가성비를 너무 따졌던 것일까? 도착한 호텔 내부는 을씨년스러웠다. 영화에서 살인이 일어났던 여관 화장실을 연상시킬 만큼 으스스했다.
루프탑 수영장으로 갔는데, 그 곳 역시 수영을 하고 싶은 비주얼이 아니었다. 해운대는 아주 조금 보이고 대부분은 공사를 하고 있는 다른 호텔이 보였다. 분명히 블로그 사진은 좋았는데.
그래도 아이는 수영을 하겠다고 했고 내심 고마웠다. 수영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는 심상치 않았다. 한 번 수영장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바로 밥 먹고 다시 들어가겠다고 했던 아이였는데 오늘은 다시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날 밤부터 열이 났다. 다음 날 당장 병원을 검색해서 갔다. 병원에서는 폐렴이 유행을 하다며 항생제를 주었다.
항생제를 받아서 먹이고 돌아다니는데 아이는 5분을 걷지 못했다.
그래도 꾸역 꾸역 좋은 곳을 찾아서 애견 카페를 가고, 슬라임 카페를 갔다. 해운대가 바로 앞에 있었지만 바닷가는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파리 올림픽이 한창이라 티비는 볼 것이 많았다. 낮에 떨어졌던 열이, 밤이면 다시 올랐다. 나는 물수건을 만들어 하염없이 아이를 닦아주었다. 그러다 까무룩 잠이 들었던 아이는 이내 깨서는 몸에서 아플 수 있는 곳은 모두 아프다고 발악을 했다.
체온계가 없어서 몰랐지만 40도가 넘었던 것 같았다. 일이 잘 못 될 것 같은 기분, 아이를 잃을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그러다 날이 샜다. 아침 일찍 다시 병원을 갔는데, 이상하게 병원에 가면 열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예정했던 여행을 모두 마치고 다시 KTX에 몸을 실었다. 돌아오는 길에서 젤리를 먹으면서 배시시 웃는 아이를 보며 다행이다 하고 안심을 하기도 했다.
동네 소아과에 갔다. 엑스레이 상에서 명백한 폐렴이었다. 부산에서도 분명히 폐렴을 의심했는데, 항생제 양을 턱없이 적게 주어서 낫지 않았다고 했다. 옛날에는 폐렴으로 사망을 하기도 했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에 다시 한번 놀라고 절망했다.
동네 소아과에서 받은 약을 먹여도 아이 열이 다시 올랐다. 그렇게 근 한달을 앓고 나서야 아이는 예전으로 돌아왔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부쩍 커 있었다.
방학 내내 나는 아이를 그냥 껴안고 누워 잤다. 매일 아이와 아침 점심 저녁을 만들어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휴직 첫 방학은 폐렴으로 시작해서 폐렴으로 끝났다.
무엇을 위해서 여행을 갔던 것인가. 차라리 휴직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자책을 했다.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려고 했던 의도와 달리 고생하는 아이를 보며 내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아이가 폐렴을 극복했을 때 나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
첫째, 내가 할 수 있구나. 아이를 낳고 휴직을 하지 않았다. 돈의 중요성과 무서움을 아는 나는 쉴 수가 없었다. 아이는 입주아주머니의 손에, 친정엄마의 손에 맡겨졌다.
결혼을 하고 살림을 내가 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이모님에게 주눅이 들어 있는 나였다.
하지만 처음으로 내가 계획해서 여행을 가고, 아이를 아프게 하고, 아픈 아이를 다시 내 손으로 살려냈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자신감이 되어 돌아왔다.
나도 할 수 있구나. 내가 아이의 엄마구나.
둘째, 내가 아이를 본다고 더 낫지 않구나. 그렇게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었구나. 직장을 나가지 않고 아이의 방학을 온전하게 내가 책임졌던들 더 나은 결과가 오지도 않았겠구나.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자유는 필요하지 않구나.
너무 많은 자유 속에서 선택을 하는 것은 어렵다. 어느 정도의 제약은 삶에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많지 않다고 해서 괴로워할 필요도 없다.
아이와 국내 추천 여행지
1. 부산: KTX로 떠나기 좋음
2. 강릉 (평창에서 1시간 거리):
오죽헌 (조선 전기 사대부집, 신사임당과 율곡이이 생가),
평창에서 루지타기,
라마다 호텔 사우나 좋음,
강릉 커피거리,
물회먹기
바닷가
- 오죽헌에 들리기를 추천한다. 문화 해설사의 시간에 맞추어 가면 더 좋은 경험이 된다. 오죽헌 내부에는 화폐박물관과 율곡이이 기념관 등 볼 것이 많다. 아이가 가기 싫어 한다면 그 앞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이 있다며 꼬셔보자. 오죽헌 앞에는 맛있는 빵과 아이스크림 카페가 있다.
율곡이이 자경문 중 용공: 수양과 공부는 서두르지 않고 계속한다.
지금까지 빨리 많은 것을 습득하는 것을 최고로 여겼다. 하지만 율곡이이의 자경문을 읽으며 "서두르지 않고 계속"하라는 문장이 뇌리에 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