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Night: 인사언니들의 삶과 일 사이
각자의 자리에서 한 달을 열심히 살고, 모처럼 만난 우리의 게임나잇.
그저 가볍게 일상을 나누고 웃고 떠들다 끝날 줄 알았던 이 밤은, 뜻밖에도 ‘우리의 다음 챕터’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나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지금 이 일을 계속하고 싶을까?”
“퇴사하면 뭐 하지?”
“다시, 완전히 다른 삶을 시작해 볼 수 있을까?”
아무도 쉽게 답하지 못했지만, 그 질문은 꽤 오래 우리 안에 머물렀다.
그 밤의 대화처럼, 오늘은 우리의 인생 2막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저… 그만둘까 봐요.”
“퇴사하면 좀 나아질까요?”
“저 여기서 더는 아닌 거 같아요.”
수많은 퇴사 상담을 하고, 오프보딩도 수십 번 해봤지만 정작 내 이야기가 되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나도 가끔 생각한다. ‘퇴사하고 인생 2회 차, 나도 할 수 있을까?’
남들 퇴사는 늘 냉정하게 컨설팅하면서, 막상 내 퇴사를 생각하면 너무 복잡하다.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 자산
내 다음 커리어 퍼즐의 모양
남들보다 더 잘 알아야 하는 퇴사 리스크들
심지어 퇴사할 때 누가 뒷말 할지까지 예상됨
그러다 보면, “에이, 그냥 여기서 조금만 더 해볼까…” 자꾸 이렇게 미루게 된다.
게다가 이제는 안다. 어느 조직이든 비슷하고, 결국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게 명확한가’ 하는 점이라는 걸.
그래서 점점 퇴사도 단순한 이직 고민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이건 그냥 퇴사가 아니라, 진짜 인생의 고민이다. 말 그대로, 인생 2막에 대한 고민.
가끔 너무 부러운 사람들이 있다. 퇴사하고 전혀 다른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
제주살이
바리스타, 농부, 플로리스트
코치, 컨설턴트, 강사로 전향
‘나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도, 늘 마음속에서는 “내가 해온 것은 그냥 HR인데…다른 것을 할 수 있을까?” “내가 그만둔다고 세상이 달라질까?” 이렇게 움츠러든다.
그래서 요즘 나는 나한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내가 가장 잘하는 건 뭘까?
퇴사하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을까, 아니면 그냥 회사가 지겨워 걸까?
내가 떠나도 아쉬워할 사람은 누구일까?
정말 '인생 2회 차'가 필요할까, 아니면 현재를 더 바꾸는 게 먼저일까?
이 질문들을 계속 곱씹다 보면 ‘퇴사’ 자체보다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이 더 중요하단 걸 깨닫게 된다.
사실 이런 고민을 하다 보면, 결국엔 이런 본질적인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나는 지금껏,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은 한 번도 묻지 않은 채 일만 하며 달려온 건 아닐까?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뭘까?
지금 하는 일도, 동료들도, 상황도 모두 나쁘지 않고 좋은데… 이게 정말 내가 바라는 삶일까?
나는 이 조직 밖에서는 아무것도 더 할 수 없는 사람인 걸까?
가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30대의 두 번째 사춘기”가 시작된 것 같기도 하다.
10대 때 더 많이 물어봐야 했던 질문. 그땐 못했지만, 지금은 계속 내게 묻는다.
“R, 네가 진짜 원하는 건 뭐야?”
요즘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게 내 최대의 고민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고민이 내 커리어와 내 삶을 더 깊게 쌓아가는 진짜 실마리가 될 것 같다.
인생 2막에 대한 고민은 4년 전쯤 시작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에 대한 자기 이해의 갈증에서 비롯된 고민이었다.
그동안 나는 “잘 살아야 한다”는 스스로에게 거는 기대와 “열심히 해야 한다”는 책임감 사이에서 살아왔다.
직무 전환했던 만큼 이미 HR경력을 가지고 있던 동료들에 비해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써서 동료들만큼은 해야 한다. 혹은 더 잘해야 한다는 마음에 늘 무엇을 요구받고 있는지, 무엇을 해내야 ‘잘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했다. 그리고 그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나를 끊임없이 밀어붙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꾸 지치고 흔들리는 나 자신을 보며 질문이 생겼다.
왜 이 일을 하고 있는 거지? 왜 누군가의 평가에 흔들리는 거지?
그때부터 나는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고 있다.
내가 HRBP로서 진짜 이루고 싶은 건 뭘까?
HRBP로서 성과를 만든다는 진짜 의미가 뭘까?
내가 정말 의미 있게 쓰고 싶은 시간은 어떤 모습일까?
지금 내가 이 일에 몰입하고 있는 이유는 정말 ‘나’ 때문일까?
인생 선배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시간’이다.
“시간이 정해져 있다면, 넌 무엇으로 그 시간을 채울 것 같아?”
그 질문은 여전히 나에게 남아 있다. 아직 정확히 답을 찾거나 결론을 내진 못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믿게 되는 것 같다.
인생 2막은 어느 날 갑자기 퇴사 후 떠나는 여행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작은 실천을 시도하는 과정 속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 작은 실천이 어떤 기회와 길을 열어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HRBP라는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도, 처음부터 이 일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막연히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시작한 여정이었다.
지금의 고민도, 불확실함 때문이 아니라 제대로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작은 실천으로 옮겨가 보면서 또 다른 깨달음이 있지 않을까?
그날 밤 우리가 나눈 질문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쓰고 싶어?”
“지금의 삶 말고, 다른 형태로 살아볼 수 있다면 어떻게 살고 싶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퇴사보다 더 어렵고, 직무의 방향을 정하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고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매일 조금씩 그 답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의 인생 2막은 어쩌면 그렇게 ‘나다운 삶’을 향해 질문하고, 조금씩 실천하며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