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출내기 Sep 28. 2022

감사의 계절

  보통 사람들의 한해는 12월에 끝나고 1월에 시작되지만, 회사원의 한해는 10월이 되면 내년 사업계획을 수립하면서 어수선한 연말 분위기가 되곤한다. 한해를 돌이켜 보면, 연초에 계획했던 거창한 사업들은 하나도 된것이 없고, 내년에는 도대체 뭘 해야 하나 고민하게 되지만, 그래도 늘상 90% 수준을 달성했다고 숫자로 보고 할 수 있는건 어느새 적당한 사업계획 수립이 몸에 베어 있는 덕분인가 싶다. 사업계획과 함께 이 맘때 즈음이면 공공연하게 살생부가 돌기 시작한다. 신기한건 어느 누가 큰 성과를 이뤄내서 진급한다는 이야기 보다는 이번에 집으로 돌아갈 임원들이 누구인지 여부가 늘상 화제가 된다는 점이다. 영화는 반전이 있는 영화, 소설은 공포 추리 소설이 평범한 일상에 짜릿함을 선사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희망으로, 누군가는 바램으로, 누군가는 개인적인 원망으로 각자의 범인을 상상하고, 서로서로 수근거리게 된다. 틈틈히 전해지는 여러 단서들 - 이번 사장님과의 식사에서 누군가가 배제 되었다더라, 어떤 임원의 책상이 요새 유난히 깨끗한것 같더라 등등 - 에 따라 점점 그럴듯한 시나리오가 만들어져 간다. 등장인물이 내가 잘 아는 그 누군가라서, 정점의 자리에서 추락한다는 극적인 상황, 나도 언젠가는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희망과 불안.. 직장인들의 일상에 충분한 흥분을 가져올만한 마르지 않은 흥행의 소재가 된다.


   그리고 연말이 되면 감사가 나온다.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그 감사가 아닌, 잘못된 것을 찾아내고 바로잡는 그 감사가 나온다. 회사에서의 감사는 그 존재 자체로 어떤 초자연적인 힘이나, 공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직장인들의 머릿속에 마치 저승사자 내지는 검찰의 이미지로 연결된다. 뉴스에서 흔히 보는 서류 박스를 가지고 검사를 하고, PC 를 확인하고, 카드 내역을 점검하고, 개개인별로 불러서 면담을 한다. 가끔씩 횡령 같은 형사 처벌이나 고발과 연결될 수 있는 사안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치사하고 소소한 지적사항들과 함께 왜 더 잘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는지 따지게 된다. 감사를 통해서 잘못된 것이 다시 개선되고, 다음에는 더 잘 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지면 좋겠지만, 그것이 회사에서 감사를 하는 주된 목적이겠지만 (요새는 감사팀이라는 말도 대부분 업무개선, 혁신팀 등 바뀌었다) 결국 결론은 누군가의 게으름과 능력없음과 무관심과 규정위반으로 귀결된다. 모두 개인의 잘못인 것이다.  잘못의 대상으로 지목된 사람은 대부분 도망치듯 떠나거나, 계약이 해지된다. (임원의 경우)


  보통 기업에서 임원이 되려면 사원4년 - 대리 4년 - 과장 4년 - 부/차장 5년 등 거의 2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물론 IT 기업이나 오너의 자제와 같은 특별한 상황은 언제나 존재한다. 20년의 세월동안 20대 후반에 입사했던 직원은 50대를 바라보게 되고, 자녀들은 대학생이 되고, 핸드폰에 존재하는 연락처의 90% 는 회사와 관련된 사람이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막히는 도로에서 차를 타고 또는 발디딜틈 없는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같은 곳에 가서 같은 사람들과 같은 규칙이 존재하는 또 다른 사회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잘못했다고 한다. 내가 능력이 없다고 하고, 내가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고 한다. 익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낯선 느낌이 공포영화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듯이 어제까지는 나를 지켜주던 곳이 이제는 나를 배척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충분한 시간을 허락해 주지 않는다. 인사명령이 공식화된 바로 그 시점에 즉시, 그가 누렸던 모든것은 중단되는 것이다. 


 그 누군가에게 업무 감사를 보내는 대신 그동안의 수고와 노고에 대해서 진정한 감사를 표 하면 안 되는 것일까? 누구도 자신이 무대에서 떠날 시기라고 인정하지 않고, 정점의 자리에서 누리고 있는 그 지위의 달콤함을 스스로 내려 놓지 않기 때문에, 억지로 밀어내야만 하는 것일까? 스스로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미리 부여 한다고 해도, 결코 수십년의 세월을 정리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냥 딱 잘라서 인정하지 않을래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통보해 버리는 것일까? 

 떠나는 사람도 평생동안 이뤄왔던 결과물들을 돌아보고,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덕담을 건네고, 혹여 남아 있었던 미안함과 서운함을 털어내고, 허전한 마음을 완전히 달랠수는 없겠지만 이제 온전하게 본인의 것으로 돌아오는 아침과 점심과 저녁을 기대하며 떠날수는 없는 것일까?


  올해도 어김없이 감사의 계절이 왔다. 감사를 준비하고, 감사를 대응하고, 감사에 대비하고, 감사를 당하고.  아직 어떤분이 올해의 자유인이 되실지 알 수는 없지만, 나만이라도 그 분께 진심어린 감사를 전하고, 수고하셨다고 말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숲 옆의 집과 H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