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문에? 덕분에!"
옛날에 한 선녀가 목욕을 하러 숲 속 연못으로 내려왔다.
나무꾼은 선녀의 날개옷을 숨겨 선녀와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아 나름 잘 살았다고 한다.
이를 도운 사슴은 아이를 셋 낳기 전까지는 날개옷을 돌려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러나 날개옷을 그리워하며 우는 아내를 보며 나무꾼은 생각했다.
‘아이를 둘이나 낳았고 이제는 땅에서 오래 살았으니 떠날 일이 없지 않을까?’
결국 나무꾼은 선녀에게 날개옷을 돌려주었다.
선녀는 기뻐하며 날개옷을 입더니 이내 두 아이를 한 팔에 한 명씩 끌어안고 하늘로 날아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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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 셋을 낳았다.
한 팔에 하나씩 안고도 하나가 남는다..
우리가 어릴 때 종종 들리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애 때문에 이혼은 못한다.”
아이였던 나는 그 말이 꼭 아이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 같아 싫었다.
‘아니, 그럼 이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자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불행하게 산다는 말인가?’
‘누가 이 결혼을 굳이 하라고 했나?’
그런 생각이 들다가 마지막엔 꼭 따라붙는 다짐이 있다.
‘나는 커서 만약에 남편이 아니다 싶으면 애 때문에 참고 살진 않을 거야!’
30년 정도 지난 지금 나는 뻔하고 민망하게도 이혼을 생각하다가도 아이들 얼굴을 떠올리면 그 마음을 꿀꺽 삼키게 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 역시 그렇다.
아이들 때문에라도 이혼이란 말은 목구멍에서 컥 하고 걸리는 거다.
남편은 나의 연인이었다.
자신의 세상은 전부 나라는 여자인 것처럼 온 마음을 다해 매 순간 사랑을 표현했다.
눈치가 없는 순진한 남자는 센스는 없었지만 무던하게 직진하던 그 마음은 내게 충분히 전달되었다.
물론 때때로 ‘이게 뭐지?’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결혼하면 드러나게 될 남편의 습관이나 자연스러운 장면들이었다.
난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기회의 신이 내게 주는 손짓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걸 넘어가고 달콤한 상황에 흠뻑 취해 결혼을 했다.
그리고 연인은 남편이 되었다.
남편은 맛있는 것을 보면 여전히 나를 떠올린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같이 먹는 일은 잘 없다.
남편은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안정감안에서 남편은 신나게 폰게임을 한다.
불만이 쌓였다.
남편의 많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속상한 것을 말해도 나아지는 게 없거나 너무 더디다고 생각했다.
다툼은 많아졌고 그때마다 남편도 내게 불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남편도 이혼을 고민한 시기가 있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여러 굴곡과 고비에서도 결국 나는 이혼을 거의 포기했다.
첫 번째 내 생애 이혼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은 셋째가 태어났을 때다.
손이 두 개밖에 없어서..
두 번째로는 몇 년이 더 지난 후다.
지지고 볶더라도 이 가정 안에서 사는 게 이혼보다 더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내가 할 수 없는 양육의 영역이 있고, 그것을 남편이 채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남편인 이 남자는 때때로 나를 너무 외롭게 하고 서럽게 하고 화나게 한다.
하지만 아빠인 이 사람은 아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든든한 기둥이고 무던한 사랑을 준다.
섬세하지만 예민한 엄마를 가진 우리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어른이다.
남편과 우리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보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기쁨에 대해 끝없이 대화하던 어느 날에 문득 알게 되었다.
이 가정이 시작된 것은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사랑하다가 함께 가족이 되자 약속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까지 이 가정이 커지고 단단해진 것은 아이들이 태어나 자기 몫의 사랑을 나누며 이 가정 안에서 애정의 버팀목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가정이 엄마, 아빠의 것이 아니라 아이들 것이기도 하다는 것에 반문할 수는 없었다.
아이들의 가정을 우리 마음대로 종료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가정의 주체가 부부만이 아니라는 것을 안 후부터는 이혼생각이 거의 나지 않았다.
남편과의 부딪힘으로 다툴 수는 있다.
하지만 다섯이 함께하는 가정을 쪼개는 것은 다른 문제다.
아이들에게서 엄마, 아빠와 다 같이 함께 하는 가정을 빼앗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이혼이 해결책이 아니라 또 다른 무거운 선택이라는 것을 정확히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이혼이 답인 가정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안전하지 않다거나 아이들의 성장을 방해하는 환경이라면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 집은 그런 상황은 아니다.
나는 이혼이라는 보기를 슬며시 가렸다.
어느새 우리 다툼의 목표는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잘 다투고 잘 화해해서 끝까지 함께하기’가 되었다.
아이들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 ‘덕분’에
우린 아직도 이혼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