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부터 카자흐스탄이라는 곳으로 출장을 자주 다녀오고 있습니다. 현지에서 시작된 프로젝트 관리와 영업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최초 계획보다는 더디게 진행이 되고 있지만, 그래도 연결의 끈이 이어지고 있어 한 달에 한번 정도는 그곳을 방문하게 됩니다.
지금 살고 일하고 있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와는 사뭇 다른 사람들과 풍경과 분위기입니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많고, 사람 구경하기 힘든 한적함이 있고, 어딜 가든 차를 타고 다녀야 하는 이곳과 달리.. 제가 간 그곳에는 젊은 학생들이 많고, 사람들로 북적이는 분주함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시내에 교통 체증이 심해서 지난 출장에는 아예 호텔에서 사무실 출근을 걸어서 다녔습니다. 30분 정도 되는 거리인데 덥지도 춥지도 않은 화창한 가을 아침과 저녁에 이어폰을 끼고 라디오를 들으며 젊은 인파사이를 걷는 모처럼의 기회였습니다.
그곳에는 요새 한류가 인기라 많은 사람들의 옷차림이 마치 한국의 그것과 닮아 있었습니다. 유행이 돌고 도는지 허름하고 펑퍼짐한 청바지와 핏 하게 딱 맺는 셔츠의 그 모습이 꼭 예전의 대학시절과 비슷해서 문득 잠시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른이다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아직 솜털도 채 가시지 않았던 그 시절. 가능성은 많았지만 불안했고, 뭣도 모르고 용감했던 그 시절. 시간은 많았지만 돈이 없었던 그 시절.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땐 참 뭘 몰랐다 싶습니다. 잘 몰라서 아무 생각 없이 두려움 없이 그냥 휘적휘적 앞으로 걸어갔구나 싶습니다.
여러 고민들이 많습니다. 이제 독일에서의 시간이 거의 끝나 새로운 곳으로 가긴 가야 하는데 아직 결정된 것은 없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성패와, 가족들의 적응과, 아이들의 학교와, 혹시 모를 불가피한 기러기 생활과. 예전보다 훨씬 잘 알고 있고, 많이 가지고 있는데 오히려 내일을 맞이하는 마음엔 걱정과 두려움이 앞섭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마음을 내려놓아야지 하면서도 수시로 생각은 불쑥 찾아와 머릿속을 휘져어 놓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떠돌이처럼 해외를 다니며 일을 하고 있는 그 언젠가의 선택 때문인 것 같아 왜 그랬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때도 그랬다 싶습니다. 좀 더 젊었고 튼튼했고 화사해서 외로움과 불안함이 상대적으로 가렸을 뿐 그때는 또 절박했던 어려움이 있었구나. 하나하나 열심히 또 잘 견디어 왔기에 오늘은 또 오늘에 맞는 걱정을 할 수 있구나. 그래도 지금은 함께 이 시간을 준비해 나갈 사람들이 있구나.
가을바람이 세차게 부는지 창밖의 나무들이 이리 저리로 흔들입니다. 밤낮으로 쨍하던 여름이 가고, 회색빛 하늘이 점점 더 넓어집니다. 옷깃을 여미고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이제 곧 새로운 계절이 오나 봅니다. 독일에서의 마지막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가고 나면 새로운 봄은 어디서 맞이하게 될지. 아직은 기대보단 걱정이 많지만 그래도 뭐 어쩔 수 없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 밖에는 도무지 할 수 있는 것이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