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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Aug 06. 2022

give and take말고give and give

어깨와 손가락에 염증이 재발해 도수치료를 받으러 동네 정형외과에 갔다.  익히 알고 있는 치료사 실장님을 만났다. 40대 중반에 결혼하여 결혼한 지 1년째이고 아내가 임신 3개월이다.  

익숙하게 아픈 회전근개 부분을 체크하신 후 전기자극 치료를 시작했다.  

“결혼하니 좋으시죠?” 나는 통증 완화를 위해 말을 걸었다.   “좋지요. 하지만 자유를 잃어버렸습니다.”라고 실장님은 말하며 헛헛한 웃음을 짓는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 게  세상 이치죠. 안정은 얻었지만 자유를 뺏겼군요 하하하.” 나의 웃음에 그도 따라 웃었다. 

“밥 먹고 자는 것 심지어 옷 입는 것 헤어스타일까지 어느 것 하나 내 마음대로 하질 못합니다.” 투정 속에 풋풋한 신혼의 즐거움이 느껴져 웃음이 나왔다. 

“요즘은 임신 중이라 요구사항이 많아요. 퇴근 후, 오빠 곱창 먹고 싶어요. 아이가 먹고 싶나 봐요”라고 해서 배달시켜주니 한입 먹고는  밀어내고 오빠 곱창은 아닌듯해요. 짜장 먹고 싶어요”라고 해서 짜장도 시켜줬다 한다.  한 그릇만 시킬 수 없어 짬뽕까지 덤으로 시켰는데 이것도 한 입 먹고 맛이 없다 했다 한다. 남은 음식들이 아까워 버릴 수 없으니 랩으로 꽁꽁 싸 냉장고에 넣어놓고 남아있는 음식을 하나씩 처리하다 보면  옆에서 "사랑하는 여보, 오빠는 참 게걸스럽게 아무거나 잘 먹어서 좋아. 복스러워”라고 말한단다. 태어나서 그렇게 맛없고 차가워진 불어 터진 짜장이나 곱창은 처음 먹어 보는데 먹는 게 복스럽다니 칭찬인지 욕인지 행복인지 불행인지 본인도 헷갈리고 어이없다했다.

“그래서 결혼 후회해요?” 나의 물음에  실장님은 1초도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아니요 좋습니다.  우리 여보가 아이를 갖게 되니 모든 자유를 빼앗겼지만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합니다.”

“한용운의 복종이군요.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만 나는 복종을 좋아해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다는... 하하하, 실장님의 미래의 모습 알려드릴까요?”  

“네?  미래를 예견도 하시나요?”

“오늘 저의 남편 점심 메뉴는 식탁 위에 내 팽개쳐진 아들이 남겨놓은 닭 가슴살 반쪽과, 에너지바 반절 그리고 딸이 잘라먹은 옥수수 반쪽, 그리고  오늘 점심이 지나면 상하게 될지 모르는 어제 남은 된장찌개와 샐러드입니다. 일명 잔반 처리 담당인 거죠”  

“아, 나중에 저도 허허허 이게 시작이고... 저의 미래의 모습이 그려지네요. ” 우리는 서로의 처지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공감하는 얼굴로 즐겁게 한참을 웃었다. 

결혼 후 남편과 나는 참 많이도 변했다.   남편이나 나나 비위가 약하고 깔끔하지도 않으면서 얼마나 깔끔을 떨었는지 모른다.  잔반 처리 같은 것은 꿈에서 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세 아이를 키우면서 적지 않은 난관과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우리가 가진 성격보다 더 무난하고  털털해졌다.    경제적인 선택에서도 실제적인 가성비와 실용성을 더 따지게 되었다.  남편의 비위는 어느 정도로 좋아졌냐면 베트남의 '고수'를 먹을 정도다.  고수는  한국인들 대부분이 싫어하는 향미가 이질적인 허브의 한 종류다.  남편이 먹으면서 하는 말 “난 전생에 베트남인이었나 봐.  고약한 냄새나는 빈대풀인 고수가 맛있어!"라고 얘기했다.  그리고는 중국에 갔을 때도 느끼한 음식들을 어찌나 잘 먹는지 다시금 전생을 운운하며 중국인으로 변해 있었다.  

한 때 남편은 대기업을 그만두고 변리사 공부를 해보고 싶어 했다.  나 또한 대학원 동기들이 박사과정을 들어갈 때 같이 공부하고 싶어 했고  그림이나 문학도 깊이 탐구해 보고 싶었다.  물리적으로 정해진 시간과 한계가 있는 금전적 비용을  생각하며 배움에 대한 합리성을 무척이나 따졌었다.  물론 그 결과는 기회비용이 많이 드는 관계로 진행하지 않았다.  세 아이의 부모로 정신없이 살다 보니 우린 어느새 흰머리가 희끗거리는  50대 중년이 되어있다.

다섯 명의 가족이 모이면 집안이 꽉 찬다.  가족도 엄연히 인간관계이다.  자녀가 크고 자기 생각이나 자아를 확립한 단계라면  관계는 더 복잡 해질 수도 있다. 가치관 생활양식 종교 정치관 등이 다르면 서로 간에 갈등은 계속되고 증폭되기도 한다.  이런 관계는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  또한 부모라는 위치는 인륜적 ‘내리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희생을 강요받기도 한다.  부모는 경제적 육체적 심리적 노력과 희생이 뒤따른다.

결국 가족이 된다는 것은 내가 가진 능력과 돈과 재능도 같이 공유하고 온전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그 노력은 큰 것이 아니다.  포도밭에 비유하자면 농부가 되어 내가 가진 소명과 재주를 총동원하여 잘 지켜내는 것이다.    탐스럽게 영근 포도가 가득한 포도밭이든  조금 부족해 보이는 포도밭이든 가정은 포도밭 같다.   농부가 포도밭은 지키기는  아주 어렵다.  하지만  허물기는 아주 쉬울 수 있다.   쉽게 허물어지는 이유는  작은 구멍이다.  그 구멍은 작은 것부터 시작한다.  날카로운 말, 무시하는 태도, 서로를 노엽게 만드는 언어와 행위들.... 많은 것들이 아주 작은 구멍을 만들어낸다. 자식이든 아내든 남편이든 서로의 관계는 연결되었을 때 뭐든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가정은 give and take 말고 give and give이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내가 한 일은 끊임없이 다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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