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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출내기 Apr 25. 2022

우크라이나, 러시아, 유럽

 연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야기로 떠들썩 하다. 특히 지금 근무하고 있는 유럽지역에서는 더더욱 그 이야기가 연일 매스컴과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린다. 바로 이웃의 일이라고 느껴지는 것일까, 아직 완전히 잊혀지지 않은 그 시절 전쟁의 공포를 떠올려서 일까. 아이들 학교에서는 우크라이나로 보내는 구호물품을 모으고, 각 기업은 자사의 서비스에 우크라이나 기부 기능을 추가하고, 일부 적극적인 사람들은 아예 국경 근처로 가서 지낼곳을 찾지 못하는 난민을 찾아 자신의 집 한켠에 살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조용한 한국 기업과 한국인 동료들을 향한 현지 직원들의 실망감이 보이기도 한다. 정치적인 메세지를 표현하는 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서일까. 뉴스를 통해서 보도되는 우크라이나 정치인들과 난민들의 인터뷰를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깊은 탄식이 새어나온다. 내가 공부했고 배워왔던 그 언어,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 생소한 된 소리 발음과 끝없이 이어지는 음소들이 가득한 러시아어로 말하고 있는것이다. 공격하는 사람들도, 죽어가는 사람들도, 서로 상대방의 탓이라고 비방하는 사람들도 모두 같은, 또는 거의 비슷한 슬라브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나의 고국인 한국에서 많이 보았던 풍경이다. 이제는 우크라이나 분단까지 공공연하게 언급되고 있으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되풀이 되는 역사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유럽과 러시아 - 애증의 관계속에서 애꿎은 우크라이나가 희생양이 되고 있는 상황이 과거 냉전의 출발선상에서 분단되었던 우리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러시아에서 일하고 있을때 유럽의 주요 국가를 출장으로 여행으로 방문하게 되면 묘한 기시감에 휩쌓이곤 했다. 이탈리아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을 보면 세인트피터스버그의 카잔성당을 떠올리게 된다. 에르미따쥐 미술관과 여름궁전은 프랑스의 베르사유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긴 세월 동안 축적된 문화적 / 지적 자신감과 구석 구석까지 빈틈없이 흘러 넘쳤던 부유함이 뭍어나는 서유럽과 달리 러시아의 그것은 어딘지 모르게 소박하고 어색한 부분이 있다. 예전 러시아의 황실에서는 프랑스어를 사용했다고 하던데, 어쩌면 서유럽을 동경하던 그 시절의 흔적이 러시아 제 2의 도시 세인트피터스버그에는 남아 있어서 그런가도 싶다. 모스크바는 이와 사뭇 다르다. 거대한 붉은 색의 성채가 자리잡은 크레믈린은 황실의 성 이라기 보다는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요새이며, 광장 한쪽의 바실리 성당은 전형적인 그리스 정교의 양파머리 지붕을 가지고 있으나 기묘한 형형색색의 선들이 꼬여서 승천하는 마치 어느 숲속 샤먼의 나무를 연상시킨다. 러시아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두 도시 - 세인트피터스버그와 모스크바는 서유럽을 동경하는 마음과 압도하고자 하는 러시아를 대표하고 있는것도 같다. 서유럽과 러시아가 지금껏 그래왔듯이 정서적으로 지리적으로 아슬 아슬한 균형을 계속 유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건 순진한 착각이었을까. 2차 세계대전의 사망자는 6천만명이라고 한다. 이 중에 러시아의 사망자가 2천4백만명이라고 한다. 나찌가 러시아에서 패배한건은 러시아 군과의 전투가 아니라 끝없는 러시아의 대지와 혹독한 겨울 때문이었다. 모두에게 충분한 트라우마가 되었을 법 하다. 愛 보다 憎 이 더 커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 법 하다. 서유럽이 되고자 하면서도 유럽에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우크라이나. 러시아를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처로서 이용하기만 원했던 서유럽. 노쇠해져가는 최고 권력자의 떨어져 가는 지지율을 보며 영구적인 정권확보를 위한 획기적인 전기를 만들고자 했던 러시아. 그 배경과 원인이 어디 있던지 간에 글로벌이 일일 생활권으로 연결된 21세기에 아직도 무력을 이용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애꿎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보통 사람들이 욕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상처를 주기는 쉬워도 치유되려면 헤아릴 수 없는 시간과 보상과 사죄가 필요할 터인데,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간에 깊어진 증오의 바다를 어찌 회복해 나가야 할지 까마득하기만 하다. 


 앞으로 해야 할일들이 산더미다. 조만간 전쟁이 끝나고 다시 보내기 위해서 임시 방편으로 쟁여 놓았던 수천개의 러시아 向 컨테이너들도 결국 다시 왔던 곳으로 되돌려 보내서 장기 대책을 수립해야 하고, 전쟁과 무관하게 결국 두개의 다른 세력으로 분리된 유럽의 정치 경제 상황속에서 중장기 전략 자체를 완전히 새롭게 구상해야 한다. 러시아에서 수입하던 천연가스에 의존하던 유럽의 각 국가들이 친환경 에너지 정책으로 급격히 전환하게 되어, 계획만 세우던 수소 관련 사업 모델을 빨리 구축해서 어떻게든 발을 들여 놓아야 한다. 유럽 각 국가의 우경화 경향에 따라 대표적인 약자로 살아 가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로서의 나의 처지도 고민해야 한다. 유목민 같은 노마드의 삶과 일을 지속하는 것은 언제까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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