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미움의 바탕은 사랑이라더니_기대하지 말걸

"기대와 실망은 비례한다."

by 혜랑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다.

미움의 근원은 사랑이다.

그러니 사랑의 반대말은 아무것도 없는 無의 상태.

무관심이다.


나도 20대에 몇 번의 연애를 했다.

그 시간을 통해 사랑을 바탕에 둔 기대와 미움에 대해서도 나름 알고 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니었다.

결혼이라는 관계 속 사랑은 연애와는 아예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연인은 기대가 무뎌질 때 이별해도 된다.

부부는 기대가 무뎌져도 아니, 무너져도 뭐든 붙들고 버텨야 한다.

붙들 게 생기기도 한다.

부부에게는.

뭘까?

내가 기대를 내려놓으면서도 붙든 아니, 내가 붙잡혀있는 것인가?


아무튼, 보통 기대가 없는 사람에게는 실망도 없다.

그래서 미움도 없다.


나는 남편에게 꽤 많은 기대를 했다.

깊은 대화가 통하는 사람,
생각이 깊은 사람,
함께 살아가며 서로 배우는 사람.

나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이 길어질수록 내가 기대했던 모습과
실제의 모습 사이에는 큰 간극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자타공인 윤리적 기준이 높은 편이다.

타인을 배려한다는 마음이 혹시 차별로 표현되지는 않는지 늘 스스로를 검열한다.

그래서 놓친 부분이 보이면 지나치게 자책하기도 한다.


하지만 남편은 다르다.

과거에 다루어지지 못했으나 지금은 차별이라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남편은 그런 것들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편견이나 차별이라 여기지 않는 것이다.

남편이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마음을 내비칠 때면 내가 더 불편해진다.

그에 대해 내 생각을 말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거나
“한번 생각해 볼게.”

같은 말 대신

“아, 네가 몰라서 그래.”

“남들은 다 웃으면서 넘겨.”

라는 말을 할 때가 많았다.

그럼 그대로 대화가 끝나 버리는 거다.

그때마다 나는 이 사람과 내가 같은 세계에 살고 있는지 잠깐 멈춰 서게 된다.


처음에는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생각도 했다.

심지어 더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느껴지기까지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차이’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남편의 어린 시절은 안정적이지 않았다.
우리는 어릴 때 어른의 민낯을 조금 일찍 보게 되었다.

다행히 나는 6살이나 많은 지혜로운 언니가 있었다.

학창 시절 내내 부모님같이 아껴주시는 선생님들도 연이어 만났다.

운 좋게도 내게는 생각을 넓힐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남편은 그렇지 못했다.

내가 배운 어른들의 세상도 곱지는 않았지만 내 곁엔 좋은 어른들이 많았다.

어린 남편이 만난 어른의 민낯은 곱기는커녕 차갑고 거칠었던 것 같다.

아이가 감당하기엔 절대로 쉽지 않은 시간임을 안다.

물론 성인이 된 뒤의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다만 남편이 고를 수 있었던 선택지 자체가 현저히 적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한편으론 남편이 이해된다.

미련해 보일 정도로 순수한 사람.

계산하지 못하고 툭 뱉는 말에 저도 모르게 상처를 입히는 사람.


남편이 스스로 최선을 다해 성장하며 했던 선택들은 언제 들어도 멋지다.

나라면 지금의 남편처럼 성장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남편의 삶을 존중하고 때론 존경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 또 기대를 하는 거다.

자신만의 힘으로 누구의 도움도 없이 바른 방향으로 성장한 청년이 대견하다.


남편은 다소 강압적이고 가부장적인 양육방식도 바꾸었다.

물론 그 사이에 미칠 듯이 부딪혀 온 내가 있다.

생명이 소모되는 느낌이 들정도로 힘들었지만 결국 남편은 생각을 바꾸었다.

지금의 남편은 예전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확실히 다정해졌다.

아이들을 향해 웃고,
조금 더 기다려 주고,
예전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사람이 완전히 달라지지는 않더라도 조금은 다른 어른이 되려고 애쓰는 모습.


그 모습을 보면서 한껏 나는 기대에 부푼다.

나의 이야기가 남편의 귀에 들어가길 또 바란다.


그러나 기대했던 꼭 그 순간에 남편은 허를 찌르듯 다시 다른 방향에 서 있다.

조금 차갑고 대체로 자신의 앞만 바라보는 시야를 가지고….

그럴 때면 열심히 오른 계단에서 뚝 떨어지는 기분이 든다.

심지어 버림받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기대하지 말걸….’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오지만 이미 엎질러졌다.

실망감에 파묻혀버리고 만다.


감정의 편차가 큰 나는

“아, 짜증 나!”

하며 툭 털고 지나치질 못하고 고꾸라진다.

밉다.

너무너무 밉다.

실망스럽다.

꼴도 보기 싫다.

늘 기대하게 하고, 변했다 하고, 제자리표인 남편도….

이제는 좀 포기할 법도 한데 매번 욕심내는 내 못된 마음도….


십수 년을 이런 상황을 반복했다.

나는 아직도 가끔 기대한다.
그리고 또 여지없이 실망한다.

서서히 기대감이 없어졌다.


요즘엔 남편에 대한 기대감이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실망할 일은 없지만 그게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남편과 같은 방향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즐거움을 포기했다.


많은 고민도 흘러지나갔다.

이렇게 다른 가치관인 우리가 함께 늙어갈 동반자가 맞을까?
아니면 그래도 둘 다 아이들을 사랑하니 육아에 진심인 공동 보호자인 걸까?

여전히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안다.

예전처럼 기대하지 않게 되자 조금은 덜 미워졌다는 것.

조금 씁쓸하지만,

그래서

우린 아직도 이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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