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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출내기 Jun 15. 2022

숲 옆의 집과 H

 장단점이라고 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나눌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점을 찾아내고 나서 억지로 그것을 참아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이해 시키기 위한 다소 작위적인 정의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일상의 상당 부분에 통용되는 것을 보면 아주 틀린말은 아닌것 같다. 2년전부터 독일에 살게 되면서 포기하게 된것들도 있지만, 한가지 분명하게 누리고 있는 것이라면 숲을 바로 옆에 두고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전형적인 독일의 주택가는 - 여느 모든 독일의 도시들이 그러하듯 가장 번화하다는 도심의 광장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데, 약 200 가구 정도 모여 있는 동네 바로 옆에 큰 숲이 하나 있다. 도심에 포위된 서울의 동산을 주로 경험하며 지내다가 거대한 숲의 한 귀퉁이에 옹기종기 모여 살게되다보니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여러가지 것들을 누리게 된다. 숲속에는 어찌 그리도 온갖 생명체들이 가득한지. 큰 나무, 작은 나무 등등 나무가 지천이고, 나무위에서는 각종 새들이 노래하고, 숲을 산책하다보면 노루, 여우, 딱따구리, 두더지 등등 다양한 동물들을 만나게도 된다. 그 속에서 사람들이 한 켠에 자리 잡고 살고 있는것이다. 자연 앞에 겸손하게 된다. 조심하게 되고, 같이 살아가는 다른 생명을 존중하게 된다. 


 숲이 바로 옆에 있는 집에 살게 되면서 가장 큰 변화가 생긴 부분이 있다면 반려견을 키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 아파트에 있었더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시베리안 허스키를 1년전 부터 입양해와서 같이 지내게 된 것이다. 이미 다 성장한 후에 유기견으로 구조되었던 녀석을 보호단체의 도움을 받아 만나게 되어서 비록 귀여웠을 강아지 시절을 놓친것은 아쉽지만, 4살이 넘어 이미 성숙한 상태가 된 그 녀석은 꽤나 점잖고 듬직하다. 허스키는 썰매견이라서 활동량이 많고, 장난기가 많다고 하던데.. H 는 (프라이버시를 위해 이니셜로) 하루 종일 누워있는게 일상의 대부분이다. 대신 우리를 따라 다니며 근처에 눕는다. 나무 마루위를 찹찹찹 발톱소리를 내며 가볍게 걸어와서 나와 아내의 반경 1m 안에 어김없이 자리를 잡는다. 다른 집 반려견들을 보면 각종 애교에 천방지축 빙글빙글 주인들과 어울리던데, H 는 누워 있다가 쓰다듬어주면 슬그머니 다리를 들어올리고 천천히 발랑 눕는다. 25kg 넘는 녀석이 뒤집어 져서 배를 보여주며 가만히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본다. 퇴근해서 집에 가면 천천히 다가와서 축축한 코를 들이밀고 냄새를 맡다가 뒤로 천천히 뒤로 돌아 엉덩이를 보여 주고는 고개를 뻗어 나를 바라본다. 갈색눈이 순박하기 그지 없다.  


 시골에서 자라났던 어린시절의 풍경속에는 항상 마당의 "개" 가 있었다. 시골집의 필수 요소 였던 텃밭의 푸성귀, 닭장의 닭들과 함께, 먼지 폴폴 나는 맨 흙바닥에는 늘 개가 있었다. 항상 최소 한마리가 있었고, 새끼를 낳으면 복슬복슬한 강아지들이 마당을 가득 채웠다가 시장으로 이웃으로 팔려가고, 한동안 시간이 흐르면 그 어떤 새끼가 대를 이어 같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래도 늘상 동물들에게 친절하셔서 어머니 눈치를 보시며 남은 음식을 미리 챙겨 놓았다가 푹푹 끓여 별식을 만들어 주셨고, 빨간 장갑을 끼고 개를 쓰다듬어주곤 하셨다. 우리집의 개들은 대를 이어서 같은 이름을 사용했었는데, 시골집에서의 개는 마치 이런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물건 내지는 배경 같았기 때문이 아니었나 어른이 된 이제서야 새삼 그 이유를 추측해 보게 된다. 학교에 다녀오면 그 녀석은 어쩔줄 몰라하며 흙먼지를 피우며 무식하게도 생긴 쇠줄을 철렁거리며 작은 주인을 반겼다. 가끔씩 마당의 땅을 파고, 담을 넘어 가출한 녀석을 찾아서 오징어 다리를 들고 아버지와 함께 온 동네를 찾아 다녔는데, 결국 한두시간 후에 동네 개 짓는 소리를 따라 가보면 이제야 잘 못을 깨달았다는 듯 꼬리를 말고 눈치를 보며 확 도망치는 것도 아니고 반갑게 다가오는 것도 아닌 애매하고 어정쩡한 그 녀석을 발견하고는 했다.  그때의 마당은 우리 가족의 생존을 도와주던 공간이었고, 각각의 역할이 있었다. 마당에서 자라는 푸성귀는 가장 흔하게 밥상에 올라오는 반찬의 재료였고, 꼬꼬댁 소리와 함께 태어난 따뜻한 알은 훌륭한 단백질 보충원이 되었다. 개는 밤낮없이 우리 가족을 지켜주는 파수꾼이자 잔반처리를 책임지고 있었다. 마당에서의 푸성귀가 아닌 마트에서 포장된 야채를 사고, 근육량을 높이기 위해 잘 포장된 닭 가슴살을 먹고, 최첨단의 CCTV 와 전자식 도어락이 그 역햘을 대신하는 도시의 삶은 어느덧 여러가지를 잊게 하였다. 


반려인이 되어 집안에서 키우고, 건강에 좋다고 하는 사료만 먹이고, 계절에 따라 털을 빗겨 주고, 목욕을 시키고, 하루에 3번은 꼭 같이 숲에 산책을 가고, 차로 유럽 도시를 여행 갈때면 같이 데리고 가는 H 를 보며 종종 그 옛날 대를이어 같은 이름을 쓰던 녀석들이 생각나곤한다. 한번도 그 녀석을 데리고 동네 한바퀴라도 돌아보지 않았던 어린시절 나의 무관심이 부끄럽기만 하다. 


H 는 벌써 4살이 넘었기 때문에, 중형견의 평균 수명인 10여년을 생각한다면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은것 같다. 벌써부터 저 큰 녀석이 옆에서 사라진다면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걱정이다.  한 없이 나 스스로의 자아로 똘똘뭉쳐서 나 아닌 다른 모든것은 나의 목적에 따라 판단하고 나의 이익과 손해에 따라 이해득실을 따졌던 시간이 지나간 것일까. 결혼을 하며 나의 절반이 뭉텅 무뎌졌고, 아이를 키우며 또 남은 절반이 흐려지고 나니 비로소 나 아닌 다른 생명을 존중하고 겸손하게 되는것 인지. 살아 간다는 것이 어쩔 수 없이 다른 생명에 신세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 이겠지만, 필요 없이 많고, 가혹한 희생을 다른이에게 강요하지 말아야지. 나도 기꺼이 누군가, 무언가의 삶을 위해 희미해지더라도 억울해 말아야지. 자연의 생명력과 회복력을 넘어서지 않는 숲의 일부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앞으로 언젠가 돌아가게 될 조국에서도 평범한 보통 사람의 생활이 되기를 바란다. 이곳의 생활을 마치고 돌아갔을때 우리 H 와 함께 살 수 있는 숲 근처의 동네를 흔하디 흔한 보통 사람의 동네에서 찾아 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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