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구름이 뜨는 건 누구라도 막지 못하지만, 그 어떤 이도 뜬 구름은 붙잡고 살지 않는다."
우리말은 마음의 상태와 느낌을 다양하게 표현한다.
"마음을 다하다"가 있다.
"부모를 모시는 데 마음을 다했다"처럼 부모님에게 진심으로 내 마음과 정성을 다해 헌신함을 뜻한다. 정서적으로 진정성을 강조할 때 쓰는 말이다.
"마음을 쓰다"란 말도 있다.
마음을 사용하거나 마음에 끌려간다란 말이다. 누군가를 의식적으로 챙기며 신경을 쓰는데 에너지의 사용이 중심이 된다.
흔히 마음을 쓰기보다 “마음을 쓰지 말라.”한다.
무심해지라는 건가?
차가워지라는 건가?
사람에게 정을 끊으라는 건가?
“마음을 쓰지 말라."는 감정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마음에 끌려다니지 말라는 의미다.
마음은 생각과 감정, 반응이 모여있다.
“마음을 쓰지 말라”의 뜻은
감정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거지만
거기에 계속 머무르지 말라는 의미다.
감정을 머물게 하는 진짜 문제는 생각 붙이기다.
예를 들어 누군가 의외의 말을 하면
“왜 저러지?”
“기분 나쁘네”
“날 무시하나?”
"내가 뭘 잘못했나?"
이런저런 생각이 3시간, 3일... 그 이상의 기간을 끌고 가기도 한다.
생각이 감정에 연료 역할을 해서다.
이게 마음을 ‘쓴’ 상태다.
여기서 감정을 머물게 하는 게 뭘까?
삶이라는 바다에서 감정은 짧게 지나가는 파도다.
화남, 슬픔, 서운함..... 이런 것들은
몇 초~몇 분짜리 반응이다.
마음을 쓰지 않는 무심은
“아, 저 사람이 기분 나쁘게 말하네.”
“ 내 마음이 상했네.”
감정이 올라오고 바로 흘려보내는 상태다.
감정은 느끼되 붙잡고 있지 않는 거다.
무심하다는 건 목석처럼 되라는 게 아니다.
진짜 무심한 사람은 더 따뜻하고 더 깊이 공감한다. 하지만 오래 끌고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의 감정에 잠식되지 않아서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을 움직이는 본질은 ‘이성’이 아니라 의지(Will)라 한다. 이 의지는 끝없이 원하고, 갈망하고, 붙잡으려는 힘이다.
자기 존재를 인정받고 싶고, 이기고 싶고, 옳음을 인정받고 싶고, 소유하고 싶은 “의지” 때문에 계속 결핍을 느끼게 되고 고통이 발생한다.
이것은 나에 대한 집착 때문이라고 한다.
법정 스님도 집착에 대해 말씀하신다.
집착하지 말고 마음을 비우라는 것은 "감정을 없애라"가 아니다. 머물고 붙잡지 말라는 거다.
무심은 냉정함이 아니다.
감정이 지나가게 놔두는 능력이고,
마음이 나를 쓰지 못하게 하는 상태다.
무심은 감정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감정과 나 사이에 공간을 만드는 능력이다.
그 공간이 생기면
감정은 그저 지나가는 손님
나는 집주인이다.
이게 불교 수행자들이 말하는 “비움”의 실체다.
그저 붙잡지 않는 상태다.
감정이 내 안에 오는 건 자연스러움이며
머물게 할지 흘려보낼지는 선택의 문제다.
감정을 억누르고 억지로 참는 것도 좋지 않다. 감정이 오래 가게 만든다.
“아무렇지 않아.”
“괜찮아.” "내가 참자!"
겉으로 누르지만 마음 안에서 계속 돌고 있다.
머릿속 영화관에서 그 장면만 계속 재생 반복이 되는 거다.
참음은 생각과 싸우는 거라 에너지를 더욱 사용하게 된다. 더 지치게 만든다.
또한 "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이건 상황을 “현재 진행형”으로 만드는 행동이라 좋지 않다.
자연스러운 방법은 멈추는 게 아니라 놔두는 쪽이다. 생각이 올라오면 “아, 또 생각 시작이네” 내용이 따라오지 않으며 마치 몸에서 나타나는 느낌으로 내려오게 된다.
이건 생각을 끊는 게 아니라 연결을 안 하는 것이다. 이게 “마음이 나를 못 쓰는 상태”의 실제다.
반응 속도가 느려지면 좋은 의미다. 피로가 줄어들며. 감정이 오래가지 않는다.
중요한 건 생각 없애기가 아니라. 생각 따라가지 않기다.
마치 하늘에 구름이 뜨는 건 막지 못하지만 내가 손을 뻗어 구름을 붙잡고 살지는 않듯이 말이다.
핵심은
인간은 누구나 감정의 동물이며
감정이란 것은 자체는 약한 존재다.
생각이 붙으면 힘이 강해진다.
감정은 그냥 지나가려 하는데 생각이 붙잡는다.
강함에 끌려가 집착하면 그곳에 고정된다.
많은 사람들은 평생 감정이 문제인 줄 알고 산다. 생각 반복이 감정의 불씨를 키우는 걸 알지 못한다.
생각이 시작되는 순간 알아차리기가 정답이다.
“아, 생각이 붙으려고 한다” 바로 멈춘다.
“좋게 생각하자!”도 하지 말고 그냥 생각을 더 얹지 않아야 한다.
이게 무심이고 이게 마음 안 쓰는 상태다.
이때 감정만으로 에너지가 덜 닳는 것은
감정이 10% , 생각 반복이 90%로 사실 감정에서 문제가 아니라 90%인 생각을 해서 지쳤던 거다.
생각이 올라오면 “아, 생각이다”하고
내용도 보지 않는다.
제목만 본다.
느낌만 알아챈다.
종료다. 구경하기다.
이게 왜 효과가 있냐면 생각은 “관심”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생각하고 분석해 주면 커지고,
무시하면 약해진다.
하나 더 쉬운 방법도 있다.
생각이 많아질 때 “내 몸 어디에 이 느낌이 있지?”
목에 있나?
가슴에 있나?
배에 있나?
방광으로 내려왔나?
***에 가서 물만 내리면 된다.
몸 감각은 현재이고 생각은 과거나 미래라서
효과가 바로 나타난다.
자동으로 생각이 줄어들고 사라지게 된다..
감정이나 생각이나 집착이나 모든 것은 혼자라면 상관없겠지만,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살이에서 끎임 없이 생기는 문제다.
사람 사이에 오래가는 관계 방식이란 두 가지다.
감정으로 엮인 관계는 불꽃처럼 타다가 꺼지기 마련이다.
존중으로 엮인 관계는 등불처럼 은은하게 비추며 오래 가게 된다.
♧참고서적
삶이라는 지옥을 건너는 70가지 방법: 쇼팬 하우어의 지혜
출판사; 추수밭 저자;이동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