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출내기 Jan 11. 2023

지속 가능성

ESG 와 CSRD - 유럽과 독일의 산업계를 술렁이게 하고 있는 두 단어이다.

사전적인 의미야 여러 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nviroment (환경) / Social (사회) / Governance (지배구조) 를 의미하는 약자인 ESG 는 과거 시장에 적절한 서비스와 재화를 공급하고 이에 따른 이윤을 추구 하던 기업에게 환경/사회/지배구조 각 영역에서의 책임을 요구 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사실 잘 피부에 와 닿지는 않는다. 매출과 이익의 무제한적이고도 영속적인 확대를 지속적으로 요구 받고 있는 기업의 한 일원으로 15년이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소비자에게 그럴 듯하게 보여서 사업을 확대하려는 마케팅 전략의 한 부분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CSRD 는 더욱 생소한 개념인데 - Corperate 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 - 그대로 직역하면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보고 지침이다. 기존에 기업이 스스로 혹은 투자자를 통해 발행하던 "돈" 과 관련된 재무자료 이외에 기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리포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의지속 가능성이라는 부분은 무언가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무한 성장하고 확대 되어야 하는 기업에게 있어서 지속 가능성이란 것은 가능한 것일까? 유한한 자원과 한정된 소비자의 돈을 차지하기 위해서 무한하게 경쟁하고, 그 굴레에서 도태된 기업은 사라지는 현실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단어는 모호하고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독일에 와서 근무하게 되며 접하게되는 여러 가지 낯선 환경들 중에서 사업적인 측면을 본다면 단연 충격적인 것은 "사업을 확장하지 않으려는 많은 기업의 성향" 이다. 물론, 이곳도 자본주의 사회이고, 더 싸고 좋은 물건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 새로운 기업이 등장하고 시장 內 변화가 생겨나고 하는 움직임이 존재하기는 하나, 기존에 경험해 왔던 한국과 러시아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시장의 "정체감" 과 "안정감" 이다. 각 기업의 담당자를 만나서 서로 젠틀하게 이야기 하고, 새로운 사업 제안을 하고, 다음에 어떻게 발전 시켜 나갈지 과제를 정하고, 이후 후속 미팅을 하는 것은 동일한데, 그 속도와 정도가 매우 더디고 조심스러웠다. 물론 내가 제안 했던 상품과 사업이 그렇게 시장 파괴적인 강점을 지니지 못하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다른 곳에서 만났던 많은 기업들은 기본적으로 어떻게 하면 경쟁에서 이기고, 더 많은 매출과 수익을 올리는 부분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기에, 새로운 공동의 사업을 만들어 내고 그 균열에 나도 참여할 수 있었으나, 이곳에서는 뭔가 다른 흐릿하고 지지부진한 무언가가 있었다. 처음에는 우리의 제안이 덜 매력적이고, 덜 파격적이라서 그런가 보다 하는 생각에 더욱 공격적으로 접근을 하곤 하였으나, 제안이 공격적이면 공격적일 수록 상대방은 더욱 조심스럽게 변하곤 하였다.  


이곳에서는 적당한 규모의 적당한 기업을 자주 보게 된다. 하나의 제품과 서비스에 전문화되어 오랜 시간 동안 같은 장소에서 같은것을 생산하고, 예전부터 거래해 왔던 같은 고객에게 판매하는 사업 모델을 보유한 기업이다. 기술력이 있고, 자금력이 있지만, 본연의 영역에서 벗어난 도전적인 사업확장을 하지 않고, 원래 그 자리에서 점진적인 고도화를 해 내는 곳 들이다. 고객 역시 쉽게 거래처를 바꾸지 않는다. 분산되어 있고, 토착화 되어 있고,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기업 문화는 여기서 만나게 되는 독일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소규모로 분산된 지역 공동체 중심의 문화. 이 곳을 이끌어 가는 주류 정치 흐름의 하나인 사회 민주주의 (혁명이 아닌 민주적인 방식으로 평등, 환경, 인권 등 사회적 가치를 실현) 는 지금까지 글로벌 신자유주의의 파도에서 각 마을 단위의 경제체계를 여러 방식으로 보호하고 있다. 분산되어 있는 거주 지역과 낮은 인구 밀도는 최근 거대화된 도시를 중심으로 대형화 되는 글로벌 트랜드 경향들을 감속화 시키고 있는것으로 보인다. 초대형 유통 채널 (스타필드 같은) 이 없고, 익일/새벽/당일 배송같은 퀵커머스 역시 아직 없다. 즉각적으로 충동적으로 소비할 수 없고, 어쩔 수 없이 미리 계획하고 기다려서 필요한 것을 구할수 밖에 없다. 제품과 서비스가 소비자의 Needs 에 촘촘하게 대응되지 않는다. 소비자의 결정이 즉각적으로 응답되는 한국의 환경과는 다르다. 지역 기반의 기업은 정해진 그 자리에서 원래 늘 만들어 오던 것을 계속 만들고, 서비스 업체는 같은 손님에게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소비자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작은 소규모의 상점과 서비스 업체를 필요에 따라 방문하여 준비된 것 만큼 구매를 한다. 한국에서 가격인하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일시 대량 구매는 오히려 가격 상승과 납기 지연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제품이 없으니, 다른 곳에서 가지고 와야 하는 것이다. 불편함과 기다림의 과정은 그것에 익숙해 지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답답함과 짜증을 유발하지만, 결국 비자발적인 절약을 습관화 하게 하고 소비의 과정에 고민을 더하게 하고, 결국 내 것이된 것에 대한 반가움이 된다. 이곳의 보통 사람들은 환경을 보호하고, 정당한 노동력을 사용하고, 지역 기반에서 생산된 더 비싸고, 느리고, 불편한 서비스와 제품을 구매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지속 가능성" 이라는 것은, 다시 바꾸어 말하면 기업에게 있어서는 "공동체와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과도한 이윤 추구를 포기 할 수 있다" 는 것이고, 소비자의 관점에서는 "공동체와 환경을 위해서는 불편함을 감수 할 수 있다" 는 의미로 다시 읽혀진다. 생존의 기반이 되는 환경과 사회를 고려하지 않은채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은 이곳에서 어려운 일이고, 불필요한 일이고, 어색한 일이고, 두려운 일인것 이다. 그래서 그들의 눈에는 오히려 이러한 환경적, 사회적인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채 무작정 공격적으로 다가오는 우리의 제안이 매력적이기 보다는 보다는 불편했을것이고, 전세계 요소 요소에 글로벌 네트워크가 있다는 거대한 규모의 자랑은 지역 공동체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라는 불안감을 초래 하였던 것은 아닐까.


다행스럽게도 EU 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보고 지침은 향후 유럽 의회 내부 논의를 거쳐서 2년 이후에야 발효된다고 하고, 법령이 아닌 지침 사항으로 각 국가의 개별적인 법제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한다. 독일은 다른 국가 보다 한 발짝 더 나가서 ESG 에 대해서 각 기업이 운영하고 있는 공급망 (원자재 생산 업체, 운송사 등 가치 사슬에 포함된 협력기업들) 까지 관리 해야 한다는 법이 23년 부터 발효 되었으나, 아직은 독일 內 3천명 이상 직원이 있는 기업만을 그 적용 대상으로 하고 있어 몇몇 특정한 대형 기업에게만 해당된다고 한다. 여러 경제 단체들이나 글로벌 기업들은 과도하게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을 부여하려고 하는 유럽 연합과 각 국가의 정책에 반발하여 적용 범위를 축소하고 영향을 반감 시키기 위한 치열한 로비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정도와 시기의 문제일뿐, 그 방향은 이미 명확하다. 지속 가능성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있는 유럽의 소비자와 기업의  눈높이에서 구체화가 진행될 것 이기에, 그들에게 큰 혼란과 문제는 없을것이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단어 조차가 역설적으로 느껴지는 우리 기업과 또 나에게는 앞으로 많은 공부와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   


 얼마전에는 건강검진을 위해서 2년 하고도 반만에 고국에 방문했었다. 여전히 역동적인 한국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풍족함과 편리함에 환호성을 질렀지만, 당연했던 몇몇 풍경들이 새삼스러웠다. 아파트 상가 벽면을 빼곡하게 뒤덮고 있던 간판, 새벽 배송을 넘어서 당일 배송까지 된다는 이커머스 업체의 광고, 골짜기 골짜기 어느 시골을 가도 굽이 굽이 나타나던 식당들, 번화가 바닥에 뿌려진 화려한 폰트로 장식된 광고전단지들, 1+1 으로 진열된 상점앞의 길거리 까지 점령한 상품들.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 보다는 나의 존속 가능성에 더 집중할 수 밖에 없는 무한 경쟁의 현장이다.  과연 이것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나는 얼마나 더 버티며 소비자로 대접 받을 수 있을까? 누군가가 소비자에게 선택받지 못해서 도태되거나, 내가 더 이상 소비할 수 있을 만한 경제적 여력을 상실하고 낙오자가 되겠지만, 그 자리를 다른 누군가가 또 다시 새롭게 채워가며 이 무한 열차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것만 같다. 덜 먹고, 덜 사고, 덜 버린다면 그래도 좀 더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열차를 멈춰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봄이 이미 왔을수도 있다. 

천천히 속도를 줄여가다보면 보일 수도 있다. 



작가의 이전글 배움과 성장의 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