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출내기 Apr 27. 2022

코로나와 개인정보

 겨울을 지나 봄이 오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알레르기 증상이 다른때 보다 좀 길어진다 싶었고, 여행의 피로가 쌓여서 그런가 싶었는데, 드디어 나에게도 그 분이 오셨다. 아침마다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 간이 검사 키트에 두 줄이 떠있는 것이다. 인사팀에 보고를 하고, 근처 PCR 검사장에 가서 검사를 해 보니 선명하게 Positive 붉은 글씨가 보인다.  현지 직원들은 절반 이상이 재택 근무를 하고 있던 터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국인 동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짐을 챙겨 재택근무를 하기 위해 사무실을 나섰다. 아직 컨디션 자체는 그렇게 나쁘지 않은데,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

한국 뉴스를 보니, 한국은 이제 확진자가 확연하게 줄어들고 있고, 의무화 되어 있었던 사회적 거리 두기는 이미 시행이 중단되었고, 실외에서 마스크 착용 역시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거의 2년을 끌어왔던 글로벌 코로나 사태가 점점 끝나가는 구나 싶다. 


  코로나 환자가 연일 수십만명을 넘어가고, 갑자기 생긴 대형 사태에 누구도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적절한지 우왕좌왕 하던 그 시절, 본사에서는 늘 그렇듯 가장 먼저 "현황" 에 대한 일일보고를 요구하기 시작 했다. 각 국가의 확진자, 새롭게 발표된 규정, 출입국 제한 사항 등등. 물론 모든일에 대한 기본이 "사실" 이기 때문에 이것을 종합하는 것은 당연한 일 이지만, 사실을 안 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일일보고는 실제 그 정보를 생산해 내야 하는 담당의 입장에서는 부수적인 불필요한 또 하나의 업무 일 뿐이었다. 전세계 해외법인의 일일보고를 다 종합하면 매일같이 두툼한 보고서가 나올텐데.. 통제 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누군가의 불안감을 떨치기 위한 중요하지 않은 업무에 얼마나 시간이 소요되는지!

가장 중요하게 관리되던 것은 무엇보다도 직원들의 코로나 확진 발생 여부였다. 이 부분 만큼은 주변 직원들의 안전을 비롯하여 인사관리에 요긴하게 사용되는 부분이라 최대한 정확하게 작성하려고 애썼는데, 사내 변호사가 개인정보 처리에 대한 주의 사항을 알려준다. 코로나 확진 여부를 개인에게 물어보고 답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백신 접종 여부도 물어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현지 직원들 대부분이 스스로 본인의 건강 상황에 대한 부분을 자발적으로 리포트 하고 있지만, 회사가 이러한 개인적인 사항을 물어보는 것 자체가 법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디에서 언제 감염이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개인의 동선을 물어보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한 부분이다.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적절한 "권고" 를 할 수 밖에 없고, 이것을 받아 들이거나 따르는 것은 각 직원들의 개인적인 의사결정 사항인것이다. 


  생각해 보면 보통의 한국 기업들은 참 다양한 정보를 직원에게 묻고 또 보관한다. 회사 업무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업무 경력을 넘어서서 부모 형제의 학력과 경력도, 주택 보유 및 형태, 어떤 자격증이 있는지, 군대는 다녀왔는지, 다녀왔다면 전역할때 최종 계급이 무엇이었는지, 종교, 취미와 특기 (아직도 취미와 특기의 차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까지도. 물론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개인정보에 대한 관리 기준이 강화된 터라 어떤 부분은 이미 공식적인 회사의 설문 사항에서 사라졌겠지만, 여러 부분을 서류에서 또 회사 내 관계에서 당연하게 물어보고 또 답을 한다. 이렇게 수집되는 정보는 과연 잘 활용될까? 그동안의 나의 커리어를 보면, 개인이 나서서 본인이 하고 싶은일에 대해서 일관되게 주장하지 않는 이상 그저 단순한 참고 사항으로만 사용되는것 같다.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면 이미 그 분에게 전해 졌을 나의 인사자료의 내용을 다시금 새롭게 수시로 설명 드려야 하는 것을 보면, 그 분들도 그렇게 요긴하게 사용하는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그 세세한 설문의 목적은 정말 그 사실을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설문에 응답해야만 하는 구직자에게 회사라는 곳은 나의 개인적인 겨력과 취미와 기호와 가족을 포괄하는 곳이구나 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함이 아닐까. 본사의 게시판에 가장 빈번한 게시물은 누군가의 경조사와 관련된 부분이다. 물론 함께 나누면 기쁨은 배가되고 슬픔은 반이 되겠지만, 서글프게도 본인의 경조사를 게시해야만 회사에서 부여하는 관련된 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과연 그 모든 게시물이 순수한 나눔을 위한 것일까 생각하게 한다.  


  얼마전에 보았던 Raymond Dalio (레이달리오) 의 책에서 인상깊게 보았던 부분이 떠오른다. 극단적인 투명함. 그가 표방한 투명함은 개인정보에 대한 부분이 아니라 그 사람의 업무 스타일과 업무 성과에 대한 부분이다. 야구 카드로 비유되는 개인의 신상 카드에는 그 사람의 모든 회사 내 에서의 업무 이력과 성과과 기재되고 업무를 추진하는 방식에 대해서 명확하게 기술된다. 상호 동의된 상황에서 모든 회의는 녹화된다. 녹화된 회의를 통해 협업하는 방식이 객관적으로 검증되고, 이후에 새로운 업무를 부여할때 성과와 스타일을 고려한다.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 왔다. 얼마나 많은 문제와 실상이 회의실에서 감추어 지는지. 같이 일하는 사람이 정말로 원하는 부분을 알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부수적인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본인이 원하는 것을 감춘 채로 (본인도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수 있다) 거대한 조직에게 스무고개를 강요 하는지.


 완전히 잘못된것 만은 아니다. 우리의 서로를 향한 수 많은 관심들이 결국 팀웍을 만들고, 혼자서는 도져히 해 낼 수 없는 일을 똘똘 뭉쳐서 해 내게 한다. 우리가 헌신하는 (직원들은 갈아 넣는다고 표현한다) 그 많은 부수적인 업무 시간 외 노력들이 출발이 한참 뒤쳐진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을 글로벌 경쟁자 보다 더 빠르고 빛나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필요 이상으로 많은것들을 허비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코로나가 불러온 비대면 업무 환경은 이미 비대해 졌던 회사의 정보와 관계의 기업 문화를 강제로 건조한 성과와 사실의 시대로 떠 밀어 가고 있다. 변화의 시기에 걸 맞는 중간관리자가 되고 리더가 되기를 바래본다. 어제 회식에 참석하지 않은 직원의 괘씸함을 되새겨 보기 전에, 단기/중장기적으로 우리가 같이 이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적절한 역할이 부여 되었는지, 진행 과정을 점검하고 피드백을 주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정말 관심 가져야 할 부분에 대해서 관심 가질수 있는 리더가 되기를 바란다. 물론 나에게 찾아온 이 뒤늦은 손님이 아무런 상처를 남기지 않고 수월하게 떠나시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우크라이나, 러시아, 유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