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보 전진을 위한 한보 후퇴의 시간

by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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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열 시부터 열두 시 반, 1시부터 3시까지 줌 수업 자리에 앉으려면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서둘러 까다로운 식성의 둘째를 위한 김치찌개와 셋째를 위한 계란찜 남편을 위한 나물무침을 해놓고 누구나 쉽게 뷔페식으로 퍼서 먹을 수 있게 준비해 놓아야 한다.

그사이 아이들은 한 명씩 일어나 배가 고프기 시작하면 ‘먹을 거 뭐 있어요’라고 말하며 방에서 나온다.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하며 수업에 집중하는 엄마의 얼굴을 보니 어떤 요구도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눈치다.

숟가락 젓가락까지 챙겨주며, 보글보글 거리는 찌개와 신선한 야채샐러드를 챙겨주며 바로 옆에서 소스까지 뿌려주고 이런저런 칭찬과 배려로 힘을 낼 수 있도록 응원하던, 영양제까지 챙겨주던 좋고 편했던 엄마의 얼굴은 사라졌다.

줌 수업을 듣고 자기 시간을 갖는 엄마의 모습을 여전히 낯설어한다. 20년 넘게 그런 얼굴을 본 적이 없었는데 희생적이던 엄마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에 자기 목소리를 찾아가는 것을 보고 칭찬을 하자니 그건 아닌 것 같고, 불평을 하자니 이것도 아닌 것 같은 애매한 얼굴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남편은 방에서 나와 볼멘 목소리로 한소리 한다.

“밥 아줌마가 처자식 먹여 살리는 돈 버는 남편이나 애들 밥은 제때 챙겨줘야지.”웃으며 투정을 한다.

“옛날엔 여자나 노비에게 글을 배우면 생각이 확장되고 똑똑해진다고 가르치지 않았지”라고 말한다. 지금 상황에 저 얘 긴 뭐지. 당장 줌 수업을 끄고 도끼눈을 뜬 채로 식탁을 뒤엎으며 한바탕 큰소리로 난리를 치고 싶었다.

“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요? 아니 내가 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찌개에 계란찜에 나물까지 다 무쳐 놔서 덜어 먹기만 하게끔 챙겨 놨는데... 그것도 힘들어요? 그 손은 놔뒀다 어디다 쓰게? 그리고 모두 일어나 9시에만 이라도 모여 먹으면 내가 챙겨줬겠지만, 다 일어나는 시간 먹는 시간이 다른데... 내가 그것까지 다 맞추어야 해요? 그리고 뭐라고요? 지금 21세기에 당신 돌았어요? 말 같잖은 고조선 산적 같은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릴 하고, 아주 정신 차리게 밥을 굶길까 보다.” 하지만 목구멍의 침을 삼키며 생각만 했다. 참자. 참어. 이 귀한 수업들을 위한 두보 전진을 위한 한보 후퇴의 시간. 말하면 길어지니 하더라도 4시간 후 줌 수업이 끝나니 그때 해야겠다.

쉬는 시간에 잠깐 줌의 소리를 꺼 놓은 채 말했다.

“좀 불편하지? 하지만 마누라님 때문에 얼마나 편하고 안락했는지, 그리고 누가 고생했는지 느껴보는 시간도 필요해” 오늘 당신 좋아하는 콩밥으로 했어요. 애들은 싫어하니 당신이 콩을 싹 걷어서 퍼 드세요.”

요즘 쉽게 빠지고 하나둘씩 생기는 하얀 머리카락 때문에 고민스러웠던 남편은 조용히 주걱을 들고 밥을 퍼서 먹는다.

나의 심장과 입들이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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