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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May 14. 2022

26.<가족, 변하지 않는 힘에 대하여>

3주 동안 읽고 있는 책들이 있다.

[방구석 미술관] 이후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2권]을 시작으로 [반 고흐가 그린 사람들],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반 고흐 이야기]이다. 

가볍고 편안하게 읽혔던 [방구석 미술관]이라는 책에서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된 영혼의 편지를 읽고 나니, 단 한번 사는 삶 속에서 저마다 살아내는 방식이 다채롭게 느껴진다.   그래서 자신의 작품에 영혼을 불태운 고흐에 대한 여러 책들을 몇 권 더 찾아 읽게 되었다.   빈센트 고흐와 동생 테오의 영혼의 편지는 고흐의 인생을 깊이 있게 바라보게 한다. 그림뿐 아니라 예술에 대해 깊은 고뇌와 성찰이 느껴져 고흐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한 것이다. 빈센트는 지독한 가난, 고독, 예술에 대한 끝없는 집착, 발작, 요절 등으로 37년의 짧은 생애를 극적으로 살며 강렬한 작품을 남겼다. 고통스러운 삶의 흔적을 그림을 통해 발현시키고 승화시킨 것이다. 테오와 빈센트는 속마음을 거리낌 없이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 형제애를 넘어 예술을 향한 강한 열정이 가득하며 예술가로서 삶이 얼마나 숭고하고 순수했는지를 보여준다.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은 그의 수많은 작품과 글들이 빛을 보기까지는, 요한나 봉어의 노력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요한나 봉어는 바로 테오의 아내이다. 1862년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나서 런던에 있는 대영 박물관에서 일했고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녀는 파리에 살 때 친구 소개로 테오를 만나 1889년에 4월에 결혼을 했고 그 둘 사이에 아들을 하나 두었다.

요한나 봉어의 결혼 생활을 생각해보면 월급의 일부는 형에게 보내졌고, 또 일부는 시댁에 보내졌다. 매달마다 시댁 식구들에게 보내지는 금액은 아마도 봉어에게는 많은 스트레스를 주었을 것이다. 거기다 결혼하지 1년이 지난 무렵 빈센트가 죽고, 6개월 후에는 남편 테오도 죽었다. 애 딸린 과부가 된 것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잘 팔리지 않은 아주버님 빈센트의 그림들이었다. 요한나 봉어는 남편을 잃고 유품을 정리하면서 800여 통의 테오와 빈센트가 주고받은 편지를 읽어보고 천재적 빈센트를 알아보게 된 것인지 그의 일기장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한다.


“테오가 미술을 많이 가르쳐 주었다. 아니 다시 말해서 인생에 대해서 많은걸 가르쳐 주었다. 이제는 아기를 키우는 일 말고 내가 해야 할 다른 일이 있다. 아주버님 빈센트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고 제 가치를 인정받게 만들겠다. 남편 테오와 빈센트가 그동안 모은 이 보물을 아기를 위해서 잘 보존해야겠다. 그게 내 일이다”                                                                                             

                                                                                                    -요한나 봉어의 일기 중에서-

물론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은 때를 기다리면 천재적인 그림이라 저절로 잘 팔릴 수도 있었겠지만, 요한나 봉어는 집에 빈센트 전시관을 만들어 연락을 통해 구경 온 인사들에게 작품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개인전을 열고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하기도 한다. 바로 ‘빈센트 거장 만들기 사업’을 위해 돈을 들이고 노력을 하였다. 사람들이 빈센트의 작품을 보지 않는다며 자신에게 감동을 주었던 편지를 출간도 한다. 자신이 번역한 편지를 가지고 빈센트의 이야기를 들고 뉴욕의 출판사를 쫓아다녔고, 책을 출간하게 된다. 그래서 빈센트는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바로 거장의 위치에 오르게 된 것이다. 요한나 봉어는 빈센트를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화가로 만든 것이다. 엄마 요한나 봉어가 세상을 떠나자 조카 빈센트도 삼촌 빈센트를 알리는 데 남은 인생을 바쳤다.

빈센트와 우애 좋은 테오가 요한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형제를 이해하지 못했더라면 우리는 빈센트라는 거장을 모르고 살았을지 모른다.


연속 3주째 토요일마다 결혼식이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미뤄졌던 결혼식을 여기저기서 하는 것 같다. 오늘은 남편의 오촌 되는 친척의 결혼식을 시아버지와 남편과 함께 다녀왔다. 선남선녀의 희망찬 축복의 시작을 보면서 젊고 아름답다는 느낌뿐 아니라 새로운 인생을 펼치게 될 그들의 삶에 응원과 박수를 보내게 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예식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25년 전 나의 결혼식과 결혼생활을 돌아보았다. 결혼 후 처음에 알지 못했던 시댁의 어르신들과의 관계들, 신혼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얽히고설킨 인간관계들을 만나게 된다. 살다 보니 결혼은 서로 좋아 사귀는 일대일의 관계가 아니라, 살면서 집안과 집안의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옆에는 처음 만났을 때 무척 어려웠던 아버님은 사라지고. 보살피고 섬겨야 할 백발의 힘없는 노인이 된 시 아버지가 앉아계신다. 시간이 빠르다는 생각을 하면서 남편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이 좋은 분을 어찌 만났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결혼 후 첫 아이를 낳고, 교육 사업에 뛰어들면서 늦게 대학원에 진학했다. 뱃속에는 이미 둘째를 임신한 상태였다. 그리고 방학에 맞추어 둘째를 낳고 키우면서 대학원을 마쳤다. 이 와중에 남편도 대학원 진학을 같이 하게 되었다. 남편과 나는 사업과 회사 그리고 학업에 24시간을 정신없이 보냈다. 바쁠 때 우리 옆에는  아이들을 대신 키워주신 시부모님이 계셨다. 그때를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이 절로든다.   연로해져 가는 몸으로 힘들셨을 텐데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고 대가 없이 아이들을 키워주셨다. 그 덕에 학업을 잘 마치고 이후 셋째 아이까지 출산을 했다. 아이를 키우는데 어려움 없이, 하고 싶은  일에 충실할 수 있었던 것은 희생적인 시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인생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자식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고, 가족 또한 선택할 수 없다. 다만 엮어진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고 좋은 관계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가 중요할 것 같다.

10년 간 빈센트에게 경제적 원조를 해주고 정신적으로 버팀목이 되었던 동생 테오나, 세상을 떠나기까지 빈센트를 유명한 화가로 만든 요한나 봉어와 조카 빈센트처럼, 내게도 가족과 새로운 관계들이 생겨났고 유지되고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삶에 있어서 가장 큰 아픔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인생의 버팀목도 될 수 있다. 인간은 인간을 향해 사랑받고 지지받는 마음이 있어야만 살아갈 에너지가 생긴다.  살아가는데 절대적으로 강력한 힘은  가족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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