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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Nov 20. 2021

2.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위로의 시간


나이를 먹어감에 아이들과 만났던 긴 시간들을 정리하고 ‘이젠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아보자’ 하면서 도서관에 입성하였다.   그러면서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책을 읽고 글을 써보는 독서토론회와 문화 프로그램에 적응해 나갔다. 4월 22일부터 처음으로 글쓰기를 시작했으니 꽉 찬 6개월이 된 셈이다.

코로나로 인해 5인 가족이 집안에서 얼굴을 맞대고 있으니  ‘밥 아줌마’의 일상과 자칭 ‘김 작가’의 일상에 몰입하게 된 것이다. 책 읽기는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읽고 스스로 깨달으면 되는데 쓰기는 쉽지가 않다. 나만 읽고 덮을 일기가 아니고 타인과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블로그를 통해 공적 쓰기를 시작하니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필력도 없는 데다 대단한 정보와 전달력도 없다. 재미있고 공감하며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은데 내 부족한 언어의 한계에 욕심은 따라가지 못한다. 쓴 글을 읽어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신변잡기식인 데다 매번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고심하며 씨름하는 나 자신이 잘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과 호응은 되는데 감성은 전달되지 않는 ‘그렇고 그런 글’이라는 생각이 들자 처음에 가졌던 열정과 달리 점차 루즈해지고 시간 낭비에 그냥 버려질 쓰레기 같다는 생각이 점점 들었다.    


다만 잘 쓴 글이든, 미완의 글이든, 숨겨둔 글이든, 파일로 저장하지 않고 날리는 글이든, 그런 과정 하나하나가 자기 생각을 정립하고 문체를 형성하는 노릇이며 ‘삶의 미학’을 실천하는 과정이라고, 못써도 쓰려고 노력하는 동안 나를 붙들고 늘어진 시간은 글을 쓴 것이나 다름없다고, 자기 한계와 욕망을 마주하는 계기이자 내 삶에 존재하는 무수한 타인과 인사하는 시간이라고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35p)-          

부족한 언어의 한계를 보면 어느 날은 눈물이 난다. 수많은 단어들 중 자기 항변과 연민들이 뒤엉켜 나를 나타내는 적합하고 딱 맞는 언어를 생각지도 찾지도 못하는 한계에 부딪힌다.

글들은 엉키고 꼬인 데다 초라하고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객관화된 나를 보지 못한다,

헝클어진 내 언어의 집은 부서지기 쉬워지고 얼마나 연약한지 나의 의미는 줄 곧 사라진다.

하지만 은유 작가는 사라졌던 그 의미의 시간들이 내 생각을 정립시키고, 문체를 형성하고, 삶의 미학을 실천하는 과정이란다. 발가벗고 서서 나를 하나씩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뜨거워진다.  나를 붙들고 늘어지는 시간이 글을 쓴 것이나 다름없다니 나의 한계와 욕망을 마주하는 계기가 되고 내가 그렇게 소통하고 싶어 하는 다른 사람들과 인사하는 시간이라니 위로가 되어서 다시금 심장이 다시 소생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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