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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Oct 10. 2022

<사랑도 액체를 닮았다>








사랑도 액체를 닮았다 / 김혜진


정월 초하루가 되면

캄캄한 새벽길을 걸었다.

스물여덟 살 엄마는

구멍 뚫린 시루에 정성 어린

팥떡을 머리에 이고

인적 없어 낯설고 무서운 시골길을

어린 나를 의지하며 걸었다.


한참을 가다 멈춘 곳은

물에서 놀다 깊은 물에 빠져

죽은 아이들이 있는

마그네 다리가 있는 강가다


떡 위에 초를 꽂고

심지에 조심히 불을 붙인 엄마는

먼저 떠난 아이들의 넋과

남아있는 자들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무탈 없는 여름을 지켜달라고

손바닥을 쉴 새 없이 비벼대며 뜨겁게 달구었다


험한 말을 들어 슬펐던 내 입속에서

균형 잃은 깊은 미로 같은 귓속에서

구멍 뚫린 바지 주머니와

양말 속에 숨어 들어가

사는 게 힘에 부쳐 울고 싶을 때

쑥쑥 튀어나와 나를 토닥이며 안아준다


작은 촛불의 간절한 사랑이

여전히 내게 흐르며 숨을 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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