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오리바람도 아침 반나절을 못 넘기고, 소나기도 하루를 못 넘긴다."
노자의 말이다.
노자는 바람과 비를 이야기한다.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이기에, 자연을 따를 때 비로소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에 닿는다고 말한다.
세상사는 복잡하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얽히고 설킨게 세상사다.
삶의 질곡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누군가 두 계절만 견뎌보라고 넌지시 조언해 주었다.
봄을 지나 여름을 지내고 나면 정신이 번쩍 드는 선선한 가을이 찾아온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화염 같은 고통 속에서 몸부림쳤다면 흰 눈이 휘날리며 모든 것을 덮는 겨울이 다가온다.
자연은 수십만 년에 걸쳐 인간의 심리와 정서에 주기를 새겨놓았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이며 그 자체이기도 하다.
사랑도 그렇다. 사랑은 충동이고 충동은 호르몬의 산물이다. 호르몬의 분비와 소거도 자연의 순환을 따른다.
부모 자식 간에 만남과 이별도 마찬가지다. 비록 예견된 이별이라 해도, 마침내 마주하는 순간의 아픔은 전혀 다른 깊이로 다가왔다.
돌봄에 지쳐 시작한 합창이 돌아가신 후 위로가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노래하는데 설움과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멈춰지지 않았다.
강의실을 뛰쳐나와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우울감에 침잠되는 시간만이 흘러갔다.
평소 빛에 예민해서 암흑 속에서만 잠들었는데 언젠가부터 작은 스텐트 불 하나를 켜놓아야 잠이 왔다.
그 작은 불빛이 엄마대신 보호막이 되어 주었다. 누군가 나이 든 고아가 되었다는 말을 믿지 못했었는데, 어느새 나도 그 마음이었다.
어느 가을 오후,
길어진 볕이 거실 바닥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 빛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엄마와의 시간을 글로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렇게 반년을 보내니 내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늘 믿는다며 나에게만 냉정하셨던 엄마를 많이 원망했는데...
엄마는 당신 방식으로 날 아껴주셨던 거였다. 그 사랑을 몰라봤다. 사실 내 원망의 진짜 알맹이는 사랑이었다.
무엇보다 엄마와의 시간을 더듬어 보니 그 속에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셨음을 깨달았다.
엄마를 기억하고 싶어서 쓴 글자마다 못되고 뒤틀린 내 허물만이 보였다.
용서도 빌지 못한 어리석은 죄만 남아 있었다.
반성하는 순간이 많았다.
이제야 서로의 진심과 진실을 제대로 알게 되다니......
그렇게 반년이 흐르고, 다시 계절이 바뀌자
새삼 사람이라는 존재가 궁금해졌다.
나는 어떻게 이루어졌고, 어떤 운명을 안은 채
이 시간을 살아왔고 앞으로는 어찌 살아갈지...
명리를 공부했다.
막연했던 감정들 위로 하나씩 해석과 설명이 얹히기 시작했고, 그제야 나는 사주대로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와 가족을 이해하고 나니 지나온 시간들이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진즉 이 공부를 해서 나를 알고 엄마를 제대로 알았다면 깊은 회한이 남지 않았을텐데...
명리학은 단순한 통계 이론이 아니라 생활의 지혜이자, 인간의 마음을 비추는 심리학이며,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철학이다.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명리학을 공부하고 단순한 이해로 끝났다면, 이 학문이 이렇게 오랜 세월 이어져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간에게 부과된 운명이란 걸 알았으니, 온전히 살아내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
버티는 힘을 찾고, 잠재된 가능성이 드러나도록 돕는 것, 돕는 대상은 내가 되었든 가족이건 누구든 상관없을 것이다.
운명에 맞서서, 혹은 운명과 함께 이 세상을 잘 살아갈 방법을 말이다.
병을 알았다면 처방이 있어야 하듯,
그래야 명리학(사주)의 존재 가치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록 우연히 지나던 길에 접하게 되었고, 아직 짧은 시간 공부한 소감이지만, 누군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나처럼 딱 두 계절만 견뎌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기회가 되고, 마음이 닿는다면,
명리학을 한 번쯤 접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가까이 있었고 ,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임에도
가장 큰 가치로움을 몰라 보았던
어리석음을 글쓰기와 명리학을 통해서
깨달은 오늘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