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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Nov 04. 2021

1. 나희덕 시집 <파일명  서정시>

주룩주룩

시란 금방 부서지기 쉬운 질그릇인데도, 우리는 그것으로 무엇인가를 떠 마신다 

                                                      -황지우-

<심장을 켜는 사람>


심장의 노래를 들어보실래요?

이 가방에는 두근거리는 심장들이 들어 있어요.

건기의 심장과 우기의 심장

아침의 심장과 저녁의 심장

두근거리는 것들은 다 노래가 되지요

오늘도 강가에 앉아

심장을 퍼즐처럼 맞추고 있답니다.

동맥과 동맥을 연결하면

피가 돌 듯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지요

나는 심장을 켜는 사람

심장을 다해 부른다는 게 어떤 것이지 알 수 없지만

통증은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지만

심장이 펄떡일 때마다 달아나는 음들

웅크린 조약돌들의 깨어남.

몸을 휘돌아나가는 피와 강물

걸음을 멈추는 구두들,

짤랑거리며 떨어지는 동전들,

사람들 사이로 천천히 지나가는 자전거 바퀴,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와 기적소리,

다리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동안

얼굴은 점점 희미해지고

허공에는 어스름이 검은 소금처럼 녹아내리고

이제 심장들을 담아 돌아가야겠어요.

오늘의 심장이 다 마르기 전에


나희덕 시인을 만난 적이 있다.

따뜻하면서도 맑고 고운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를 우리가 왜 읽어야 하는지, 시를 읽으면 좋은 점이 무엇인지 얘기하실 때의 눈에는 냉철함과 간절함도 보였다.   시는 정서적 다양한 경험뿐 아니라예민한 언어감각과 리듬감을 가지고 사물을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에 남는다.

또한 자아를 발견하며삶의 의미와 현실에 대한 비판정신과 질문을 할 수 있다고도 말씀하셨다.

가슴 아픈 세월호의 일을 우리 모두 겪은 후에

시인은 파일명 서정시라는 시집을 내었고나는 그 시집을 여러 번 읽고 또 읽었다.

그러면서 눈물을 흘렸다.

사랑하는 딸들과 아들들의 심장을 가지고 오고 싶어 해서 계속 눈물을 흘렸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그러나 구조된 자 역시 구조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았지만

당신은 결국 가라앉은 자들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았지만

당신은 결국 가라앉은 자들에게로 돌아갔습니다.

표류하는 기억과 악몽에 뒤척이다가

당신이 가라앉은 곳

우리는 그곳을 세계의 항문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부표 하나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처럼 흔들리고 있습니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사이에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과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 사이에서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전문-


흔히 말하듯 홀로코스트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그것은 일시적인 사건이나 단속적인 범죄도 아니었으며 어느 순간에 자행된 누군가의 일회적인 악행도 아니었다.

타고난 범죄자들 사디스트들 광인들 사회적 악당들 또는 도덕적 결함을 지닌 개인들이 저지른 무모한 행위로 해석하려는 초기의 시도가 구체적 사실들에 의해 전혀 뒷받침되지 않은 것처럼 역사 속에서 끊임업이 우리에게 이것이 인간인가 되묻게 하는 홀로코스트는 소수 인종주의자들이 저지른 우발적인 비극도 아니었다시인은 아우슈비츠 생족 작가 쁘리모 레비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서이자 증언인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와 이것이 인간인가를 지금 여기에서 발생했던 사건그러나 절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우리가 알고 있는 비극과 하나로 포개어 충돌시킨다(128p)




오늘은 시인의 심장을 빌려와 시인이 되고 싶다.

아니 굶주린 맹수가 되어 이빨과 발톱을 세우고 으르렁대면서,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도 모르는 이런 개 같은 상황을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이 모든 것들을거침없이 가리지 않고 흥분해서 물어뜯어내고 싶다.

찢긴 살점들이 피로 철철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싶다.

그 살점들을 질근질근 씹어 그 피 맛을 목구멍으로 천천히 흘러내려 보고 싶다.

마르지 않는 눈물 속에 있을 많은 슬픔들을 날개를 단 시가 되어 위로하며 다독이고 싶다나만의 언어가 아니라세상의 좋은 언어들로 감싸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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