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너 말고 우리!"
때때로 나는 정말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과 결혼했다고 생각했다.
또 가끔은 내가 너무 못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결혼 전 우리의 관계는 결혼 후와 완전히 달랐다.
남편은 자신의 우유부단함을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는 내 배려심에 감동했다.
나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내 입장을 고려해 주는 남편의 섬세함에 행복했다.
우리는 서로의 착한 마음을 보고 결혼을 결심했었다.
분명 우리는 선량한 사람이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결혼을 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결혼 전 마음에 드는 식당을 찾지 못해 여행지에서 두 시간을 헤맨 적이 있다.
심지어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다가 식당이 마음에 안 든다고 다시 나가기도 했다.
나는 뱃속에서 꼬르륵 대는 소리가 나는데도 정말 괜찮았다.
‘먹는 것에 진심이구나, 어쩌면 나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고 싶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고 오히려 고맙기까지 했다.
그러나 결혼 후엔 그런 모습이 힘들었다.
남편은 내가 어떤 결정을 하려 할 때 대놓고 ‘싫다’고 말하지 않지만 표정과 반응으로 ‘싫은 티’는 숨기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남편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불편했고 후에는 화가 났다.
결국 그렇게 배려심 있던 여자친구는 갑자기 벌컥 화를 내는 아내가 되었다.
나라고 뭐 별다를 건 없었다.
연애 적 두 번째 데이트에 당시 혼자 살던 남편의 장을 같이 본 적이 있다.
혼자 사는 30대 초반의 젊은 남자는 음식을 ‘조리’해서 먹기보단 ‘데워’ 먹는 정도의 집밥으로 살고 있었다.
물대신 사이다를 마신다던 남편은 한 번에 사이다 네 통을 집었다.
나는 남편에게 조곤조곤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오빠, 사이다를 물대신 마시는 건 정말 건강에 안 좋아. 조금만 먹고 물로 대체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사이다 하나만 사자.”
남편은 바로 내 말을 듣고 사이다 세 개를 제자리에 두었다.
이후 남편에게 듣기로는 그때 내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나이차가 있어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던 여자친구가 똑 부러지게 아닌 건 아니라고 하는 게 뭔가 더 매력이 있었다나 뭐라나.
그렇게 매력 있는 여자친구는 아내가 된 후 변함없는 단호함을 보여주었다.
연애 때와 다른 점은 종종 만나하던 데이트와 달리 한 집에서 매일을 마주한다는 것이었다.
다정했던 남자친구는 점점 내 의견에 대답을 하지 않고 무시하는 남편이 되었다.
“당신은 이기적인 인간이야!!”
“깜빡한 게 아니라 마음이 없는 거야!”
“표정에 귀찮아하는 거 다 드러나, 거짓말하지 마!!”
“착한 척하지 마, 나를 존중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남편이 내 편이 아닌 상황들을 마주할 때마다 송곳 같은 말을 날렸다.
육아로 인해 지친 내 곁에 남편이 함께 해주지 않을 때마다 마음속에 분노가 쌓였다.
남편은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표정으로 말했다.
‘하루종일 집에서 애랑 놀아 놓고 살림은 제대로 안 하네.’
‘내가 가장이고 돈을 많이 버니까 집안일도 육아도 네 몫이잖아.’
‘게임하는 게 도박도 아니고 바람도 아닌데 왜 이렇게 잔소리야.’
눈은 보통 핸드폰을 향해있고, 손가락은 바쁘게 움직이는 남편의 미세한 표정은 이렇게 들렸다.
때로는 대놓고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뭐 하려고 알바를 해? 고작 100만 원 버는데 굳이 힘들게.”
“그건 네 용돈 하면 되겠네.”
남편은 언제나 내가 진심을 오해한다고 했다.
나는 늘 남편이 변명을 한다고 생각했다.
반복된 서로에 대한 불신은 끝없이 반복되는 생채기를 냈다.
오랜 시간 우리는 부부상담, 성격검사, 심리상담 등을 통해 스미듯 변화하기 시작했다.
가장 직접적인 변화의 시작점은 성격 검사를 한 후인 것 같다.
우리는 성격검사의 결과를 보며 서로의 마음과 행동에 대한 이해를 하기 시작했다.
남편의 말은 사실이었다.
남편의 진심은 늘 사랑 위에 있었다.
내 말도 사실이었다.
내 상처는 늘 남편의 입에서 시작됐다.
우린 그냥 서로를 잘 몰랐던 사람들이었다.
사랑한다고 거저 가까워지는 게 아니었다.
나와 다른 이 사람, 내가 사랑하는 이 사람을 알아가는 노력을 끝없이 해야 했다.
우리는 점차 서로 다른 점을 찾고 서로를 알아가는 대화를 시작했다.
'니가 잘했니, 내가 잘했니'는 거의 없어졌다.
'내가 맞니, 니가 맞니'도 거의 없어졌다.
우린 사랑하는 서로의 낯선 점을 찾게되는 재미를 느꼈다.
둘이 하는 대화, 서로에 대한 대화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대부분의 부부는 서로 사랑한다.
사랑을 ‘어떻게’하느냐는 모두 다르다.
원하는 방식도 모두 다르다.
내가 아니기에 대화 없이 알 수가 없다.
서로에 대한 진심 어린 호기심,
서로에게 멋진 배우자가 되기 위한 노력.
한때 세상에서 가장 못된 여자와 나쁜 남자는
제대로 된 대화와 이해하는 바람에
우린 아직도 이혼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