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 낯선 화음에 몸을 싣다.

오금이의 도전

by heyokeum


​50이라는 생의 숫자는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참으로 무거운 나이다. 사소한 일 하나에도 백만 번쯤 망설이고 혹여 남부끄러운 모습이 보일까 싶어 뒷걸음질 치는 게 일상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오금이의 용기일까.
"해볼까?"라는 가벼운 혼잣말 한마디가 "그냥 해"라는 오금이의 결단과 만나 일사천리로 성가대석에 서게 되었고 성탄을 준비하며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처음으로 불러본 성가는 나의 마음과 귀를 은은하게 감동시키며 충만함을 주었고 성탄곡은 또 다른 즐거움과 축복을 느낄 수 있었다.

참 신기한 일이다.

평생을 재고 따지며 살던 내가 이토록 싱겁게 용기를 내다니.
성가대 안에서 남들은 악보를 숙지하고 더 나은 모습으로 매끄럽게 부르는데 나만 가사를 틀리고 박자를 놓치고 있지 않은지 가끔 불안해지기도 했지만 이곳은 프로의 무대가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메워가고 화음을 입혀가며 하나의 소리를 만들고 조율과 화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마추어들의 안식처라는 것을 잘 알기에 부담을 내려놓고 즐기면서 할 수 있었다.
또한 그 누구보다 열정적인 지휘자의 손 끝을 따라 한 음 한 음을 짚어갈 때 때론 내 안의 무언가가 울컥하며 터져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만약 ​한국에 있었다면 이 나이에 뭘,

남들이 어떻게 볼까라는 겹겹의 자물쇠가 나를 채우고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 갇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을 터인데 하노이라는 낯선 타국 그리고 적극적인 단원 모집이라는 우연이 나를 그것에서부터 자유롭게 했다.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의식했던 것들을 버리고 내 인생에서 이렇게 크게 노래를 불러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오로지 나의 만족을 위해 목청껏 소리를 내며 즐겼더니 사람들은 내가 성가대가 처음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청음으로 멜로디를 외워 따라가는 건 쉽지 않았지만 잘한다는 칭찬 한마디에 오금이는 아이처럼 어깨가 으쓱해졌다.

나라는 하나의 음표가 타인의 목소리에 조심스럽게 스며들어 아름다운 공존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실감하는 시간들이다.


​아오자이,
​연습이 끝나고 단원들과 함께 아오자이를 맞추러 호안끼엠으로 향했다. 부활과 성탄 같은 특별한 날에 입을 옷을 준비하러 동대문 시장 같은 동쑤언 시장에서 원단을 끊고 혼자라면 절대 발을 들이지 못했을 음습하고 좁은 골목길 끝에서 낡은 공방의 분위기만으로도 고수의 풍모를 풍기는 수선의 장인을 만나러 갔다.
​베트남의 전통 의상인 아오자이를 내 몸에 맞춰 제작하다니 성가대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평생 해보지 못했을 낯선 경험들이 줄을 잇는다.

​​사람들은 흔히 행복이란 단어에 매몰되어 '행복하게 살아야만' 인생이 즐겁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면 행복하게 산다는 것의 본래 의미는 그저 '덜 불행하게' 즉 인생에서 사소한 감사와 경험을 하며 삶의 고단함을 묵묵히 참고 견디며 나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처럼 성가대석에 앉아 어우러짐의 향연에 몸을 맡기고 칭찬 한마디에 기분 좋아지며 낯선 골목에서 아오자이를 만들어 입어볼 생각에 설레며 기다리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지도.

거창한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아도 좋다. 나는 이미 충분한 인생을 완성해가고 있고 오금이는 그렇게 조금씩 더 가벼워지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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