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시작된 불안인지 오금이가 말해주기 시작했다

오십 살 금쪽이

by heyokeum


50대는 삶의 전환기이자 해체기다.
지금까지 쌓아온 정체성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바꾸고 사라지면서 불안이 생기고 역할의 해체로 인해 내가 누구인지 존재가 애매해지는 시기이며
부모 역할은 적당히 느슨해지고 반 평생을 살면서 알게 된 인간관계도 자연스럽게 다시 재정렬이 된다.
몸과 체력도 예전 같지 않게 변하며
체력이 떨어지고 회복 속도가 느려지면서
몸은 생각보다 노화가 가속화되고 있음을 느끼는데 예전 속도를 그대로 원하는 마음과는 불일치가 되어 더 큰 불안을 자초한다.
또한 미래 시간이 짧아졌다는 것을 실감하며 20~30대의 미래는 끝없이 열려 있었지만 '50대의 미래'는 보다 구체적이고 제한된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제 뭘 해야 하지?”, “내가 잘 살고 있는 건가?” 같은 존재적 불안이 강해지는 시기기도 하다.
젊었을 때는 노력하면 될 것 같던 많은 것들이 더는 내 의지만으로 해결되지 않아 이 지점에서 현실 조정이 일어나며 예측할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이 생긴다.

오십의 불안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오래전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기억들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그 기억들은 낡은 필름처럼 흐릿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만큼은 여전히 선명하고 서늘하게 남아서 지금의 나를 가끔씩 지배할 때가 있는데 오금이가 조용히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것도 아마 이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감정은 한 번 지나갔다고 해서
완전히 끝나는 게 아니며 특히 마음속에서 ‘해결되지 않은 아이’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고 환경이 변해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에 나오려고 한다.

"내가 어떤 아이였는지 이제야 말해볼게.
나는 원래 ‘혼자’라는 상태를 잘 몰랐어.
그냥 늘 누군가 옆에 있는 게 당연한 줄 알았고 혼자 조용한 방에 남아 있는 순간이 오면 원인 모를 외로움으로 불안했었던 것 같아.
하지만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건 아니야.
정말 넘치는 사랑과 관심을 주셨지.
근데 그 사랑은 늘 너무 바쁘게 흘러갔어.
항상 해야 할 일 많고 시간에 쫓기고 무모할 만큼 치열하게 사셨거든.
그래서 따뜻하긴 했는데 과보호 같기도 하고 어쩔 땐 방임 같기도 한 그 두 개가 혼재된 시간 속에서 나는 혼자 서보는 법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어.

사춘기쯤 되면 다들 자기 방에서 자고 싶어 한다는데 나는 그게 잘 안 됐어.
잠이 들려고 누워 있으면 괜히 마음이 허전하고 방 안 공기가 너무 텅 빈 것 같이 느껴져 베개 하나 끌어안고 조용히 언니 방으로 갔지.
언니 옆에 살포시 이불을 들추며 들어가면 언니가 ‘아, 또 왔어?’ 하면서 귀찮아하던 표정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
언니는 혼자 자고 싶다며 나를 떼어내려고 애를 써 보기도 했는데 그래도 결국 포기하고 같이 자주는 날이 더 많았지.
그 순간만큼은 누군가의 숨소리, 온기, 옆에서 느껴지는 체온이 필요했던 것 같았고 그때 언니 옆의 그 좁은 공간이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장소처럼 느껴졌어.

나는 그런 아이였던 것 같아.
혼자 있는 법을 몰라서 누구의 온기라도 느끼고 있어야 편안했던 아이.
그런 마음으로 자란 오금이었어."

오십 이후의 성장은 젊었을 때의 성장과는 결이 다르다고 그것은 더 많이 성취하는 성장도 더 크게 확장되는 성장도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내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 그동안 놓쳐왔던 마음의 상태를 다시 읽어내는 일 그것에 가깝다 것을 깨달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도를 유지하는 법.
나의 하루가 식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불을 지피는 법.
갑자기 고요해진 순간에도 그 고요가 나를 덮지 않도록 숨을 고르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
삶이 다시 재편되는 이 시기를
두려움이 아닌 ‘다시 배우는 시간’으로 받아들이는 법.
앞으로의 나는 오금이의 손을 잡고
혼자 있는 법도 함께 있는 법도 천천히 나만의 속도로 알아갈 것이다.


불안은 나를 흔들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나를 다시 만나게 하기 위해 찾아온 손님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조용히 오금이의 손을 잡고 말해본다.

"오금아 앞으로의 우리의 삶은 함께 익어가는 시간이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