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가장 시작이 되는 첫 부분에는 이 세상을 만든 창조의 이야기로 시작 된다. 모든 피조물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그 완벽한 세상 이었지만, 사탄의 유혹으로 신의 뜻을 거스른 인간의 근본적 죄악으로 오염되고 만다. 불멸에서 필멸자가 된 인간은 저주받은 땅에서 가시덤불과 싸우며, 땀을 흘려야만 간신히 먹고살 수 있게 된다.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사시사철 풍요로운 열매를 맺어 모든 생물들을 배불리 먹이던 땅이 저주를 받았고, 땀흘려 일해도 이에 맞는 결과를 허락하지 않는 - 보람이 없는 일의 세상이다.
무엇때문에 일 하는가? 경제적 자유 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된 요즘의 유행어 이지만, 결국 이것은 일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어쩔 수 없이 돈을 벌기 위해 일 할 수 밖에 없는 이 세상의 노동인들에게 제시된 일하지 않아도 되는 이상향이다. 물론 경제적 자유를 얻고 나서 하고 싶은것을 마음껏 하라는 설명이 덧붙여 있지만, 당장 드는 생각은 더욱 더 간절하게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것이다.
연초 부터 열심히 출장을 다니며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 다행스럽게도 여러 상황과 타이밍, 주위의 도움으로 고객사로 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는데, 회사로 부터의 체계적인 지원은 여전히 요원하다. 한달에도 몇번씩 7시간 넘게 걸리는 곳에 출장을 다니며 추가적인 업무를 해야 하고, 이제는 안 그래도 바쁘고 정신없는 동료들에게 읍소하며 얼기설기 팀을 구성해야하는 상황이다. 열심히 사업을 만들었지만, 남는 것은 잦은 출장에 따른 피로와, 남겨진 가족들의 희생과,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이다.
프로젝트가 이어지며 점점 더 함께하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새로 오픈한 현장 사무소에서 일하게 된 직원들, 먼 다른곳에서 이곳으로 합류하게된 동료들. 그들에게 나의 보람없는 일에 대한 불만을 토로할 수가 없다. 함께 하게 된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하고, 우리가 힘을 모아서 노력한다면 모든것이 잘 될 거라고 이야기 하고, 상식과 합리성에 기반한 업무 진행을 해야만 한다. 아주 작은 부정적인 균열이 이런 신규 프로젝트에는 치명적인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 나의 어둠은 꾹꾹 눌어 담아두어야 한다.
지식 근로자의 필수 조건이라는 self motivation 은 어쩌면 이런 앞으로 더 성장하고 나아가는 것 보다는, 소외된 노동의 환경에서 하루를 견디기 위한 방법이 아닐까. 보람없는 세상에서 일하며 살아가야 하는 나에게는 딱 하루만큼의 감사가 절실하다. 여러 어려움들이 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잘 진행되고 있음에 감사한다, 각각의 다른 상황에서도 함께하기로 마음먹어준 사람들이 고맙다. 나보다 더 씩씩하게 해야할일을 하라고 격려해주는 가족들에게 감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