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에 비트를 찍다.

향유하는 mj 씨

by heyokeum


하노이의 가을은 잔인할 만큼 짧다.

피부를 스치는 바람은 이보다 더 청량할 수 없고 햇살은 더없이 따사롭지만 하늘을 자욱하게 덮은 미세먼지는 그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누려야 할 계절을 빼앗긴 채 창밖만 바라보는 나날이 길어지면 우울감이 극에 달하는데 그러다 기적처럼 미세먼지 수치가 낮은 날을 마주하면 나는 마치 대단한 이벤트 당첨권이라도 쥔 아이처럼 가슴이 뛰고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 설렘의 끝에서 이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선 생경한 결심을 해야 했는데 그것이 바로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게 오토바이란 무질서의 상징이자 매연의 근원이며 출퇴근길의 숨 막히는 정체를 만드는 불편함의 대상일 뿐이었다. 거리를 걸을 때 질겁하며 고개를 돌렸던 그 무법천지의 행렬 속에 내가 섞이게 될 줄이야.
이 파격적인 행보의 뒤에는 큰딸의 적극적인 권유와 응원이 있었는데

"엄마, 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르는 세상이 있어" 라는 딸의 그 한마디가 쉰 살의 나를 감싸고 있던
견고하고 두터운 편견의 벽에 금을 와그작내며 부서 버렸다.

정우성 기사와 함께 찍는 '비트'라고 생각하고
큰 용기를 내어 오른 첫 오토바이.

하지만 처음 오토바이를 타는 나는 너무도 긴장되어 오토바이 손잡이를 꽉 쥐거나 기사의 어깨를 슬며시 잡았는데 나의 긴장을 눈치챈 것일까? 그랩기사는 마치 영화 <비트> 속 정우성처럼 다정하게 수시로 백미러를 통해 나의 안부를 물었고 속도를 조절하며 하노이의 거친 도로를 부드럽게 리듬을 타며 나의 불안을 바꿔 놓았다.
헬멧 아래로 스며드는 바람은 차 안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보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고 엔진의 진동이 내 몸의 박자와 섞이기 시작하자 소음으로만 들리던 경적 소리는 이 도시의 활기찬 추임새로 변했다.
나는 더 이상 관찰자가 아니었으며 하노이의 거대한 오토바이 군집 속에서 당당히 한 섹션을 담당하며'비트'를 신나게 찍고 있었다.

사람들은 묻곤 한다. "그 나이에 위험하게 왜?"라고.
하지만 오십이야말로 새로운 도전을 향유하기에 가장 무르익은 나이라고 말하고 싶다.

거친 바람을 뚫고 달리는 오토바이의 야성이 내 안에서 공존할 때 비로소 하노이안으로 들어온 기분이 든 것처럼
편견을 깨부수고 길 위로 나선 '오금이'의 하루는 내 마음의 용기와 선택이 오늘의 나를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깨달았다.

이제는 가끔 하노이의 비트 위로 나의 오십 대를 기록하며 또 다른 뜨거운 도전을 나는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기로 했다.

작가의 이전글베트남에서 와비사비를 찾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