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살 금쪽이 엄마

오금이의 습관

by heyokeum


하노이에 와서도 여전히 살림을 하고 있다.
한국을 떠나기 전 “이제 살림 해방이야!”를 외치며 벅찬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몸에 밴 루틴과 습관이 나를 자연스레 주방으로 데려갔다.

물론 주중에는 에머이가 있어 음식, 청소, 설거지의 절반은 그녀가 맡아서 해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래만큼은 내가 직접 해야 마음이 편하다.
(베트남 세탁기는 온수가 나오질 않는다.

이때 느꼈던 충격이란... 속옷빨래를 일일이 손으로 빨고 과탄산소다를 뜨거운 물에 풀어 20분 정도 담그고 나서 코스로 돌리는데 그래도 에머이가 건조대에서 개어 정리해 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주방 일도 마찬가지다. 아직 크고 있는 둘째는 끼니마다 뭐가 먹고 싶다고 하고 하노이에 1년 동안 살러온 첫째는 항상 먹고 싶은 메뉴가 정해져 있다 보니 결국 나는 다시 불 앞에 서게 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는 유난히 ‘집밥’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가끔 밖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좋았지만 간소하고 따뜻하게 집에서 함께 먹는 밥시간이
각자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고 잘 지냈다는 묵시적 신호처럼 느껴졌다.
나에게 집밥은 단순히 건강을 위한 식사가 아니었으며 그건 관계의 온도를 지켜주는 일이었다.
한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나누는 시간 속에서 하루의 리듬이 맞춰지고 가족의 마음 상태를 자연스레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항상 내 일을 하다가도 살림거리에 발이 묶이고 맥이 끊기고 집중이 흐트러지고 결국 다시 ‘엄마’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고
잠깐 쉬었다가 아이들 챙기다 보면 또 하루가 훌쩍 지나가고
항상 뭔가를 열심히 하고 바쁘게 살았지만 돌아보면 실속이 없는 듯했고 시간은 너무도 빠르게 지나갔다. 내 인생에 남은 건 아이들뿐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 시간, 내 기록, 내 성장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나의 20년은 흘러갔고 여전히 하노이에서도 그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그저 ‘엄마’라는 이름으로 내 시간을 자연스럽게 뒤로 미뤘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이제 더 이상 내 시간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지 않기로.

책을 읽다가 과일을 깎는 것이 아니라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 과일을 깎는 것.
글을 쓰다 아이의 메시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글쓰기에 몰입하는 것.

나는 이제 내 시간을 ‘먼저’ 쓴다.
살림보다 나 자신을 가족보다 내 내면을 의무보다 존재를 먼저 생각하려 한다.

그건 나를 돌보는 작은 혁명이고
오금이의 오래된 습관을 바꾸는 첫 번째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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