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 쉼표 그리고 중년>
#1 <쉼표 그리고 눈>
눈이 내린다.
전염된 질병의 숨소리는 어디로 갔을까. 뿌연 회색 먼지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사라진 모든 존 재위에 하얀 눈이 내린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며 세상에 쉼표 같은 눈이 내린다.
아이들이 한 명 두 명... 여러 명이 쏟아져 나왔다.
어디 숨어 있었던 거지!
한 아이가 술래가 되어 숨은 아이들 모두를 찾을 수 없어 마지막 항복을 외치자 여기저기 숨어 있던 아이들이 하나 둘 뛰쳐나온 것 같다.
한 아이가 신발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귀를 기울인다.
조심스럽게 뽀드득하고 발을 떼자 심장은 뛰고 다시 한 발을 떼자 또 다른 심장 소리가 반복되어 따라온다.
여러 개의 심장은 부드러우면서 여리게, 부드러우면서도 조금 세게의 템포를 그리며 뛰어다닌다.
다시금 숨 가쁘게 견딜 수 있는 만큼의 호흡을 뿜어내고 아무렇지도 않게 세상과 악수하며 사라지더니 까르르까르르 웃음을 만들어낸다.
진작부터 세상에 꽉 차 있던 아이들 소리.
한 언니는 썰매 위에 동생을 올라 앉히고, 아이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지고 끌어당긴다. 눈이 온 세상은 어디든 삶의 놀이터가 되고 어느 누구와도 어울리게 된다. 쉼 없이 고요하게 내리는 눈.
햇빛에 반짝이는 눈을 걱정 없이 바라본 게 젊음의 눈이었다면, 얼룩진 그늘까지도 품어주며 바라보는 것이 중년의 눈이다.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들을 견딘 중년이라는 이름.
중년의 눈은 생긴 모양대로 그대로 덮어준다. 그리고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살아온 날들로 엮어진 눈 속에 젊음을 뒤로한 채 회환과 연민과 사랑이 뒤섞인 눈.
이름 모르는 아이의 이름도 이미 내가 키운 아이처럼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깊이의 눈으로 눈을 만진다.
중년이 된다는 것은 자연과 가까워지는 것을 넘어 모든 생명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진작부터 사랑했다면 더 많이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2 <여러 개의 심장. 중년>
나무가 추울까 봐 아파트 앞 가로수 나무들에게 털실로 짠 예쁜 옷들이 입혀져 있다. 어릴 적 설날에 입었던 작은 색동 한복만큼이나 알록달록한 옷들이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아프고 괴로운 눈물은 어디 있었던가.
쓸쓸하고 외로운 심장은 어디 있었던가.
재능기부로 직접 손뜨개질을 했다는 언니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이 겨울도 따뜻해짐을 느낀다.
중년이 되어 좋다고 느끼는 것 중 하나는 공감 어린 여러 개의 심장을 갖는 것이다. 딸의 심장, 며느리의 심장, 엄마의 심장, 옆집 아줌마의 심장.
우주의 중심에 내가 서서 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던 시선이 중년이 된 지금은 변화무쌍한 다양한 심장을 갖는다.
친구들과 모여 커피를 마실 때 핸드폰에 영상이 들어왔다. 얘기만 듣고 본 적 없는 친구 아들의 영상이었다. 해병대를 지원하여 훈련을 마치며 찍어서 보내온 영상을 보며 우리는 다 울었다. 대견하고 늠름해서 만이 아니라, 견디고 이겨냈을 아들의 눈 속에 희망과 사랑까지 읽을 수 있어서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가방을 메고 초등학교에 가고, 사춘기를 겪고, 어려운 대입 입시를 치르고, 대학 1학년의 학교생활을 마치고 군대 간 얘길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스무 살이 넘으면 누구나 겪어야 되는 군생활을 하기까지 한 걸음 한 걸음 견디고 이겨냈음을, 그 수고로움을 또 지켜보고 응원했던 부모의 마음을,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우리는 모두 운 것이다.
중년으로 산다는 것은 내 속에 잠재워진 다양한 모습의 나를 만나는 것이다.
남을 이해하고 공감할 뿐 아니라 어려운 일을 같이 이결 낼 넉넉한 힘이 중년에게는 있다.
믿을 것 없는 힘든 세상에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줄게'라고 얘기할 수 있는 지혜의 힘이 중년에게는 있다.
지혜의 심장을 가지고 있어 같이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중년이 나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