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금이, 낯선 거리에서 불완전함과 화해하다.
베트남의 길거리는 소리의 전시장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토바이의 경적, 길가 목욕탕 의자에 앉아 나누는 사람들의 활기찬 대화, 그리고 습한 공기를 뚫고 전해지는 진한 연유 커피의 향기, 삐꺽거리는 나무의자, 먼지가 뽀얗게 앉은 비정형적인 테이블까지.
그 무질서함 속에 던져진 나는 마흔을 지나 쉰이 되어서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소란스러운 ‘오십 살 금쪽이’였다.
한국에서의 나는 늘 완벽한 ‘선’ 안에 머물고자 했다. 나이에 걸맞은 품위, 실수 없는 일 처리, 그리고 타인의 시선이라는 매끈한 틀 속에 나를 끼워 맞추려 애썼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칠 때면 쉰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스스로를 자책하며 괴로워하곤 했는데
그런 내가 베트남의 낡은 골목 안으로 숨어들 듯 들어온 것은 우연을 빙자한 어쩌면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의 풍경은 내가 알던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세월의 때가 묻어 페인트가 벗겨진 노란 벽면, 뿌리째 드러나 보도를 뚫고 올라온 거대한 나무, 이가 살짝 나간 채로 내어주는 낡은 찻잔, 무질서하게 방치된 물건들과 적당히 세척된 그릇들은 유달리 청결에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나와 상반된 그림들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불완전한 풍경들이 점차 스며들며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졌다.
왜일까.. 이것은 일본의 미학적 개념인 ‘와비사비(Wabi-sabi)’의 실사판과도 같은데 투박하고 낡고 모자란 것, 부족해 보이지만 그대로가 가진 본질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것, 그 소박함 자체가 묻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날 하노이의 오래된 카페에 앉아 투박하고 이가 빠진 잔에 담긴 커피를 바라보니
쉰 살이 되어도 여전히 욱하고 서툴고 마음 한구석에 금이 가 있는 내 모습과 닮아있음을 느끼며 이것이 진정 와비사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생긴 마음의 스크래치는 숨겨야 할 결점이 아니라 내가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훈장이자 나만의 고유한 텍스쳐 곧 무늬라는 것을 알았으며 완벽한 도자기가 되려고 발버둥 치느라 정작 그 안에 담긴 따뜻한 온기를 느끼지 못했던 시간들은 큰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베트남의 거리는 가르쳐준다. 질서 정연하지 않아도 삶은 흘러가고 낡은 것은 낡은 대로의 기품이 있다는 것을.
이제 나는 내 안의 ‘금쪽이’를 억지로 다그치지 않기로 했다. 서툴면 서툰 대로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그 불완전함을 긍정하는 것.
그것이 오십의 내가 베트남에서 찾은 와비사비의 의미였다.
깨진 찻잔을 금으로 이어 붙여 흉터를 드러내며 숨기지 않고 더욱 빛나는 물건으로 만드는 킨츠기의 작업처럼 조금은 깨지고 바랜 나의 오십 대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음을 이제야 믿어보기로 한다.
하노이의 공기는 무척 답답하고 어두우며 묵직하다. 한국에서의 나였다면 '예민함'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냈을 풍경들이지만 쉰 살의 나는 이곳에서 기묘한 해방감을 맛본다. 규칙과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 이 무질서함 속에서 역설적으로 나는 가장 나다운 숨을 쉬고 있다.
와비사비란
일본어 와비 ( わび , 侘 )와 사비 ( さび , 寂 )는 서로 다른 개념이지만 , 묶어서 와비사비라고 한다. 즉 덜 완벽하고 단순하며 본질적인 것을 뜻하는 와비와 오래되고 낡은 것을 뜻하는 사비가 합해진 와비사비는 부족하지만 그 내면의 깊이가 충만함을 의미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물질적 풍요보다는 부족해 보이지만 남들에게 비치는 삶이 아닌 자신의 본질적인 삶을 추구하면서 ‘ 와비사비 스타일 ’ 이 새로운 삶의 트렌드로 각광받고 있다.
대표적인 와비사비 스타일은 자연스럽고 여백의 미가 있는 단순함을 추구하는 특징이 있으며 , 차분하고 오래된 것의 미학을 중시한다. 따라서 필요 없는 것은 구매하지 않고 , 생활 용품이나 가구는 재활용하거나 고쳐 쓰면서 자기 삶의 안정감과 만족감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