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사랑'
10여 년 전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당시 유행하던 SNS에 남아있던 사진이다.
남편을 만나기 직전부터 둘째가 4살 때까지의 기록이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
가장 오래된 사진에는 마냥 해맑고 밝았던 20대 아가씨가 있었다.
그 아가씨는 어느 날 기름이 묻은 남자의 손을 잡은 사진을 올렸다.
투박한 그 손은 조그만 아가씨의 손을 살포시 잡고 있다.
그 조심성 있는 모습만 보아도 거친 손의 주인이 얼마나 아가씨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소소한 일상만으로도 웃음이 끊이질 않던 두 사람은 머지않아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었다.
낯선 모습의 서로를 보며 더욱 애정 가득한 눈빛이다.
시간이 흐르며 SNS 속의 사진은 두 사람에서 아이들로 바뀌었다.
두 사람은 사랑하는 남녀에서 아이들의 부모가 되었다.
언제 사랑이 있었는가 싶게 모든 관심과 애정은 작고 여린 아이들을 향했다.
우리가 언제 사랑했는지, 사랑을 하긴 했는지 가물가물거린다.
‘사랑해’라는 말은 매일 들어도 듣고 싶었는데,
지금은 어색한 단어가 되었다.
나의 열렬했던 사랑은 끝이 난 걸까?
사랑은 결혼, 아니 출산과 동시에 사라지는 걸까?
그럼 우린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 걸까?
서로에게 마음이란 게 있긴 한 걸까?
10 수년이 지나며 우린 더 이상 사랑이란 이유로 이 결혼을 유지하고 있지 않다.
그 사실은 아프지도 슬프지도 않다.
두 사람 모두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알고 있다.
그때의 풋풋하고 여린 사랑은 없다.
흐르는 시간이 우리에게 남긴 건 그때의 사랑과는 좀 다르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반지하 셋방에서 시작해서 조금씩 집을 넓혀가던 일,
직원에서 점장이 된 남편과 둘이서 축하파티를 하며 다 첫째 덕이라고 입을 모은 기억.
그렇게 서로가 공유하는 추억.
셋째가 온 것을 알고 힘들었던 기억에 펑펑 울던 나에게
더 잘하겠다고 용기를 주던 남편의 다짐.
셋째를 낳고 공기마저 달라진 가족의 분위기에 뿌듯했던 우리.
서로가 함께 만들어온 ‘우리 가정’이라는 세상.
일에 치이고 사람에게 데이는 바깥세상에서도 버티고 견딜 수 있었던 이유,
모든 걸음이 서툴던 초보부모의 시행착오에도 포기하지 않고 배우고 또 배웠던 시간.
아이들의 삶을 책임지고자 달렸던 책임감.
수없이 많은 시간을 함께 견딘 고마움,
쉽게 끊어낼 수 없는 의리,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인간애까지.
우리를 감싸는 이 모든 것들이 여태 남편과 나를 하나로 붙잡고 있었다.
이것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예전처럼 설레고 뜨겁게 타오르는 감정은 아니지만,
어쩌면 더 단단하고, 더 쉽게 무너지지 않는 형태의 마음 아닐까?
고운 20대 아가씨의 설렘 가득한 표정이 이제 내겐 없다.
신혼 초 곁에 누운 남편이 낯설어서 긴장하던 새신부도 없다.
없어진 것들에 대한 그리움, 아쉬움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반짝하고 뜨는 아이들의 사진.
돌아보면 끝없이 이어졌던 위기들이 있었다.
경제적인 부분으로 일상이 흔들렸던 적은 물론이고
서로의 마음, 태도로 인해 상처를 주고받기도 했다.
하지만 사진 속에 보이는 여리고 가느다란 팔다리를 보며
우리가 느꼈던 짠한 무언가가 나를 버티게 했다.
무너지려는 남편을 일으켰다.
우리는 수없이 이혼이란 선택지를 놓고 저울질을 하면서도
결국엔 서로의 손을 싫든 좋든 잡았다.
시간이 만들어 놓은 기적으로 인해
우린 아직도 이혼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