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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출내기 Feb 03. 2023

강육약식

 아직까지 다른 사람들 앞에 개인적인 일상과 관심사를 드러내 놓는 것이 어색해서 아직 SNS 를 하지 않고 지내고있다. 하지만 얼마전에 인스타그램에 가입을 하게 되었는데, 이유는 아내가 올린 사진에 하트를 남기기 위해서 이다. 같이 살고있는 반려견과 관련된 모임이 있고, 거기에서 정기적으로 반려견 사진을 올려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아내도 인스타그램을 시작했고, 나도 가입을 하게 된 것이다. 재미있는 부분은 내 인스타그램이 아닌데, 주로 나와 우리 반려견이 출연한다는 점이다. 정작 계정의 주인인 아내는 멀찌감치 유리창문에 사진 찍는 모습이 가끔 보일뿐. 처음에는 초상권 침해가 아니냐며 게시하기 전에 사전 검열을 거치도록 요구했는데, 이제는 그냥 올라온 사진을 보며 꾹 하트를 누를 뿐이다. 이번에 올라온 사진은 식탁 옆에 다소곳하게 앉아 먹을것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활동력이 넘친다는 시베리안 허스키의 본성이 무색하게 하루종일 누워 있는 녀석인데, 식사하려고 식탁에만 앉으면 어느새 다가와서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온갖 애교를 피운다. 물론 애교 스킬이 능수능란하지 못해서 고작 한 다는건 엉덩이 들이밀기, 팔 아래로 고개 빼꼼히 내밀기, 식탁앞에 앉아서 앞발 허공에 휘젖기 밖에 없지만, 그 눈빛 연기는 그야말로 일품이다. 흑백이 멋지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그 카리스마 있는 얼굴을 하고 있는 녀석이 슈렉 고양이 뺨치는 눈동자를 하고 바라본다. 

 산책을 나가는 집 근처 숲길에서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온갖 숲에 살고 있는 생물들의 기척을 다 빨아들일듯 연신 킁킁 거리는 모습을 보니 추운 겨울 이 곳까지 나온 보람이 있다. 얼마전까지는 낙옆이 쌓여 있던 곳 이었는데, 이렇게 눈이 덮히고 나니 또 다른 세상이다. 얼마전까지 살아있는것으로 가득했던 숲이 고요하지만, 조만간 봄이 오고 다시 온통 숲은 생기로 가득하겠지.


 생태계를 바라보는 여러 시각이 있겠으나,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말은 적자생존/약육강식/먹이사슬이다. 환경에 따라 적합한 생물이 살아남고, 약한 생물이 강한 생물의 먹이가 되고, 각 생물은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로 연결되어 있되, 그 구조가 피라미드와 같다는 아주 기초적인 생물학 상식이다. 훨씬 더 많은 생물학적 지식이 나에게 주입되었겠지만,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는 것은 그 만큼 반복적으로, 복합적으로, 다차원적으로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의 모습은 예전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유지될 것인데자연속에 자연스럽지 않은 존재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인간이다.  자연의 모든것이 자연적으로 본능에 따라 동일한 모습으로 살고 죽고를 반복하고 있는데, 유독 사람은 자연을 이용하고, 해석하고, 적용한다.  

 먹힌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육체적인 고통을 수반할 뿐더러 결국 먹히고 나면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는 것은 결국 내가 사라지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생물이 태어나서 결국 누군가의 먹이가 되어 사라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법칙일 진대 우리에게 그것은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 된다. 다른 누군가 보다 더 적합한 사람이 되기 위해, 더 강해지기 위해, 먹이사슬의 정점에 서기 위해 그 모든 지혜와 열정을 바친다. 내가 지금 살아 이는 것은 누군가보더 더 적합하고, 강하고, 먹이사슬의 상위에 위치하기 때문이라고 합리화 한다.  내가 먹고 있는 이것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나보다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고, 약했고, 먹이사슬의 아래에 있기 때문에 당연히 죽어 마땅한 것이다. 사피엔스의 지혜를 총동원하여 먹히지 않기 위해 애쓰고, 평생을 다 먹어도 모자랄 만큼의 부를 쌓고, 불가능한 영원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다. 더욱이 요즈음에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경계하느라 더 힘들어진다. 국가간에, 성별간에, 세대간에, 지역간에, 심지어 가족간에도 분열과 투쟁이 일상이다. 빼앗기지 않고 지킬 수 있을까.  


이번에 한국에 다녀오며 온 가족이 한약방에 가서 진맥도 받고 약을 받아왔다. 알레르기와 감기로 늘 기침 콧물이 있던 아이들에게는 비염에 좋은 약을, 아내와 나는 몸의 기력을 돋구기 위한 보약을. 한약의 효과인지, 한살 더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연초부터 다시 시작한 피트니스 센터 회원권이 무색하게 체중이 늘어간다. 살이 찐다는건 결국 먹는것 보다 덜 사용해서 그런것이니 저녁에 밥을 반공기로 줄이고, 일주일에 최소 두번은 꼭 런닝머신위에서 땀을 흘려야 겠다고 다짐한다. 에너지는 덜 축적하고, 끝까지 꺼내어 사용해야 한다. 쓰고 남은건 군살이 된다. 신체 각 기관에 부담을 주고, 회복력과 탄력성을 저하 시킨다. 노화 라는 말로 축약되는 그것을 더욱 가속화 하는 것일뿐, 내 몸속에 남겨 놓아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 


아침 일찍일어나서 회사에 도착해서 한참 동안 회의하고, 전화하고, 억지를 부리는 누군가와 언쟁을 벌이고, 투덜거리는 누군가를 위로해 주고, 당장 급하다고 아우성 치는 이메일들을 하나 하나 읽어 내려가며 회신을 하다보면, 어느새 하루가 끝나간다. 보통 7시 반정도에 일을 시작해서 대략 10시간 정도 회사에 머무르게 된다. 15년째 같은 일상이다. 회사라고 하는 거대한 조직은 오늘도 나의 젊음과 시간을 먹어치웠고, 나는 오늘 또 하루 만큼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빛을 잃어간다. 하지만 그 시간들을 먹고 내 곁의 생명들이 자라난다. 강육약식이고 거꾸로된 피라미드. 세상을 향해 한점으로 위태롭게 서서 애써 균형을 잡는 그 책임감이 무겁지 않다면 거짓말이 겠지만, 쌓아 올라간 그 한 조각 조각을 바라 보면 뿌듯하다. 선물과도 같이 주어진 그 귀한 생명이 나에게로 와서 자라나고 있다. 잠시 와서 앉았다가 포로롱 날아가 버리는 작고 예쁜 새처럼. 언제 내 곁을 떠날지 알 수 없기에 지금 이 순간 함께 있을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저녁을 먹고나니 우리 허스키의 발걸음이 분주해 진다. 물 마시러 일어난 나를 졸졸 따라 오는걸 보니 저녁 산책을 나가고 싶은 모양이다. 겉옷을 챙겨 입고 바라보니, 벌써 귀를 뒤에 착 붙이고 만면에 미소가 가득하다. 산책할때 마다 사용하는 줄을 손에 잡으면 흥분이 최고조에 이른다. 현관문을 열자마차 꼬리를 살랑 거리며 총알 같이 나가서 밖으로 통하는 마당 문 앞에 앉는다. 같이 산책을 나가는 아내가 문단속을 한다고 1분후에 뒤따라 나오는 모습을 보고 몸을 빙글 빙들 돌리며, 왜 이제 나왔냐고 아웅 아웅 거린다.  그래 이제 나가자. 나가서 같이 한바퀴 돌자. 남겨 놓아봐야 의미 없는 내 에너지와 시간을 줄께. 잘 먹고 건강하게 잘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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