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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출내기 Jan 06. 2023

배움과 성장의 길

  몇 년전 때마침 그럴 나이가 된건지, 한국 생활이 주는 안정감 때문인지, 도처에 널려 있는 고칼로리의 음식들 때문인지, 한참 동안을 입어 왔던 바지가 기분 나쁘게 엉덩이와 허리를 조여오던 때가 있었다. 젊은 직원들 처럼 바디 프로필을 찍겠다던가, 몸짱이 되겠다던가 하는 거창한 목표는 없었지만, 어느새 늘어나 버린 사이즈를 보며 가뜩이나 보람없이 흘러만 가고 있는것 같았던 지난 시간들이 결국 나에게 남긴것은 이것인가 하는 처량함에 운동을 시작했다. 다이어트는 몸으로 들어오는 것은 줄이고, 많이 사용하는 것이 최고다. 해외 법인 업무 관리 특성상 저녁에 통화를 하고, 새롭게 해야 하는 일이 많은데, 저녁을 먹기 위해 밖에 나갔다 온다면 한시간이 또 훌쩍 지나가 버리고, 결국 더 늦은 시간에 퇴근할 수 밖에 없던터라 야근할때 저녁을 먹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짧게라도 러닝 머신을 뛰기로 했다. 효과는 아주 좋았지만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 받지 못하고 일과 운동으로 혹사된 정신과 육체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재해에 어찌 할바를 모르고 끊임 없이 구조 요청을 보내왔다. 우연히 러닝머신의 모니터에서 찾은 먹방은 훌륭한 위약이 되었다. 화면 가득한 음식과 푸짐하고 탐스럽게 그것을 한입에 먹어버리는 연예인을 보고 있다보면 실제 몸으로 들어온 영양분은 없지만 허기를 속일 수 있었고, 시간은 흘러 목표한 시간을 채울 수 있었다.  


  요새 유행하는 여러 sns 플랫폼중에 개인 취미가 친목 도모가 아닌 일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 관리에 특화된 것들이 있다. 주변의 대부분이 거기에 가입이 되어 있고, 내가 속한 기업에서 진행하고 있는 이벤트도 게시가 되고 있어서, 가입자를 늘리고 좋아요 표시를 하기 위해서라도 나도 가입을 하라는 은근한 압박이 있었다. 프로필 사진을 고르고, 출신 학교와 속해 있었던 기업, 관심 분야 등등 기입을 하고 나면 여러 친구들이 추천 명단에 올라온다. 내가 적극적으로 다른 누군가와 연결되려고 하지 않아도 지속적인 push 알람을 통해 나에게 알려온다. 나도 누군가의 추천 명단에 들어왔는지, 한번도 만난 적 없는 누군가가 나에게 지인으로 등록해 달라고 연락이 온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의기 양양한 자신감넘치는 사진을 가진 누군가가 내 프로필을 살펴 보았다는 흔적을 친절하게도 알려준다. 이 사람이 도대체 왜? 가입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눌렀던 동의 버튼 어딘가에 있었던것 인지, 매일 아침이면 다양한 기업의 구직 정보가 주르륵 올라온다. 작은 기업들도 있지만 알만한 기업들이 사람을 구하고 있다. 한 발짝만 내딛으면 마치 새로운 기회와 멋지게 일 할 수 있는 기회가 펼쳐질 것만 같다.


 예전에 처음 해외 법인에 근무하고 있을때 본사의 임원들이 출장을 오게 되면 본래의 업무적인 목적에 따른 준비 이외에 지역의 역사와 명소에 대한 자료를 만들고 외우곤 했다. 인구는 얼마인지, 지금 시장은 누구 인지, 주요 무역지표는 어떠한지, 우리 나라와의 교역은 어떤 물품이 주력인지, 저기 보이는 저 큰 건물은 언제 지어진 무슨 목적의 건축물인지, 저 동상은 누구인지, 거기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무엇이 있는지. 

최근에는 그럴일이 없다. 구글링을 하면 바로 검색이 되니, 물어볼 필요도 없고, 미리 공부할 필요도 없다.

아주 쉽다. 굳이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냥 클릭 몇번만 하면 모든 정신적이고 지적인 갈망이 채워지는 것만 같다.


옛날 이야기를 자꾸 하면 꼰대라고 하던데. 

예전에는 새로운 공부를 하려면 먼저 도서관에 가서 관련된 책을 잔뜩 찾아서 책상위에 쌓아 놓고 목차 부터 읽어 내려갔었다. 한 30분 읽다가 커피 한잔하고, 바람 한번 쐬고 다시 들어와서 먼지를 털어내며 보다보면, 태반은 불필요한 내용인 경우가 많았다. 운 좋게 방향이 맞는 자료를 발견해서 자세히 들여다 보아도 결국 얻을 수 있는 것은 한 두 가지 idea 와 몇개의 참고할 만한 문장 정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비슷했다. 어딘가 새로운 곳에 속하기 위해서는 신고식이 필요했다. 어길 수 없는 집합시간에 모여 전투적으로 먹고 마시며 서로를 탐색해 나가고, 처음 조직에 들어온 새내기는 얼마나 헌신할 수 있는지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의식을 열정적으로 치루고 나서야 간신히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을수 있었다. 원래 새로운 것을 한다는 것은 어렵고 힘들었다. 방향을 모르는 것은 당연하고, 어디에도 정답은 없었다. 자료를 찾고, 물어보고, 새로운곳에 가 보고, 어색함과 위험과 피곤함을 감수하고 부지런하게 움직여서 찾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이었다. 한참 동안 실마리를 찾을 수 조차 없었고, 도대체 언제 결실이 나오는 지도 알 수 없고, 답답하고 불가사의한 그 시간을 보내야만 그 중의 일부가 간신히 살아 남아서 싹을 틔울 수 있는 것이었다. 굳이 그렇게 까지 했어야 했나.. 과연 그것이 가장 효율적이었고, 최선의 길이었나, 그 것을 통해서 얻게 된 것들이 과연 모두 바람직한 것들이었나 자문해 본다면 100% 그렇다 라고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그 새로운 것들이 오늘의 나를 구성하고 있는 전부인것은 분명하다. 

 불합리하고 미련해 보이는 과정을 통해서 바깥에 존재 했던 무언가가 기존의 습관과 세계관으로 똘똘 뭉친 나의 자아속으로 비집고 들어오고, 실금 같은 균열을 만들고 또 채워지면서, 어느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나중에 무언가 자라날 수 있는 공간이 생기기도 하고, 쌓여서 무엇이 심겨질때 양분이 되기도 하고, 어느새 마치 처음부터 원래 그 모습이었구나 하고 익숙해 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배운다는 것은 이렇게  온 몸의 세포에 흔적이 생겨 나는 과정이 아닐까. 그리고 나도 다른 누군가에게 그렇게 천천히 받아들여 진 것이 아닐까. 처음에 바랬던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라고 하여도 지금의 나는 그 결과이고, 지금의 시간들은 언젠가 또 다른 나와 세계를 만들어 가겠지. 그게 당연한 배움과 성장의 과정이었는데, 어느새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것 뿐인 대뇌피질의 얕은 자극을 내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오래간만에 고국에 다녀와서 잔뜩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욕심껏 사왔다. 올해는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하고, 미련하게 읽어 나가야지.  한참 동안 매끈 매끈 말랑 말랑한 스펀지로 닦여서 흠집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이, 남의 빛만 반사하고 있는 나를 다시 밖에 내어놓아야지. 벅벅 긁어서 흔적을 남기고 새로운 생각으로 채워야지. 시청자가 아닌 제작자가 되어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재생목록을 만들어야지. 어제에 쌓아놓은 것을 생각을 꺼내 먹는 것 보다 더 많이 쌓아서, 내일을 위해 살을 찌워야지.  

물론, 운동할때 먹망을 볼거고, 직장인들 SNS 좋아요도 누를거고, 구글 검색도 할거다. 재미있고 편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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