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일함을 열어보니 탄소 섬유 기반의 Type 4 수소 탱크를 제작하는 H 社 담당자로 부터 이메일이 와 있었다. 독일 부임했던 초기 수소 사업 개발을 담당하고 있던터라, 업무 협력 차원에서 미팅을 했었는데 그때 교환했던 명함을 보고 연락을 했던것이다. 프로젝트의 진행경과와 향후 협력이 가능한 부분을 문의하는 그분에게는 아쉽게도 수소와 관련된 모든 사업이 중단되었음을 알리고, 추가로 협력의 기회가 당분간 없을것이라고 통보할 수 밖에 없었다.
2020년 수소는 유럽과 독일의 가장 뜨거운 이슈 였다. 그때는 무언가 모두들 자신감에 차 있었다. 기술의 발달은 세계를 하나로 연결시켰고, 서로 상호 영향을 주고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공동체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기존의 대량생산, 내연기관, 대도시 중심의 무한한 성장이 인류 생존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 소위 선진국들의 주요 관심사항이 되었고, 모두 앞다투어 푸르고 푸른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고 소리 높였다. 수소는 아주 멋진 기술이었다.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자동차를 구동시키고 나면, 깨끗한 물이 나온다. 이 얼마나 멋진 광경인가. 화석 연료 에너지를 사용하고 나면 발생하는 시커먼 연기와 달리, 수소는 마치 인류가 과학 기술로 개척한 순수하고 깨끗한 승리로 보여지기에 충분했다. 유럽 연합은 내연기관 차량에 대한 통제와 함께 수소 에너지 확대를 위한 다양한 지원방안을 발표했고, 그 선두에 독일이 자리하고 있었다. 수소와 관련된 거의 모든 프로젝트에 50 ~ 70% 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했고, 대부분 모든 기업이 수소 사업을 진행했다.
2023년 겨울, 우리 집주인 할아버지는 진지한 표정으로 집안의 벽난로에 사용할 석탄과 장작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2배 이상 인상된 에너지 비용은 모두에게 부담을 안겨 주었고, 결국 화석연료의 시대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수소 생산 원가도 2배를 넘어섰다. 일반인들에게는 마치 수소가 풍력, 태양열 등 친환경 에너지를 통해서 생산 가능한것으로 홍보 했지만, 가장 중요한 수소 생산의 원료는 천연 가스였던 이유다. 러시아를 통해서 주로 수입하던 천연 가스 가격이 급격하게 증가하게 되자, 국가 보조금과 CEO 의 장밋빛 미래에 간신히 의존하고 있었던 수소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은 바로 설득력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얼마전 출장중에 다시 보게된 마블의 히어로 영화 "시빌 워" 에서 어벤져스의 두 리더인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는 서로 다툰다. 국가와 법률에 따른 통제를 받아들이자는 아이언 맨과 각 히어로 각자의 판단과 양심에 맞게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캡틴 아메리카는 서로 결별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국가나 단체, 법률, 조직이 항상 옳지는 않다. 부정 부패와 이기주의, 정치적인 이해관계의 다툼들. 하지만 각 개인의 양심은 과연 떳떳할까? 답답해 보일정도로 정의롭고 우직한 캡틴 아메리카 같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무엇이 푸르디 푸른 수소 세계의 균열을 가져왔을까? 거대한 나라를 지배하는 그 누군가 인가? 그 재료를 재공한 누군가의 실수인가? 단호하게 초기에 진압하지 못한 누군가의 무기력함 인가? 혼란을 통해 새로운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누군가 인가? 워낙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들이기에 이제와서는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알 수 없지만, 한가지 분명한것은 이 모든 장밋빛 환상들은 취약하고 취약한 인간의 선의에 기대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말로 부단하게 노력하고, 애쓰지 않으면 우리는 너무 쉽게 무너진다. 나의 이익과 다른 누군가의 그것이 충돌하는 그때, 아무도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 그때,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아무렇지 않게 결정 내린다. 그것이 초래하는 나 이외의 것들에 대한 영향은 무시한채.
하나의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또 하나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어느 바닷길은 해적에 활동으로 막혀 버렸고, 유럽의 각 국가는 점점 자국 경제와 민족의 보호을 앞세운 우경화 정책의 정권을 선택하고 있다. 사람과 구별되지 않는 AI 가 더 그럴듯한 말과 그림과 영상을 창조해 내는 이 시대에 결국 우리 인류가 AI 에게 어떤 BIG DATA 를 제공하고 있게 될지. 너무 심하게 세계가 서로에 대해 등돌리기 전에 다시 새로운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기를 소망한다. 각 개인의 삶이 너무 팍팍해서 이웃에 대해 돌아보기 힘들 지경이 되기 전에 바닥을 치고 올라와서 서로 서로 여유를 주고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