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춘기록 0

내 몸 사용설명서

by heyokeum

어렸을 때부터 나는 늘 허약한 편에 속했다. 작고 아담한 체구에 체력은 남들보다 먼저 바닥을 드러냈고 무엇을 시작해도 끝까지 끌고 갈 힘이 부족해 자주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아이들을 키울 때도 이 저질체력은 늘 문제였고 몸은 쉽게 지치고 마음은 피로에 짓눌려 하루를 온전히 단단히 살아낸다는 게 힘겨운 시절이 있었다.

예민한 성격 탓인지 아무 음식이나 먹지 못했고 몸에 좋지 않다고 알려진 것들은 알아서 멀리했지만 정작 기초체력이라는 뿌리 자체가 약하다 보니 불안만 크고 내 몸에 대한 자신감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크고 작은 통증들, 잦은 병치레, 그리고 큰 수술 두 번은 내 몸에 대한 신뢰를 점점 빼앗아갔다. 건강을 걱정하는 마음은 점차 과해졌고 건강식품과 좋은 음식으로 몸을 챙긴다는 명목 아래 실은 불안을 관리하면서 하루를 버티는 날들이 이어졌다.

걱정과 불안은 몸을 더 약하게 만들었다. 아침이면 이유도 모르게 피곤했고 하루의 절반은 무기력에 잠식되어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남은 절반은 겨우 버티는 데에 에너지를 쏟느라 정작 내 삶에 집중할 힘은 남아 있지 않았다.
사람들은 몸이 신호를 보낼 때 귀 기울여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을 계속 흘려보내고 있었고 몸이 보내는 신호를 감당할 자신도 없었으며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적당히 괜찮은 척’만 하면 어떻게든 지나갈 거라고 믿었고 그 믿음은 오랜 시간 나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어느 시점에 이르자 내 몸은 그동안의 침묵을 거두고 선명하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이유 없는 저림과 통증이 찾아왔고 시야는 흐려지고 귀는 둔해졌다. 머릿속은 자욱한 안개처럼 멍해졌고 하루하루가 과하고 무겁게 느껴졌고
어디 하나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러자 문득 자책과 억울함이 치밀었다.

‘오십이 넘으면 정말 이렇게까지 무너지는 걸까? 운동을 피하며 살았던 게으름 때문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자신을 탓하는 마음보다도 이유조차 알지 못한 채 몸이 쇠퇴하는 느낌이 드는 게 더 낯설고 두려웠다.

하지만 문제는 나이도 의지도 아니었다.
난 내 몸의 언어를 배운 적이 없었고 내 몸이 무엇을 말하는지 어떤 신호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 작은 울림들을 제대로 듣고 받아들이는 방법을 모른 채 살아온 것이다. 그저 ‘괜찮을 거야’라고 방관하고 나를 적당히 쓰며 무리하게 밀어붙여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하노이라는 이 낯선 도시에서 내 몸과의 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적어보기로 했다.
이 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디서 멈추는지 어떻게 회복하는지 어떤 흐름과 리듬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를 천천히 관찰하기로 마음먹었다.
무너져 있던 곳을 하나씩 인식하고 고쳐보고 불편한 곳을 도장 깨기 하듯 해결해 가며 잃어버린 감각들을 다시 깨우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어떻게 시작을 하지?

먼저 내 몸을 그리고 부위별로 아픈 곳이나 안 좋은 것을 체크하고 적어가며 사진을 찍듯 내 몸의 상태를 직면했다.

'아뿔싸. 내 몸이 이렇다고? 이렇게 고장 나고 안 좋은 곳이 많다고?'


오금아. 너 많이 아프고 힘들었겠다.

이렇게까지 내가 너를 방관하며 방치했구나.

정말 미안해.

이제부터 내가 너를 아프지 않게 잘 보살펴주고 아껴주고 단단하게 만들어줄게.


그렇게 나를 위한 돌봄은 아주 미비하고 쉬운 운동부터 시작했는데 신기하게도 몸은 바로 반응을 보였다.
“이건 무리니까 멈춰줘.”
“이건 좋아, 조금 더 해도 돼.”
그동안 들리지 않았던 몸의 말들이 아주 조용하고 미세한 진동처럼 울리며 속삭였고 차츰차츰 식단을 바꾸자 속이 가벼워지고 수면을 챙기자 마음의 무게가 달라졌다. 이런 루틴으로 하루의 흐름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고 그 사소해 보이는 조정들이 나를 다시 살아있게 만들었다.

회춘이란

젊음을 되돌리는 일이 아니라 오랫동안 방치된 기능과 리듬을 되살리는 과정이라는 것을.

오십의 내가 마흔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 안에서 새롭게 자라나는 힘과 생명력을 발견하는 것이며 숫자로 계산되는 변화가 아니라 내 몸이 다시 제 리듬을 찾아가는 과정일 뿐.

내 몸은 생각만큼 늙지 않았다.

그저 너무 오랫동안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회춘기록’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이 몸을 다시 배워가려 한다.

이것은 내 몸이 말하는 언어를 듣고 그 신호를 이해하며 다시 살아내는 나를 정성스럽게 기록하며 한 사람의 몸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나만의 조용한 연대기이다.


또한 이것은 건강을 되찾기 위한 관리뿐 아니라 내 몸을 이해하고 다시 연결되는 과정의 연습이며 오십의 내가,
이제야 비로소 내 몸의 주인이 되어가는 여행이자 성장 기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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