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I+I 혹은 E+E, 그리고 I와 E 사이

같아도 힘들고, 달라도 힘든 것

by 혜랑

우리는 둘 다 I인 날이 많았다.

서로의 눈치를 보며 행동을 조심했고,
말을 고르다 결국 타이밍을 놓치곤 했다.


말하지 않은 마음들은
어느새 눈덩이처럼 커져
큰 오해가 되어 있었다.

그 오해는 우리를
벼랑 끝까지 몰아가기도 했다.

배려라고 믿었던 침묵은
결국 우리 앞에
두 개의 사인을 기다리는

종이 한 장을
꺼내놓았다.


어떤 날은
우리는 둘 다 E였다.

우리는 불같이 싸우고
뜨겁게 화해했다.


싸울 때는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처럼
상처 주는 말을 퍼부었다.

남편은 늘
“나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몰랐어”

라고 했다.
그 말에 격분한 나는 어느 날,
“착한 척하지 마.
당신은 뼛속까지 이기적이야.”
라는 폭언을 하기도 했다.


며칠간의 냉랭하게 대하는 시기가 지나
감정이 누그러지거나,
대화 끝에 작은 실마리라도 보이면
우리는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사람들처럼
서로를 붙잡고 놓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건
I와 E가 엇갈릴 때였다.

내가 I일 때는
대부분 우울감에 파묻혀 있을 때였다.
그때는
남편의 존재 자체가
버겁고 불편했다.


그런 내 눈치를 보면서도
남편은 ‘부부는 함께’라며 다가왔다.
그럴 때의 ‘함께 있음’은
고문에 가까웠다.


반대로,
내가 남편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에
본인은 조용히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 나는
무안했고,
서운했고,
급격히 울적해졌다.

(이건 부부관계를 말하는 게 아니라
애정의 온도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행동이
배려에서 나온 것이라고
착각했다.

‘나는 배려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에 취해
정작 상대를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은
게을리했다.


아마 1년쯤 전부터였을 것이다.
“당신이 원한다면
혼자만의 시간을 줄게.”
라는 마음으로
물러서기를 시작한 이후부터,
우리의 관계는 조금 달라졌다.

우리는
따로 있어도
함께 있는 것처럼
서로를 위하려 노력한다.


우리는

함께 있어도
따로 있는 것처럼
최소한의 거리와
매너를 지킨다.


각자 시간이 필요할 때
굳이 동굴로 숨어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같은 공간에서도
서로의 시간을
침범하지 않으려 애쓴다.


우리가 이 문제로 인해
우리 앞에 놓인 종이를

결국 찢어버릴 수 있었던 건,
부부 관계의 중심은
‘배려’라는 말이 아니라
배려하는 행동을 직접 보여주는 것임을
늦지 않게 알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내게 혼자만의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나는 남편의 휴일 늦잠이 얼마나 행복한지 안다.

서로 안다.


우리는 그래서 아직도 이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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