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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아브르

영화 "르 아브르"를 보고

by 페이지 성희

프랑스 서북 해변마을 르 아브르에는 구두닦이 마르셀이 그의 아내 그리고 한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젊은 시절 자유로운 보헤미안이었던 그는 이제 이곳에 정착했다.

이곳이 얼마나 좋은지 처음에는 몰랐다.

살다 보니 가난하지만 친절한 이웃들에 둘러싸여

서로가 닮아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어느 날 저녁 아내 아를레티가 저녁을 준비하다 심한 통증을 느낀다.

그녀는 아픔이 조금 가라앉자 조용히 생각에 잠긴다. 일상에 해왔던 남편의 옷을 다리고, 음식을 넉넉히 만들어 놓고 병원에 간다.

의사로부터 불치병에 걸렸다는 가슴 철렁한 말을 듣지만 먼저 남편에게 알리지 말아 달라고 한다.

의사는 간혹 기적도 있다며 아를레티를 위로해 준다.


부둣가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 가운데 등록되지 않은 게 발견된다. 심지어 그 안에서 수상한 인기척도 나자 경찰은 강제로 문을 열고 놀랍게도 밀입국한 불법 이민자들을 발견한다. 가봉에서부터 배에 선적된 후 프랑스까지 몰래 타고 왔다가 발각이 나자 사람들은 수용소로 끌려간다.

마르셀은 그 가운데 도망친 아드리사란 어린 소년을 우연히 만나고 그를 집으로 데려와 숨겨주고 도움을 준다.


마을 사람들도 내색하지 않고 조용히 소년을 돕는다. 마침내 소년이 엄마를 찾아 무사히 영국으로 갈 수 있게 모금 공연으로 여비와 타고 갈 배까지 마련해 준다.


이웃들은 자신이 도울 수 있는 것이라면 작은 일이어도 모른 체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도왔다.

해변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햇빛아래 바닷가 모래알처럼 반짝인다.


영화는 커다란 사건이나 대단한 인물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단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베트남 이민자 청년 청! 해변 작은 마을에 정착해서 평범하게 살아가기까지 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사람들과 자연스레 어울려 살고, 비록 가짜 영주권이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힘든지 모르고 모든 게 그럭저럭 괜찮아졌다.


한물간 전직 락커였던 가수 아저씨는 평소에는 늘 알코올 중독으로 취해 있어도 흑인 불법 체류자를 위해서 기꺼이 모금 공연을 벌인다. 덕분에 사람들에게 그가 범상치 않은 가수였음이 드러난다.

자칭 단골이란 이유로 밀린 외상값을 갚지 않는 마르셀에게 객식구가 늘어난 걸 눈치채고 넉넉하게 빵을 건네는 빵집 주인의 빵보다 넓은 인심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타지에서 우연히 떠돌다가 정착한 방랑자들이 쉽게 떠나지 못하고 이 마을을 서성이는 이유를 알 거 같다.


인간으로서 당연한 도리 , 혹은 작은 연민에서 비롯된 소박한 선의와 그것이 모여드는 과정이 기적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영화에서 유일한 악당으로 나오는 경찰은 그저 관료주의의 상징으로 보일뿐 따뜻한 사람들의 연대를 무너뜨리거나 균열을 일으키지 못한다.


영화 속 배경인 항구의 풍경은 늘 흐린 날씨다. 처음부터 끝까지 언제나 구름 끼고 어둡다.

건물들도 낡거나 작고 초라하다.

사람들에 표정도 덤덤하다 못해 무표정으로 우울해 보인다. 그러나 모두 다 알고 있다. 모두다 같은 사람이라고.....


마치 이선균의 "나의 아저씨" 기차가 지나는 동네를 떠오르게 한다. 어릴 적 초등학교 친구들이 아직도 거기 살고 있고, 다 함께 자라 다 함께 노인이 되어가는 시간이 멈춘 동네 말이다.

특별한 게 없어도 매일 저녁 차 한잔, 술 한 잔 나누는 "정희네"가 있는 그곳, 한자리에 변함없이 자리하고 바라봐 주고 온정이 흐르는 사람 사는 맛이 있는 마을과 닮았다.

남들은 보잘것없다 말해도 소중한 나의 살던 내가 사는 동네다.


어둠 속에 창가에 번지는 불빛이 가난에 지치고 앞날이 불투명한 오늘과 내일을 말해준. 그래도 우리 함께 있다고.... 서로에게 향하는 눈길에 잔잔한 정이 흐르고 있다고.....

걱정 많고 살기도 팍팍해도 힘들 때 아플 때 서로가 손을 잡아 주기에 두려움도 없어지고 아픔도 잠시 사라지게 해주는 아주 특별한 동네와 사람들이다.


여기는 온갖 떠돌이, 이민자, 타지인들이 모여 들었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간이역같은 부둣가 마을이다. 이런 불안정함이 개방성으로 자연스레

사람들을 흡수하고 녹아들게 한다.

바라봐주고 받아들여주는 포용성이 남다른 마을이다.


주인공 마르셀은 사실 무뚝뚝하고 과묵한 남편이다. 그럼에도 아내의 병실에 찾아갈 때는 그의 손에는 언제나 꽃 몇 송이가 쥐어있다.

아내는 남편을 위해 위중한 병을 감추고 곧 퇴원할 거라며 걱정 말라며 오히려 남편을 걱정하며 괜찮은 듯 미소를 짓는다.

결국 기적의 꽃을 피운다. 아니 기적이 아닐지 모른다. 당연한 일이니까.

마치 마당에 체리나무가 처음으로 꽃이 핀 것처럼 그저 일어날 일이 일어났을 뿐이었다.

르 아브르 사람들은 차가운 현실 속에서 그들 마음 안에 작은 도움들을 모아 세상이 메마른 곳이 아님을 낯선 땅에 던져진 막막한 처지의 이방인들에게도 희망을 보여 준 셈이 되었다.


영화가 덤덤하고 다소 지루한듯한 게 감독 특유의 연출법이라 신선했다.

등장인물들도 하나같이 선하기에 판타지한 감동이

밀려온다.

우리가 사는 현실이 저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 정도로 풍자적이기도 하다.


영화는 현실의 바람을 담으며 의외의 장면에서 작은 유머, 약자에 애한 공감 어린 연민, 깊은 인간애를 보여주며 우리 영혼을 맑게 정화시켜 주었다.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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