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부부의 관계와 부부관계

본능적 VS 본능적

by 혜랑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웃기지 마. 절대 그냥 안 넘어갈 거야!”

남편과 다툰 후 도무지 화가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이 다툼의 원인이 열이면, 열개가 전부 남편 탓이라고 확신하며 말이다.

그러나 얼마 후, 칼에 베인 물이 흔적도 없이 하나가 되듯

아무 문제도 아니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간다, 짜증 나게도….

분명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으로 부딪히다 말로 상처를 주었다.

때론 너무나 크게 다쳐서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처럼 등을 돌린다.

말을 섞지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몇 날며칠이 지난다.


예전엔 서로 없는 사람처럼 지내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커가니 눈치가 보인다.

지금은 꼭 필요한 아이들의 이야기는 나누기도 하고,

아이들 앞에서는 아이들을 보며 웃기도 한다.

아이들이 눈치채지 않게 하려는 노력이지만 모르는 일이다.

‘오, 분위기 싸해. 또 싸웠나 보네. 언제 좀 사이좋게 지내려나..’

속으로 한숨 쉬고 있을지도..

어쨌든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서로를 투명인간으로 대하는 시간은 불편하다.
공기는 어색하고 무겁다.

이런 다툼 후의 관계가 반복되다 보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대체로 우리는 그런 날들이 지나다 보면 자연스럽게 평소대로 돌아온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혹은 아무 일도 없었던 척하면서.


그렇게 스리슬쩍 다툼이 흐려지는 이유는 많다.
앞서 말했듯이 듯 아이들이 있기에 냉랭한 공기를 길게 끌고 갈 수 없다.

또 가족이기에 무조건 해야 하는 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화장실에 휴지가 없어!’ 같은 비상상황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런데 다시는 화해하지 않을 것처럼 지내다가 화가 누그러지는 게 비단 그 이유뿐일까?

왜 물을 벤 칼에 부부싸움을 비유한 걸까?

최근에 들어서야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남편과 나는 결혼 10년 차가 훌쩍 넘었다.

함께 한 시간만큼 우리는 이미 서로의 인생에 깊이 얽혀 있다.

쉽게 끊어낼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이다.
그런데 시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순간들도 있다.


분명히 나쁜 감정은 아직 풀리지 않았고,
상대의 말과 태도가 여전히 마음에 걸려 있는데도
어느 순간, 서로를 향해 다가가게 되는 때가 있다.

말하지는 않지만, 서로가 알듯 모르게 같은 마음으로 이끌리는 순간.


화해도 약속도 의논도 없이 자연스럽게 부부관계를 하고 나면,
신기하게도 그동안 쌓여 있던 감정이 조금은 풀린다.
여전히 모든 것이 이해된 것은 아니다.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의 거리가 전보다 가까워진다.

말로는 끝내 풀리지 않던 감정이 정작 말없이 풀려버리는 순간.


결혼 전에는 그런 것은 본능적(부정적인 의미로)인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상태가 아니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 역시도 이런 경험들을 직접 겪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에야 이렇게 되는 이유에 대한 답을 내렸다.

섭섭함, 억울함, 속상함, 배신감 등 다투며 느껴지는 무수한 감정들의 뿌리는 ‘사랑의 한계’다.

부부가 서로 부정적 감정으로 뾰족해지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말이나 행동을 남이 하면 아무렇지도 않을 것들이다.

그런데 그 걸 남편이 하면 섭섭하다.

아내가 하면 배신감이 든다.


사랑하지 않는 것 같고, 사랑이 변한 것 같다.

결국 다툼의 표지 너머에 진짜 자리 잡은 마음은

‘왜 나를 아껴주지 않는 거야?’

‘왜 예전처럼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거야?’

‘왜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

가 아닐까..


본능적(긍정적인 의미로)인 눈빛이 오고 간다.

부부만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표현한다.

그리고 다시 깨닫는다.

우리는 엄마, 아빠이기 전에 사랑하는 두 남녀였다는 것이다.

'사랑의 한계'로 다투던 두 사람이 '사랑의 확인'을 하는 순간이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다투고, 생각과 방식이 달라 부딪히면서도

그와는 별개로 남아 있는 어떤 감정.

부부이기 전에, 서로에게 끌렸던 두 사람이었다는 사실.

우리는 이해해서 함께 사는 것이 아닐지로 모르겠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할 것 같다.

부부의 관계란 비슷한 다툼을 반복하면서도 그렇게 살아가는 것 같다.

때로 부부의 관계가 원활하지 않더라도 사랑은 계속 증명된다.

그래서 부부의 관계와 부부 관계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웃기지 마. 이번만큼은 절대 그냥 안 넘어갈 거야!”


훗. 그래봤자!


내가 사랑했던 남자는 여전히 나를 보면 설렌다.

물론 횟수는 줄었지만‥

이 남자를 사랑했던 나는 여전히 넓은 어깨에 기대고 싶다.

물론 1분도 안되어 불편함에 제자리로 가지만‥

그렇게 수많은 다툼을 대화로 해결하고,

대화로 해결되지 않는 응어리는 사랑으로 풀어낸 덕분에


우린 아직도 이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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