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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출내기 Apr 09. 2022

모빌리티? 모빌리티! 모빌리티?

 언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고차원적인 언어학자의 이론을 굳이 빌리지 않아도 그것이 단순한 사실을 전달하고 보존하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무언가를 담고 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수 있다. 그래서 외국어로 소통하는 것은 어렵다. 화자와 청자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과 이야기의 맥락 안에서만이 어렴풋이 그 의미를 추론해 볼 수 있는것이고, 수 많은 비언어적 공감이 함께 해야 그나마 아주 일부라도 통할 수 있는 것이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많은 용어와 개념을 보면 상당히 많은 부분이 자본주의와 경영학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길었던 서양에서 태어났고, 일본을 거쳐서 가공되고 나서 우리에게 까지 도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대부분의 경제/경영 용어는 그래서 처음 그 생각과 단어를 만들어낸, 조합해낸 사람이 있고, 소개한 책이 있고, 그것을 번역한 또다른 책이 있고, 그것에 대해서 설명하고 연구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 과정을 통해서 천천히 이해될 수 있었던 것이다. 희끗 희끗한 머리의 완고해 보이지만 자신감이 넘치는 경영학의 구루 혹은 유명 기업의 성공한 CEO 의 자서전을 보면 감동적인 스토리와 함께 그동안 안개와 같이 모호하고 설명할 수 없었던 경영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만 같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얼마전 부터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용어들 투성이다. 

메타버스. 모빌리티, 라스트마일, 풀필먼트 센터, 자율주행, RE100, AR, AI, 플랫폼 등등. 회사에서 제공하는 교육 컨텐츠를 보면 교수님이 나오셔서 친절하게 그 어려운 개념을 10분에 맞춰서 명쾌하게 설명해 주시지만, 뭔가 알 것 같으면서도 다시 설명하라고 하면 혀 끝에 맴돌며 말문이 터지지 않는다. 충분히 숙성되고, 소개되고, 요리되고, 적응되지 않은 날 것의 생경한 그것들이 마구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는 시대이다. 이해하고 소화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살아 남으려면 억지로라도 씹어 삼켜야 한다. 


 현재 담당하고 있는 업무가 미래사업 분야이고, 속해 있는 업종이 자동차와 물류 영역이다 보니 그 중에서도 자주 접하게 되는 용어가 바로 모빌리티 이다. 한국어로 번역한다면 "이동성" 이라고 표현되는 이 단어가 자동차 업계의 화두로 떠오른지가 벌써 수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모빌리티는 무엇인지 낯설기만 하다. 이동한다는 것, 움직인다는 것은 어찌보면 살아 있는 모두의 본능이고 숙명이다. 움직여야 사냥을 하고, 채집을 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고, 만든것을 다른 곳으로 가지고 가고, 필요한 것을 사고, 다시 돌아올 수 있다. 걷고, 뛰고, 탄다. 비행기를, 자전거를, 자동차를, 퀵보드를, 버스를, 지하철을 탄다. 이동하며 이동수단을 제공한 누군가에게 돈을 내고, 이동하기 위해서 누군가가 만든 이동수단을 산다. 그리고 다시 그 이동수단을 판다. 이동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부가가치가 생겨나고, 오염물질이 생겨나고, 사고도 생긴다. 누군가는 이동 수단을 통해서 자신을 과시하고, 개인적인 공간을 확보하고, 음악을 듣고, 캠핑을 한다. 이 모든것이 모빌리티 이고, 모빌리티를 둘러싼 생태계 이고, 이것을 소비하고 공급하기 위한 거대한 돈의 흐름이 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것이 갑작스럽게 주목을 받는것일까? 좀더 빠른 교통수단이 생기고, 편하게 기차표를 예약하고, 전기로 작동하는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은 늘상 있어왔던 점진적인 발전의 과정인데, 무엇이 이토록 현대의 거대한 모빌리티 생산자들을 두렵게 만드는 것일까?


미래 모빌리티의 혁신의 거대한 파도의 핵심은 MaaS - Mobility as a Service 이다. 즉, 잠시 필요할때 즉시 이용하는 이동 서비스가 점점 실현 가능한 상황이 되어 가고 있고, 여러 소비자의 기호와 사회적인 분위기가 on demend service 모빌리티를 가속화 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라는 것이 생겨난 이후, 대량생산을 통해서 자동차가 대중에게 보급되고 난 이후, 자동차는 늘 모빌리티의 최정점에 서 있었다. 물론 다른 교통 수단도 많은 발전을 해 왔고, 경제적/산업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의 의미를 넘어 확장되고, 확대되고, 고도화된 또 하나의 분신이 된것이다.  버튼을 누르면 숲속 혹은 폭포의 비밀기지의 문이 열리고, 거대한 로봇이 등장한다. 결국, 내가 다시 등장할 수 밖에 없게 되었군. 로봇의 조종석에 앉아 전원 버튼을 누르면 거대한 로봇의 동력장치가 구동되기 시작하고, 굉음과 함께 몸을 일으킨다. 로봇의 각종 첨단 기능들은 나를 도와서 적들을 물리친다. 보통 다른편의 로봇은 좀 더 못 생겼고, 기능이 좀 떨어진다. 위기가 닥쳐 오지만 숨겨왔던 필살기를 이용해서 승리하고, 나는 다시 안전하게 지상으로 내려와 내가 다시 구한 인류를 지구를 만족스럽게 바라본다.  요즘 자동차를 타보면 종종 내가 이동수단을 타고 있는건지 첨단 로봇을 타고 있는건지 혼동될 때가 있다. 적당한 소음, 발 끝과 핸들로 전해지는 힘과 내가 충분히 컨트롤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나의 실수를 충분히 보완해 주는 첨단 기능, 가장 중요한 - 도로에서 만나는 다른 자동차 보다 훨씬 멋진 내 자동차. 언젠가 부터 자동차는 어른의 숨겨진 본능을 점점 노골적으로 자극해 왔고, 이것을 위해 우리는 엄청난 돈을 지불하고 있다.  얼마나 큰 돈을 지불하고 있는지 대략 계산해 보면, 1년 250일을 모빌리티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 즉, 어딘가에 출근하고 퇴근해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버스 기본요금인 1200원을 갈때 2번, 올때 2번 이용한다고 보면 하루에 약 4,800원의 비용이 발생하고, 250일이면 120만원이 소요된다. 자동차를 탄다면, 3천만원 짜리 차를 사서 1년이면 대략 감가가 60% 발생하니, 차 자체의 가치만으로 12백만원 비용이 발생하고, 보험료 1백만원, 기름값 240만원 (20만원 x 12개월) 을 더하면 1년에 1540만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그래서 돈을 모으려면 차를 사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의 경험을 본다면?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아침 저녁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과 내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의 차이를. 물론 대중교통이 잘 발달되어 있고, 심각한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서울과 같은 곳이라면 자동차가 주는 편리함보다 불편함이 더 클 수 있겠지만, 서울이 아닌 다른 곳을 생각해 본다면 자동차가 주는 만족감은 대단하다. 고단한 하루 일을 마치고 내 차 문을 열고 앉아서 문을 닫으면 안정감과 고요함이 찾아온다. 편안한 의자에서 음악을 들으며 달린다. 편리함을 넘어서 대중교통이 발달해 있지 않은 지역이라면 자동차는 모빌리티를 보장하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 


MaaS 는 여기에 커다란 돌을 던진다. 굳이 소비자가 자동차를 소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필요할 때, 내가 원하는 형태의 서비스를 다양하게 바꿔가며 충분히 편리하고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새로운 IT 기술의 발달이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본 스토리이다. 내가 원하는때 신청만 하면 엄청난 양의 다양한 컨텐츠를 접할 수 있고, 내가 요구하는 서비스종류에 따라서 영상의 화질도 선택할 수 있고, PC 에서 보던것을 모바일에서, TV 에서 볼 수 있고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다. On demand 의 대표적인 서비스 넷플릭스다. MaaS 가 정말로 활성화 된다면 더이상 아무도 자동차를 사지 않을 것이다. 아니, 누군가는 여전히 자동차를 취미로, 생계수단으로 구매하겠지만, 대다수의 대중은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필요한때 이용할 것이다. 지금은 뭐니 뭐니 해도 자동차를 만드는 기업이 최고다. 수천억원을 들여서 멋진 기술과 디자인, 감성 적인 부분까지 터치하여 새로운 컬러와 소리까지 만들어 내고, 소비자에게 화려하고 멋지게 짜잔 하며 소개한다.  그런데 더 이상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고? 나는 MaaS 기업의 자동차 생산을 위한 하청업자가 되어서 필요한 자동차를 그냥 만들고 납품만 한다고? 가뜩이나 전기 자동차는 내부 구조가 단순해져서 엔진이고, 변속기고 필요 없어지고,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범용 제품이 되어 가는데... 이것이 모빌리티 거인들을 두렵게 만드는 암울한 미래이다. 정부는 자동차가 만들어 내는 수많은 사고와 오염물질을 해결해야 하는 핵심과제로 지목하며 암울한 미래를 재촉하고 있다. 자동차를 생산하는 기업 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부가가치 사슬 속에서 생존해 나가는 거대한 생태계의 모든 일원들이 두려워 하는 미래 이다. 앞으로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르다 보니 어쨌든 투자하고, 시작하고, 내가 하고 있다고 광고하고, 내부에 조직을 만들고, 뭐라도 해보라고 경영방침을 하달하고, 서로 서로 전략적 협업을 맺고 있다. 하지만 아직 눈에 보이는 커다란 대전환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폭풍전야 인지 찻잔속의 태풍인지 아직은 아무도 모를일이다. 


미래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담당자로서 모빌리티 서비스를 사용해 보지 않는다는건 또 한국적 마인드에서 말도 안 되는 것이라 (이것도 참 이상한 부분이긴 하다. 왜 다 해봐야 할까?) 벼르고 벼르다가 때마침 개인적으로 사용하던 자동차가 수리중인 이 시점에 모빌리티를 사용해 보고자 마음을 먹었다. 지금 근무하는 곳에서 가장 큰 대기업이 운영하는 모빌리티 APP 을 설치해 보니, 아주 멋지다. 아주 간단한 서비스 가입절차만 마치면 바로 멋진 환영 메세지가 나오며, 마치 내가 진정한 모빌리티의 선구자가 된것 같은 기분이다. 지도가 나오고 수백대의 차량이 지도에 빼곡하게 나오며 한번만 클릭하면 바로 이용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내가 왜 그동안 개인 차량을 이용했을까? 지금 자동차를 2대나 사용하고 있는데 (근무하는 지역에서는 자동차가 생활 필수품이다) 정말 이젠 개인 자동차가 필요없는 시대가 된걸까? 

퇴근할때가 되어서 다시 APP 을 켜보니, 웬걸 그렇게 많던 자동차가 한대도 없다. 아뿔싸.. 이미 다른 누군가가 나보다 먼저 타고가 버린것이다. 지도를 보니 저기 남쪽의 기차역 근처에 차가 잔뜩 몰려있다. 그래, 이번에는 내가 미리 챙기지 못한 실수다. 기회를 다시 엿보다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공항에서 사용해 보기로 한다. 공항에는 항상 이용 가능한 자동차가 있다.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한대를 점 찍어 놓고, 비행기가 도착 지역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다시 APP 을 켰다. 2대가 남아 있다. 예약을 걸고, 황급히 거의 뛰다 시피해서 자동차에 도착해서 APP 으로 문을 열고 자리에 앉았다. 드디어 이용을 해 보는 것인가? 그런데, 자동차 키가 안 보인다. 보통 공유차로 제공되는 차는 기본 옵션이라 그런지 거의 대부분의 자동차에 탑재된 On/Off 버튼이 없다. 자동차 안을 한참 살피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잠시 내려서 살펴 보고 다시 문을 여는데 문이 잠겨 있다. 다시 열리지 않는다. 자동차는 내 눈 앞에 있는데, 이젠 APP 에서 검색이 안 된다. 결국 한참을 기다리다가 택시를 불러서 타고 갔다. 해당 기업 고객센터에 자동차 키 위치에 대한 가이드가 없었다고 불만을 제기 했더니 다음에 이용 가능한 10분 쿠폰을 하나 보내 주었다.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이 남았구나 하는 생각에 다행스럽기도 하고, 미래사업을 진행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씁쓸하기도 하다. 그래도 언젠가는 내가 혹은 누군가가 MaaS 를 만들어 내겠지. 자동차 2대를 유지하려면 허리가 휘는데, 그 미래가 빨리 오면 좋겠고, 그 미래에 나도 한 켠을 지키고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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