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아버지의 책장에는 작은 수첩들이 가득했다. 말씀에 따르면 지내 오셨던 하루하루를 기록한 내용이라고 했다. 방학 숙제로 밀린 일기를 몰아서 쓰곤 했던 어린 마음에는 하루하루에 무언가를 그리 오래도록 쓰셨다는 것이 - 숙제도 아닌데 - 신기했을 따름이었다.
그때는 왜 그 내용이 어떤 것인지 관심이 전혀 없었을까. 거기에는 필경 한 젊은 청년의 고뇌와 방황과 실망 또 결단이 담겨 있었을 텐데. 혹시나 빛바랜 러브스토리가 있었을 수도.
1년 또는 2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 목적으로 한국에 잠시 다녀오게 된다. 13시간이 넘는 긴 비행시간을 견디고 가서 보낼 정신없는 한 주가, 굳이 꼭 이렇게 가야 하는 건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오래간만에 뵙는 아버지가 요샌 부쩍 연세가 들어 보인다. 아들이 오면 어머니의 잔소리에 겨우 자리를 파할 정도로 감개무량한 한 잔을 즐기셨던 분이 먼저 꾸벅꾸벅 눈이 감기시더니 방에 들어가신다. 휘적휘적 앞장서서 걸으시던 분이 평탄한 산책길에서 자꾸 쉬었다 가자고 하신다. 힘들어도 자주 한국에 와야겠구나 싶다.
부자지간의 대화는 단순하다. 대부분의 안부는 어머니를 통해서 듣게 되고, 간혹 맞이하게 되는 직접 대화의 순간에는 사실 이미 다 알고 있는 안부만 자꾸 서로 묻는다. 너무 스트레스받으며 일하지 말고. 네, 아버지도 건강 잘 챙기세요... 좀 취했다 싶으시면 이제 40이 넘어 흰머리가 듬성듬성 나고 있는 아들 머리를 쓰다듬으시고, 우리 막내가 어찌 이리 컸나. 이미 다 커서 이젠 늙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말썽쟁이 귀염둥이 막내다.
본가 책장 어딘가 있을 아버지의 수첩의 내용이 궁금하지만 이젠 펼쳐볼 자신이 없다. 이제는 나름대로 공감할 수 있을 테지만, 그 안에는 나 때문에 포기했던 아버지의 도전과, 나 때문에 내려놓았던 아버지의 꿈이 있을까 봐 두렵다. 그냥 다 모른척하고, 감사하다고 건강하시라고 똑같은 안부에 슬쩍 죄송함을 감춘다. 올해 한국에 가서 뵈면 어떠실지, 그분의 시간이 제발 천천히 더 천천히 평화롭게 흘러갔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