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다른 나라에 가 봤던 건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었다. 지금이야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지만, 그때는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 여유롭지 않았던 우리 집 형편에 내가 어떻게 그때 3주가 넘는 긴 일정으로 미국에 갈 수 있었는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의외인 여행이었다.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샌프란시스코의 청량하고 자유로운 바람.
외국어를 전공하고, 회사에 들어와서 다른 나라와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해외출장이 잦다. 해외에서 살고 일하며, 또 다른 해외출장을 다니다 보니 이제는 도대체 나에게 해외는 어디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내가 꿈을 꾸는 건지, 나비가 꿈을 꾸는 건지. 올해 내내 카자흐스탄 사업개발을 목적으로 출장을 다니다가, 얼마 전에는 한 달 기간을 두고 이곳에 도착한 지 벌써 2주가 지나가고 있다. 조만간 모든 가족들이 다시 옮겨 올 수 있는 가능성 앞에서, 과연 이렇게 또 한 번 해외를 떠도는 것이 괜찮은 건지, 돌아가야 할 날이 언제인지 아득하다.
이곳에서 사용할 수 있는 운전면허가 없다 보니, 오래간만에 뚜벅이 생활을 하고 있다. 예년보다 따뜻한 날씨에 가을도 늦어, 챙겨 온 두툼한 바지가 필요 없는 계절을 보내고 있다.
나무가 무성한 도심의 공원에 붉고 노란 잎들이 무성하다. 일요일 오후 산책 나온 가족들과 한가롭게 음악을 들으며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여유롭다. 유모차를 끌고 나와 단풍잎을 모아 장난치는 아이를 보니, 우리 아이들과 함께 했던 그때 그 공원이 생각난다. 모든 것이 쉽지 않았던 그 시간 우리는 항상 이 시간엔 공원으로 산책을 나왔다.
샌프란시스코의 바람이 너무 좋아서, 그때의 따뜻한 햇살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자유롭고 여유로워 보여서, 아직도 해외에서 해외로 기약 없이 떠돌고 있다. 남겨놓은 우리 가족이 영 마음이 쓰인다. 남편을 따라서, 아빠를 따라서 지금은 남아있고 다시 또 오게 될 우리 식구들이 보고 싶다. 우리에게 스쳐 지나간, 또 이곳에서 만나게 될 이국의 바람이 그들에게 행복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가족들에게로 돌아갈 수 있는 그날이 아득하고, 우리 가족들이 이곳에서 함께 모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될 날이 아득하다. 혼자 있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쓸쓸한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