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목련이 피고 지니

봄날의 단상

by 페이지 성희

- 양희은이 가사를 쓰고 노래 부른 "하얀 목련" -


1.

차 안에서 흐르던 이 노래 한 락에 마음이 촉촉이 적셔진 탓일까.

헤벌쭉하게 꽃잎을 연 가로수길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다.

언제 저리도 곱게 꽃들이 벙긋벙긋 꽃망울을 피웠을까!

매일매일 누가 알아차릴까 싶어 아무도 모르게 살그머니 꽃보따리를 싸고 풀고 했던 젊은 과수댁을 닮아 두근대는 봄의 심장음이 전해온다.


이렇듯 감성이 젖어오는 건 계절과 오늘의 날씨, 노래와 어우러진 풍경 때문이기도 다.



지금 이곳!

같은 도시 30분 거리임에도...

먼저 살았던 동네와 분위기가 달랐다.

누군가 특별할 게 없다 말하겠지만 우리 동네만의 특별함이 분명히 있다.


이사 와서 먼저 마음에 들어온 건 동네 길을 오고 가는 마을버스다.

나 대신 내 다리가 되어주어 푸근한 인심을 실어 나르는 반가움의 존재.


특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지치고 기댈 데 없이, 먼지 낀 마음들을 토닥토닥 털어주고 반갑게 맞아주는 엄마표 황금마차다.

사실 조금 폐쇄적이고 오랜 시간을 거주하는 사람이 많은 동네일수록 인심이 좋다. 이곳이 그랬다.


늘 만나는 사람이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 어쩌다 정이 든 것도 있고...

그래서일까! 배려하는 마음도 깊다.

거주의 안정감이 나외에 주변에 조금 더 마음을 쓰게 되나 보다.


차에 오르면 동네 사람들은 모두 똑같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의례 앞자리는 쳐다보지 않고 뒤쪽으로 가서 앉는다.


나이 드신 노인분들이나 다리 불편하신 분들, 임신부들 위해 앞자리는 비운다. 먼저 앉았던 자리도 기꺼이 양보한다.


이 마을에 살면 당연히 그래지는 여유로운 마음 자락들이 봄빛을 받아 모두에게 반사되어 반짝인다.


그렇게 차에 오르니 같은 길을 달려도 붐빈다거나 막혀도 마음이 조급해지지 않는다.

내릴 때 기사님의 한마디

"잘 다녀오세요!"


오늘 바로 그분이다!

고속도로 ic 진입로 네거리에 신호 앞에 서있다. 마을 이장님이나 학창 시절 교장 선생님처럼 나직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입을 떼신다.


그날그날에 따라 내용이 다르다.

"비 오는 날에는 차바닥도, 길도 미끄러우니 조심조심 다니십시오."

"흐린 날은 건망증이 심해집니다. 비가 그친 오후에는 우산을 깜빡 잊고 놓고 내리는 분들이 많으니 내리실 때 주변을 살펴보세요."


당연한 말이라 할 수도 있다.

굳이 이런 말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족만이 해주는 이 잔소리가 마음속 메아리가 된다.

어쩌면 나처럼 대다수는 추억 속의 할머니나 어머니 같은 진심 어린 걱정을 건네던 누군가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동네에 들어서 빨간 신호등 앞에 정차하게 되면

벌컥 문을 열어 내려주신다.

한 발짝이라도 쉽게 집에 들어가라고 건널목의 신호등에 남은 시그널 숫자만큼 사탕을 받은 기분이다. 그 달콤함이 입안에 오래 남으라며 길을 건넌다.


우리는 천육백오십 원의 요금을 내고 이런 융숭한 서비스를 받아도 되는 건지...

평범함을 넘어서 사소하고 특별한 대접에 황송한 마음이 마구마구 밀려든다.

감동을 받은 마음에 좋은 하루의 서막은 온기를 안고 시작하게 될 것이다.

안개낀 아침의 동네 풍경



2.

목소리를 가다듬어 합창을 하던 지인언니가 무명 가수로 데뷔한다고 첫 공연을 알려왔다.

언니처럼 요즘 실버세대들은 예전처럼 재미없게 지루하게 살지 않으려 애쓴다.


대를 잇는 손주 돌봄의 무게를 내려놓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식을 위해서 노인이 되어서까지 자식 눈치를 보며 의무 아닌 의무감에 자신의 인생이 소금에 절여진 듯 무겁게 애쓰지 않는다.


부모를 봉양을 해야 했으나, 자식에게 돌봄을 기대하지 못하는 마지막 세대기 때문이기도 하다.

갈 데도 많고, 할 것도 많아진 이유도 있다.

언니도 마찬가지다.


고민 끝에 마련한 반짝이 의상이 조명 빛을 받아 흥겨운 가락에 물고기 비닐처럼 반짝인다.

남아있는 노후의 나날에는 부디 지금처럼 한결 같으시길. 활짝 날새를 펴고 사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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