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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출내기 Jan 29. 2023

당신이 없었더라면

1980. 1. 29.

정말 어찌 그렇게도 다를 수 있는지. 어제도 한참동안 침대에 누워서 위를 올려다보며 조잘 조잘 한편의 모노드라마를 찍고 있는 그 사람을 보며 든 생각이다. 구글링을 해 보니 사람의 얼굴에는 80개의 근육이 있고, 8천 종류의 표정을 지을 수 있다고 하던데.. 평상시 거울을 보면 믿겨지지 않는 그 말이 그 사람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 라는 생각이 든다. 빛나는 눈동자와 톡 적당히 튀어나온 귀여운 이마를 가지고 있는 그 사람과 나는 정말로 다르다. 곱슬머리, 생머리. 쌍꺼풀이 없는 눈, 있는 눈 같은 생김새는 당연히 다르고, 성격도 판이하다. 감정의 변화가 전혀 없는 나와 달리 즐겁고, 슬프고, 화나고, 행복하고, 기대하고, 바라고, 설레여 한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고 늘 상대적인 관점에서 우물쭈물하는 나와 달리 늘 정확하고 명쾌하다. 별로 하고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것도 없는 나와 달리 하고 싶은게 차고 넘치고, 늘 다 하지 못함에 아쉬워 한다. 교과서에 써 있는 것 같이 주어 서술어 접속어 까지 연결된 표준어 문장 밖에 구사 할 수 밖에 없는 나와 달리, 때와 상황에 꼭 맞는 부산어(?)와, 의성어, 의태어, 별명짓기, 말 줄이기 전문이다. 할 줄 아는 것은 가만히 생각하는 것 밖에 없는 나와 달리, 당장 실행에 옮긴다. 15년째 같은 회사에서 같은 사람들과 같은 일을 하는 나와 달리 공통점을 찾기도 힘든 다양한 사람들과 새로운 것들을 한다. 러시아에 선교를 다녀오고, 카자흐스탄 언어 비교 논문을 쓰고, 학교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치다가, 독서지도사가 되어서 배움터에 나가다가, 외국인 친구들과 독일어를 배우고, 피아노를 치며 소팽의 환상즉흥곡을 칠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하더니, 이제는 30년전에 배우다가 그만했던 바이올린을 다시 시작하고 있다. 그렇게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고, 실천에 옮기는 것도, 그리고 다 해내는 것도 신기한 사람이다. 본인은 늘 이도 저도 아닌 삶을 살아왔다고, 쌓인게 없다고 푸념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 다양한 분야에서 이룩한 각각의 성취가 대단하다. 한가지 분야에만 매몰되어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시대에 보기 드문 르네상스적 인간이다. 

 

우리는 같은 학교의 같은 학과에서 처음 만났다. 총총 갈색 단발머리를 찰랑이며 코트를 입고 언덕을 내려오던 모습이 생생하다. 합창반 학회 개강총회때 꽃무늬가 수놓인 하얀 잠바를 입고 어둑한 조명 아래 앉아 있던 모습도 기억난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나서 그 사람이 언제 일어나나 눈치 보다가, 집에 갈 시간이 어쩔수 없이 먼저 일어나서는 괜히 내용 없이 나 먼저 간다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뜬금없이 문자도 보냈다. 동아리 방에 둘이 앉아 노래도 불렀다. 학교 매점에서 과자 사서, 자판기 커피와 같이 마셨다. 첫해 겨울에 인파가 가득했던 명동 한복판에 크리스마스 인파에 밀려 다시면서 손을 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결국 손도 못 잡고 돌아왔던 그 날의 아쉬움이 생생하다. 이미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고, 어른의 연애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 보면 고등학교 4학년 정도 되는 그런 나 였다. 

 

21년 전의 21살 이었던 나는 그다지 눈에 띄거나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도 역시 동일하지만 더더욱이나) 머리는 반 삭발에 가까운 짧은 머리에, 패션 테러리스트라고 불리워도 모자람이 없었던 아무 감각업는 옷 차림. 그때는 왜 그랬는지, 겉모습에 신경을 쓴다는 것이 뭔가 내면의 본질을 가볍게 여기는 것 같은 순진했던 정신적 결벽증의 시기였기 때문이라고 변명하지만 암튼 정말 요만큼이라도 꾸밀줄을 몰랐다. 융통성도 없어서 하지 말라는게 있으면 절대로 하면 안 되는줄 알았다. 외부 음식물 반입 금지라는 안내문을 보고 먹던 커피를 가방에 넣어서 가지고 들어가려던 여자친구를 심각하게 말렸던 심하게 꽉 막힌 사람이었다. 자판기 믹스 말고 다른 커피는 먹어본적이 없어서 카페 메뉴에 가득한 곳에서는 당황해 하곤 했다. 이벤트라고는 생각해 본적도 없고 할 줄도 몰랐다. 당연히 돈은 없어서 우리의 데이트는 늘 분식점에서 수제비 하나와 떡볶이 하나를 시켜서 나눠먹었다. 군대 라고 하는 2년동안의 헤어짐을 예정해야했고, 심지어 미래에 대한 현실감각 역시 처참한 수준 이었다.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소개팅을 했더라면, 주선자에게 한참을 나에게 악감정이 있냐고 했을 법한  無 스펙, 無 센스.  그렇게 호불호가 분명하고, 똑 뿌러진 사람이 도대체 나를 왜 받아들여 주었을까. 얼마전에 물어보니 이렇게 웃으며 대답한다. 으이구, 내가 어렸지. 

 

우리는 삶을 바라보는 방향이 같았다. 믿음과 세계관이 같았다. 

서로를 바라 보았다면 깨어졌을 금방 깨어졌을 환상들이, 더 돋보였을 다른점과 단점들이, 같은 곳을 나란히 바라봄을 통해서 더 넓은 세계에 대한 확장으로 역전되었다. 같은 풍경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 된다. 내가 지칠때 그 사람은 생생하고, 그 사람이 주저 앉아있을때는 내가 끌어 준다. 서로 대화하며 태어나서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부분을 생각하게 되고, 숨겨져 있었던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같이 걸어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수많은 문제들은 같이 해결해 나가야 하는 공동의 과제가 된다. 선택의 기로와 갈림길이 있고, 의견이 달라질 수도 있지만 결국 도착해야 하는 곳이 같을진대, 조금 같이 다른 길을 가도 아무 상관없지 않은가. 더욱이 그 사람은 매력적이고 에너지 넘치고, 재미있고, 사랑 스러운 동행자이다! 점점 닮은 부분이 많아진다.  어 하면 아 하는 정도가 아니라 호 해도 아 하는 정도가 된다.  한 단어도 끝내지 않았는데, 이미 같은 다음 답변을 짐작할 수 있고, 전화 통화로 여보세요 만 해도 어떤 상태인지 기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말이 헛나와 엉뚱한 것을 물어보고 있는대도 맞는 답을 해 준다. 신기한 소름이다.  


같은 것이, 다른 것이, 예쁜 것이, 재미있는 것이, 매력 있는 것이, 설레는 것이, 의외인 것이, 놀라운 것이, 활기찬 것이, 다양한 것이 시작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같은 이유로 끝이 될 수도 있다. 서로 완전하게 다르고 분리된 두 존재가 하나가 되는 것은 사실 설명이 불가능하고 그대로 반복할 수 없는 과정이다. 기막힌 타이밍, 뜨거운 열정, 묘한 분위기, 옆에서 부추기는 친구들, 지지해 주는 가족들, 인내의 시간, 버텨주는 의리, 기약업는 기다림, 잔잔한 한결같음, 기쁨과 슬픔의 눈물, 어쩔수 없는 실망, 한번 더 뒤 돌아 보게 만드는 희망이 불규칙적으로, 다른 온도로 두 사람에게 부어진다. 여느때 같으면 그대로 흘러가 버렸을 순간들이 사랑의 촉매가 작용하여 녹이고, 흔적을 남기고, 달랐던 것들이 섞이고, 예전과 다른 무언가가 되어 간다. 어렵고, 아슬아슬한 시간이 지난 그 결과물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만족감과 충만함을 준다. 그래서 함께 걸어온 길이 신기하고, 자랑스럽고, 놀랍다. 


그 사람은 길게 살고 싶은 욕심이 없다고 버릇처럼 이야기 한다. 지금은 행복하지만... 본인이 없었어도 이 세상은 그대로 잘 돌아갔을 거라고.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과 같이 걸어온 시간이 아쉽지만,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그 아쉬움도 없었을 거라고 말한다. 쓸쓸하고, 허전하고, 허무한 말이다. 그렇게 열심히 최선을 다 해서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그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 그 말을 들을때면 그가 홀로 걸어온 지나간 그 어떤 시간들이 원망스럽다. 완전하게 채워주지 못하고 치유해 주지 못하는 내가 아쉽다. 하지만 맞는 말이다. 사실 우리는 거의 무한한 시간과 공간속에 흐릿한 한 줄기 안개와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있거나 없거나 세계는 별 상관 없다. 그 사람이 없었을 수도 있고, 나도 없었을 수 있다. 그 사람은 언젠가 없어질 것이고 나도 사라질 거다. 그리고 그 타이밍은 분명히 다를거다. 우리는 어떻게 만나서 지금 함께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래서 정말 다행이다. 그 사람이 태어난 날이 고맙다. 각자 희미했고, 만나서도 흐릿하지만 지금 이렇게 함께함이 감사하다. 그는 씩씩하게 가슴에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와 잊혀지지 않는 아픈 기억을 안고서 잘 버텨왔고, 어설프고 모자랐던 21살의 내가 있었던 그 곳에 있어 주었고, 철모르고 허황했던 시간을 지나, 한 가족으로 지금까지 같은 곳을 바라보며 도란 도란 투닥 투닥 같이 걸어가 주었다. 아직 그사람에게 생일은 축하받을 필요가 없는 날 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고마운 날이다. 무채색으로 채워진 심심한 나의 인생속에 삶의 생기와 다채로운 색채를 채워준 사람이다. 



스산한 날씨가 계속이다. 해는 점점 길어지고 있는것 같은데, 질척한 겨울의 끝자락이 여전하다. 손끝 발끝을 시렵게 만든다. 분명히 그 사람은 춥다 춥다 하며 안방 이불속에 들어가 글을 쓴다고 동동 거리고 있을 거다. 이런날에는 벽난로에 불을 붙여 주어야 하는데. 뜨끈하게 집안을 온기로 데우고 거실 구석에 전등도 하나 더 켜서 빛도 채워 주어야 하는데. 그리고 같이 반려견 데리고 숲 한바퀴를 돌고 오면 몸도 마음도 훈훈해 지는데. 얼마전에 먹고 싶다고 해서 한국 마트에서 사온 호떡 반죽해서 꿀 듬뿍 넣고 구워서 따뜻한 커피와 같이 먹으면 참 좋다 좋다 할텐데. 우리 즐겁게 삽시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세월을 귀하게 여기며 삽시다. 함께 살아가는 것이 즐겁네요. 특별한 것을 원하지도 않고, 특별한 것을 해줄 수 있지도 않지만, 당신이 나를 채워주는 것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로 당신의 일상을 지키고 채워줄께요. 생일 축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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