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사랑? 보이지 않는 시간!
아이를 낳기 전, 신혼 시절의 나는 살림을 꽤 잘하는 사람이었다.
꼼꼼하고 부지런했다.
남편이 퇴근하면 바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기본 반찬 세 가지 이상에 국과 메인메뉴도 몇 가지씩 차려놓았다.
그때 내 삶의 우선순위는 이제 막 가족이 된 남편이었다.
그런데 하나, 둘 아이를 낳고 보니 남편위주의 살림은 점차 불가능해졌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아이에게 쏟아부어야 하는 시간과 정성이 상당히 많이 필요했다.
심지어 나 자신의 몸을 돌볼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남편은 우선순위에서 조금씩 뒤로 밀려났다.
그 과정이 남편에게는 꽤 힘들었을 것이다.
신혼 때와 달라진 나를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고, 어느 순간부터 내가 하는 살림을 좋지 않게 보기 시작했다.
첫째와 둘째를 연이어 낳고 나는 두 아이육아를 거의 다 혼자 했다.
남편은 출근이 늦은 대신 퇴근이 늦었다.
몸을 쓰는 직업을 하고 늦게 퇴근하니 피곤함에 출근 직전까지 자다가 일어나 바로 집을 나섰다.
그렇게 연년생 개월의 두 아이의 육아와 집 전체 살림을 혼자 하다 보니 늘 시간이 빠듯했다.
매번 고민을 했다.
주어진 시간은 정해져 있고, 나는 때때로 육아와 살림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했다.
나는 아이들 밥 먹이는 것, 놀아주는 것, 그러니까 아이들이 최우선이었다.
집은 늘 치워도 치워도 어수선해졌고 빨래는 빨아도 빨아도 산더미였다.
하지만 엄마와 온갖 놀이로 시간을 보내며 큰 아이들은 정말 잘 컸다.
그 선택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잘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가 많이 자랑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그렇다고 살림에 두 손을 놓고 살았던 건 아니다.
아이들 낮잠을 재운 틈에 오전에 아이들이 놀다가 어지른 거실을 치웠다
하지만 남편이 퇴근할 때가 되면 온갖 놀이로 집은 다시 어질러졌다.
어쩌면 남편 눈에는 아침에 나갈 때와 똑같은 집처럼 보였을 것이다.
남편은 종종 내가 종일 놀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퇴근하자마자 집안을 쭉 훑어보며 인상을 쓰는 남편의 얼굴은 매일 불편했다.
종일 두 아이의 빨랫감으로 세탁기는 쉴 틈 없이 돌아갔다.
아이들이 눈을 떠 있을 땐 바쁜 아빠대신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 온몸으로 놀아주었다.
번갈아 씻기고 유아식과 이유식으로 세끼를 먹이고 시간 맞춰 낮잠, 밤잠을 재웠다.
나의 바쁜 일상은 남편의 생각 속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남편은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의외로 당신도 나처럼 게으른 편이네.”
라는 말을 종종 하기 시작했다.
나는 티도 나지 않는 일을 뼈 빠지게 해내고 있었는데, ‘게으르다’는 말을 들으니 화가 났다.
그런 표현들이 반복되자 어떤 날은 하루 동안 내가 한 일을 시간별로 적어서 주었다.
내가 놀고먹은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또 어떤 날은 너무 분해서 CCTV를 설치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내 하루를 직접 두 눈으로 보라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 역시 남편의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되고 버거운지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다.
남편은
“수고했어.”
“고생했어.”
그 한마디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그런 말을 요구할 때 나는 먼저 말할 생각을 안 하는 게 괘씸하게 느껴졌다.
퇴근 후 집에 들어올 때 먼저 말했다면 나는 당연하게
“당신도 애썼어.”
“힘들었겠다.”
라고 말했을 텐데 말이다.
따져보면 '니나 내나' 마찬가지였다.
서로가 서로의 수고를 더 크게 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다.
나는 왜 내가 게으른 게 아니란 걸 계속 증명해야 하냐며 괴로워했다.
그 시간은 지금까지 이어져온 우울증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남편 역시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가정을 위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만큼 일하고 있는 남편이었다.
그럼에도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느꼈을 것이다.
서로에게 인정을 기대하면서도, 정작 인정해 주는 데에는 우리는 너무 인색했다.
누가 먼저 말하는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은 남편이 퇴근하면 먼저 안아주며 말한다.
“고생했어.”
요즘처럼 추운 날엔
“많이 춥지 않았어?”
라고 묻는다.
그러면 남편은 괜찮았다며 웃고, 아이들 보느라 내가 더 힘들었을 거라고 말해준다.
이제 우리는 안다.
서로가 같은 편이라는 걸.
그걸 알아차렸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도 이혼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