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믿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오십 살 금쪽이 #4

by heyokeum


하노이에서 살기 위해 내가 챙긴 짐들은 수저 두 개, 그릇 몇 개, 위아래 덮고 까는 이불과 책, 몇 가지 옷들, 액세서리 그리고 발뮤다 토스터기.
최소한의 짐으로 살아보겠다는 굳은 의지로 한국을 빠져나온 나는 그 무엇보다 가벼웠으리라.
가벼운 짐 속엔 무겁게 쌓여 있던 지난날의 삶을 내려놓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있고
새로운 나라, 새로운 시간 속에서 ‘단순하게 그러나 진심으로' 잘 살아보자 라는 마음 그것이 하노이행의 진짜 이유였다.

하노이에 있는 친구부부는 내가 살 집부터 인터넷 설치, 수도필터, 티브이설치까지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세팅해 놓고 나를 기다려주고 반겨주었다. 하노이 도착하자마자 침대, 소파와 식탁등 꼭 필요한 것들만 급하게 사고 한숨을 돌린 후 있어야 할 그곳을 쓰윽 둘러보니
“아…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익숙한 모든 것을 두고,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둘째 아이와 함께 타지에서 살아 보겠다니.
순간 두려움과 불안이 밀려왔지만
그 모든 감정을 꾹 눌러 담은 채
나는 새로운 일상의 리듬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일주일뒤면 하노이 온 지 2년이 되는 날이다. 내가 하노이행을 결정하며 3년 안에 이루어 내겠다는 몇 가지 조건들이 있었는데 2년이 다 된 이 시기에 돌아보니 과연 조금이라도 바뀌었을까..?

1. 몸을 다스리는 일

ㅡ근육보다 의지의 문제

나는 늘 왜소하고 마른 체형이라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꾸미는 건 꽤나 감각적이고 스타일리시하며 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출산 후 몸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거울 속 내 모습은 생기도 없고 꾸밈도 없는 그저 평범한 게 익숙한 모습이었고 이런 내 모습이 점차 낯설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그래도 '이제는 운동으로 예전의 나를 다시 되찾자.’라며 매번 결심했지만 중년의 몸은 예전과는 달랐고 의욕은 식고 뱃살만 남았을 뿐이다. 노력은 한다지만 핑계를 대기 일쑤였고 운동은 항상 우선순위에서 백번쯤으로 밀려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운동에 대한 목표를 세웠고 그 목표 또한 단순하다.
“뱃살 타파.”
그리고 내년에는 근력과 유연성을 함께 기르며
‘건강한 몸의 습관’을 만드는 것.

운동은 결국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의 연습이다.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내 안의 게으름, 무기력, 그리고 자기 포기의 습관과 싸우는 일이다.
젊은 시절엔 ‘운동만 하면 된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운동을 지속하는 나를 믿는 일’이 더 어렵다는 걸 안다.
하노이의 이 답답하고 습한 공기 속에서 나는 내 몸보다 내 의지를 단련 중이다.
운동은 근육보다 ‘의지의 근력’을 기르는 행위이기 때문에.


2. 글을 쓴다
—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

SNS만 들어가면 유독 두드러기가 나던 내가 나만의 방식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찾아 하노이에 와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브런치 작가 도전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묘하게 흥분이 되며 깨어있는 내내 신경이 쓰였는데 이내 글을 쓰기 시작하자
그건 단순히 ‘표현’이 아니라 내 안의 혼란을 문장으로 비워내는 작업이란 걸 알게 되었고
한 문장을 쓸 때마다 더욱더 나 자신이 명확해졌다.
이것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문장이 아니라 내가 나를 이해하기 위한 대화이며 결국 글을 쓰는 일은 나에게 말을 거는 일이기 때문이다.

3. 책을 읽는 일
ㅡ나를 확장하는 시간

오십의 독서는 젊은 날의 공부와 다르다.
이제 책은 ‘나를 증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나를 다시 만나게 하는 길’이 되었다.
한 줄의 문장이 하루를 흔들고
한 권의 책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며
타인의 지혜를 빌려
내 안의 혼란을 정리하는 과정이다.

읽는다는 건
결국, 나를 확장시키고 성장시키는 일이다.

4. 일을 하는 일
ㅡ 삶의 의욕을 증명하는 것

나에겐 베트남에서의 사업은 단순한 생계의 수단이 아니다.
이건 ‘내가 여전히 도전할 수 있다’는 증거이며 성취감의 원동력이다.
아이템을 고민하고 시장을 탐색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한나라의 민족성과 문화와 경제를 배운다는 건 내 인생에 다시금 설렘과 긴장을 불어넣기에 충분하다.

사업이란 세상과 연결되는 또 다른 형태의 글쓰기다.
생각을 실현시키고 사람을 만나고 세상에 나의 흔적을 남기며 그 과정에서 나는 ‘일하는 나’를 진정으로 원하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5. 언어를 배우는 일
ㅡ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법

영어를 배우는 일은 단순히 말의 한계를 넓히는 게 아니고 생각의 틀을 넓히는 일이다.
또한 사고의 경계를 바꾸고
그 경계가 넓어질수록 나는 다른 나를 만날 수 있다.
유달리 소극적이고 움츠렸던 내게
영어는 ‘새로운 시선’을 주며 생각의 습관을 새로 짜고 오늘의 공부가 세상과 원활히 소통할 수 있는 나로 만들어 줄 것이다.

믿음의 연습
나는 늘 ‘나를 믿는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믿는 척만 해왔다.
시도보다 계산이 앞섰고 용기보다 두려움이 컸다.

성공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어떤 상황이든 일단 믿고 실행했다”라고.
그 믿음이 결국 현실을 바꾼다고.

이제 나는 안다.
믿음이란 ‘감정’이 아니라 ‘행동’이라는 것을.
내가 원하는 나로 살아가고 싶다면 지금 이 순간,
믿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simple is the best.

하노이에서의 삶은 단순하다.
그러나 그 단순함 안에 진짜 삶이 있다.
수저 두 개로 시작한 이 생활이
이제 내 인생의 가장 풍요로운 시간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단조롭게 짜인 이 시간 속에서 다섯 가지 조건중 2년 동안 이룬 것도 있고 지금도 열심히 이루고 있는 것도 있다. 중요한 건 아직도 나에겐 1년이란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다짐한다.
가볍게 그러나 단단하게.
단순하게 그러나 진심으로.
그리고
그 믿음을 잃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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