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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Sep 07. 2021

살면서 가장 억울했던 순간

"누군데요?”

내가 운영하는 학원 일만으로도 눈 코 뜰 사이 없이 바쁜데, 남편은 나를 도와주기는커녕 월요일부터 술 약속을 잡았다고 한다.

“오늘은 당신 당번인데........... 요즘 신입생 때문에 바쁜데 애 셋을 그냥 놔둘 순 없잖아요! 일찍 좀 와서 챙겨주면 안 돼?” 서로가 바쁘니 월수금은 남편, 화목토일은 내 담당으로 아이들을 챙기고 있었다.

“본사 사장님이야. 알고 보니 인연이 이렇게 깊은데 그냥 넘어갈 순 없잖아! 오늘이 제일 한가하대!  맥주 한잔하고  최대한 빨리 들어갈게!”

“휴, 알았어요. 우선 큰 애한테 동생들 잘 데리고 있어 달라하고  내가 최대한 일찍 들어가는 수밖에 없지!”

나는 남편에게 어쩌지도 못하는 심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영어학원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내가 가진 노하우로는 부족한 듯 싶어 괜찮은 프랜차이즈 어학원들을 알아보고 있었다.

애가 셋이나 되니 평일 날 방문하는 것은 무리이기도 하고, 상당히 많은 자본금을 투자하는 만큼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과 함께 찾아가 꼼꼼히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지난주에 두 군데를 선택했고 그 중 한곳을  방문하여 상담을 받은 상태다.

본사를 내방하여 알고 보니 교재 구성이 아주 체계적이며 차별성이 있었다.

커리큘럼의 단계를 놓고 제작자와 직접 만나 얘기하고 싶다하니 사장님이 직접 만나주셨다.  

그런데 사장님은 알고 보니 남편이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의 선배였던 것이다.

엔지니어로 일하던 분이 이렇게 방대한 영어 자습서들을 제작했다니 그 양에 놀랐고, 그 깊이에 믿음과 신뢰가 저절로 생기게 되었다.

오늘 만난 다는 사장님이 그 선배님이시라니 늦는다 해도 어쨌든 학원일은 나의 일이니 늦는다는 남편의 말에 나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자정이 넘고 새벽1시가 다 되는데도 연락이 없으니 은근 걱정이 되어서 전화를 걸었다.

“어디에요? 지금 비까지 오는데......” 9월의 날씨치고는 조금 쌀쌀한데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헤헤 마누라!여기 부~운당~, 3차로 투부저언골에 마악걸리 마시는 중. 조금 있다 들어갈게~”

이미 남편의 혀는 기분 좋게 꼬부라져 있었다.

“아니 너무 늦었는데 내일 출근도 해야 하고,  비가.........”

남편은 듣지도 않고 툭 전화를 끊은 채 다시 전화해도 받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다.   

하염없이 기다리다 잠이 들었다.

그러다 벨소리에 잠이 깼다. 아, 세시.

“여보세요?”

“아 저 대리기사인데요. 댁 지하 주차장에 왔는데 좀 나와 보셔야 할 듯해요!”

나는 얼른 현금을 준비하고 슬리퍼를 신고 주차장으로 갔다.

차문은 열린 채로 뒤 좌석에 있는 남편을 기사가 끌어내 주며 나에게 인계를 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비틀거리며 고개를 숙인 채 남편은 계속 히죽거린다.

“미아안해! 미아안해!”연거푸 미안하다 말하며 히죽거리는 남편을 나는 얼른 부축했다.

“아 냄새! 도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적당히 마셔야지 아휴 정말!”

“아아.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어요.” 나는 얼른 비용을 지불하고 남편을 옮기기 시작했다.

역겨운 술 냄새가 진동했다. 남편의 팔을 나의 어깨에 걸치고 질질 끌다시피 현관까지 가까스로 겨우 끌고 갔다. 남편은 신발도 벗지 않고 거실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거실에 눕힌 채로 대충 잘 수 있도록 하고 너무 피곤해서 나도 잠이 들었다.

겨우 일어나 밖을 보니 계속 비가 내렸다.

밥을 먹이고 아이들 학교 갈 준비를 서둘렀다.

중학생인 딸은 후다닥 친구들과 함께 우산을 챙겨 학교에 갔다.

둘째와 셋째는 학교까지 걸어가면 15분 정도 되는 거리지만 늦은 데다, 비가 오니 차로 데려다준다 했다.  

나는 우산 2개를 들고 4학년과 2학년인 아들들과 주차장으로 뛰었다.

“얼른 타라 얼른. 10분밖에 안 남았다. 서둘러 얘들아!” 하며 차문을 열었다. 순간

“아 엄마 냄새. 우웩! 엄마 차에 누가 토해놨어!”이건 분명코 오늘 새벽 발견하지 못한 남편의 흔적이다. 우리 셋은 동시에 토사물의 역겨운 냄새를 맡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둘째 앞에 타고, 셋째 뒷 자석! 얼른. 더러운 곳 피해 옆으로 딱 비켜서 붙어 앉아! 늦어서 선택의 여지없이 차로 가야 해!  금방이니까 조금만 참아!”

다급한 엄마의 신호에 맞추어 어리둥절한 아들들은 얼떨결에 차에 올라탔다.

하지만 나조차도 역겨워 창문을 내리고도 토사 냄새에 구역질이 나서 토할 것처럼 목구멍이 간질거렸다.

냅다 차를 몰아 학교 앞까지 달려 정문 앞 한쪽에 차를 세웠다.

“어서 내려 얘들아!  얼른! 뛰어야겠다!”

“엄마. 저 우산요!” 점점 세차게 굵어지는 빗방울에 둘째가 우산을 달라한다.

나는 챙겨 온 파랑과 분홍 우산을 재빠르게 주며, 뛰어가라고 하자 둘째는 파란색 우산을 들고 뛰어갔다.

하지만 셋째 녀석은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왜?” 나는 아이 얼굴을 살피면서 불안감이 몰려왔다.

밤새 남편 기다리느라 잠을 못 잔 데다 토사물 냄새는 역겹고 비까지 계속 오니 머리가 아파왔다.

아이는 징징대며 내속의 애간장을 태웠다.

“내가 파랑 우산 가져가려 했는데 형이 가져갔어!”

“뭐야? 지금 우산이 문제가 아니야! 지각이야. 얼른 뛰어가!”

“엉엉! 안 갈 거야, 나 파랑 우산 아니면!”

“비만 안 맞으면 되지 색깔을 지금 왜 따져?”나는 차에서 내려 우산을 펴고 뒤에 앉은 아이를 끌었다.

“빨리 안가? 지각이야!”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때 지나가던 60대 초반 정도 보이는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다가오더니 나를 쳐다보며 소리를 지른다.

“아니 애 엄마?  애한테 무슨 짓이야? 얼마나 다그치고 때렸길래 애가 다 토를 해?”

그 옆의 아저씨는 나를 몰상식하다는 눈으로 흘겨보았다.

아주머니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계속해서 나를 나무라며 소리를 지른다.

“아니 어린애한테 무슨 짓을 했길래 애가 토를 하면서 울고... 부모면 애를 막 해도 되는 거야?”

 혼낼 게 있어도 그렇지...,... 얼마나 놀랬으면 다 토하면서까지 우냐고?

하지만 나는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대꾸할 상황도  아니었다.

아주머니가 뭐라고 하시든 무시하며 나는 아이와 실랑이를 했다.

“요즘 젊은것들은 부모라 해도 자기 맘에 안 들면 지 자식도 버리는 세상이니!”지밖에 모른다니까 “  둘은 계속 나를 보며 손가락질을 하고 큰소리로 말하다가 ‘낳기만 하면 부모 되는 줄 아냐’는 둥, ‘부모 노릇’ 어쩌고 하면서 계속 중얼거리며 지나갔다.

발자국 소리가 멀어질 때쯤, 협박과 달래는 말을 계속 오가다 아이는 학교에 가겠다고 말했다.

다음부터 파란 우산은 너만 쓸 수 있고, 오늘 학교 잘 다녀오면 ‘유희왕 카드’까지 사주겠다고 손가락까지 걸고 겨우 보낸 것이다.      

겨우 숨을 돌리고 차를 몰고 집으로 오는 10분여의 시간이 길게 느껴지면서  내 감정은 토사물처럼 엉망진창이 되었다. 아내 노릇 부모 노릇 하기 힘들다는 생각에 피곤함이 밀려오며 어깨에 힘이 쭉 빠졌다.

몸도 힘들지만 마음에 모욕적인 말의 시선과 행동이 생각보다 내 가슴에 깊게 자리 잡았다.

물론 오해할 수도 있다. 또한 다른 자식을 내 자식처럼 여기는 선한 마음과 안타까움으로 얘기한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게 모욕적인 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한다니 슬픈 마음마저 들었다.      


“여기요! 이게요. 제 남편이 어제 새벽까지 흡입한 맥주와 막걸리 그리고 두부전골이거든요!^^”     


지금까지도 이름 모를 두 분의 기억 속에 나는‘아동을 학대하며 토사물을 쏟을 정도로 아이를 때린 엄마’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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