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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음은 정말 쓸모없었을까

쓸모없음을 사랑해야 가치 있는 삶이라는

by 페이지 성희


TV에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 나왔다. 천진난만한 얼굴에 쫑알쫑알 귀엽게 말도 잘하고 거침이 없어 신세대 어린이답다.

먼저 통통하고 까무잡한 여자 아이가

"저는 방송댄스를 배워요"

자랑스러운 얼굴로 배운 동작을 노래까지 부르며 야무지게 보여주었다.

옆에 하얗고 넓적한 얼굴의 꼬맹이 순서다. 진행자의 질문

"학생도 친구랑 같이 해요?"

"우리 엄마가요, 그딴 거 배워야 쓸데없대요!"

단숨에 내뱉는 말이 호로록

라면발 넘기듯 촐싹 맞다.

애어른의 얼굴이 겹쳐 보이기도

하고 복잡한 속내도 비친다.

내용 때문인지 아이의 당돌한 말에 대단하다는 듯 다 함께 폭소가 터졌다.

8살 아이의 입에서 나온 문장치곤

뭔가 지나치게 넘쳐서 아이다운

맛이 다.

그 애가 아닌 엄마의 생각이 아이의 입에서 대신 흘러나왔을 뿐이다.

아이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초등1학년이면 공부력이 발동할 시기라 하기엔 이르다.

아이 엄마는 어떤 생각으로 딸에게

저런 말을 했을까?

흔히 그러하듯 공부와 상관없어서?

혹시 놀이로 치부되거나 예능 쪽으로

빠져 아이가 허황된 바람만 든

아이돌 바라기라도 될까 봐?

아이를 보니그 정도는 아닌데

정말 그런 걸 배워서

뭐 해 써먹을까 생각을 했을까!


단지 저 나이는 머리보다 몸을 더 움직여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놀이를 통해 리듬감이나 운동신경을 키우고 복잡한 동작을 익히는 과정에서 작은 성취감을 얻게 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그저 함께 춤추고 땀 흘리는 즐거움만으로 충분할 텐데. 뭐 그리 천진한 동심에게

벌써부터 세상에 쓸모에 대해 아이의 머릿 속에 주입하는 건지....


쫌 살아본 사람은 안다.

어릴 때 들은 어른의 말 한마디가

평생 살아가는 힘이 되고,

지표가 되기도 하고 한 사람의

인생에 길림길을 바꾸기도 한다는 사실을.


뉴스를 보면 학생이 시험에서

원하던 성적을 받지 못해

비관해서 옥상에서 몸을 던지는

선택을 했단다.

성적이 떨어지면 상급학교에

진학도 어렵고 불투명한 미래에 쓸모없는 루저로 남을 거란 두려움이 컸을 것이다.

어린 나이라 해결 방법도 모르고

성적만이 앞날을 가르는 지표라는

어른들의 말을 믿어서다.


직장에서 해고 통보를 받고

졸지에 퇴직하면 어제까지

쓸모 있고 오늘부터 쓸모없는

존재로 남는걸까!


세월이 흘러 늙고 병들어 마침내 걷지도 못해서 침상생활을 하게 되면 그리하여 스스로

할 수 는 게 하나도 없으면

세상에게 쓸모없는 취급을 받으며 죽음만 기다려야 할까?


얼마 전 저녁시간에 사건 사고 뉴스보다 리얼한 일상의 사연을 소개하는 프로를 보았다.

역대급 기가 막힌 내용이었다.

아내가 암에 걸려 병원에서 어려운

수술까지 받고 간신히 퇴원했지만

상태가 좋지 못하게 되자

남편이 짐을 싸서 집안을 정리하고

이혼을 요구하더란다.

"각자도생 합시다"라는 말이다!

오죽하면 아내의 지인이 안타까워서 이런 사연을 방송국에 제보했을까!


인간이란 감히 인간에게

쓸모 있고 없고의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살아 있는 생명이란 존재만으로

귀하고 가치가 있어서다.


석가모니가 말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란 말도 인간이 유일무이한 존재이기에

그러하다.


이렇듯 가장 소중한 사람의 존재여부의 쓸모를 논하는 것 외에도 세상엔 쓸모 있냐 없냐에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장자가 말하길 내 발 밑에 있는 땅만이 쓸모 있고 그밖에 부분이

쓸모없다 하면

그 쓸모 있는 땅만 남기고

나머지를 다 파 없앤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내 쓸모 있는 땅이 무너지지 않고

남을 수 있겠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쓸모없음이 없어진다고 쓸모있음만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쓸모 있음도 쓸모없음도 다함께

존재해야 세상이 유지된다.


쓸모없음에도 가치를 두고

좋아하고 사랑해야

진정 삶이 의미가 있게 된다.

세상엔 본디 나눔이

없는 것이라 했다.



내게도 쓸모없는 거라고 했던 게 있다.

나에겐 꽃꽂이가 그랬다.

대학 선배의 어머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꽃꽂이협회 회원이셨다.

84년도에 워커힐 호텔에서 정기 전시회를 했다. 선배는 친한 후배 몇몇에게만 귀한 초대장을 나누어 주었다.

그 당시 호텔에서 꽃꽂이 작품을 연다는 일은 상류층이나 누릴

특별한 문화생활이었다. 더구나

호텔 전시회를 여는 일은 신문 기사에나 오를 드문 일이었다.

나와 친구 여럿은 한껏 기대를

품고 먼 곳에 있는 전시장을 갔다.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멋진 경관의 워*힐 호텔관람도 처음이었다.


가정백과사전이나

일본 캘린더에서나 보던

화려한 꽃꽂이도 아름다웠지만

꽃을 담는 용기도 특이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예술적인

조형미를 담은 멋진 작품에

신세계를 경험했다.

선배 어머님이 존경스러워 보였다.

선배보다 선배 어머니 같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싶단 상상까지 했다.

꽃꽂이 세계가 대단함을 넘어서

특별하게 다가왔다.

자연에서 보는 꽃과 나무라는

소재를 이용해 인간의 창의력과 손재주로 고품격의 경지를

보여준거 같아 문화충격으로 다가왔다.


돌아 오면서 호텔 나들이에 들뜬 친구들과 달리 꽃꽂이란 세상에

발을 담가보면 어떨까 생각을 했다

나중에 선배 어머니의 말씀대로

오랜 기간 꾸준히 하다보면 사범과정까지 올라서 지도자로서

졍년없이 평생 활동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 집 어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다.

영어 회화나 전공 공부나

열심히 해서 은행같은 곳에

취업에나 신경쓸 일이지

그딴 걸 왜 하냐며

쓸모없는 거라고 단칼에 자르셨다.


항상 뭔가 하고픈 것도

뭐가 되고 싶은 것도 없었던

나는 시도를 해보기도 전에

포기부터 먼저 했다.


그 후 무언가를 선택할 때

내 머리는 이걸 배워

쓸모가 있을까 없을까로

항상 갈등하곤 했다.

뭔가 당장 경제적으로 돌아올

가치로만 가늠하고 결정했다.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바로 전 까마득하게 잊고 지냈던 걸 실행하는 일이 생겼다.

H 문화센터에 갔다가

팸플릿을 뒤적이는데

힐링 꽃꽂이란 문구에 끌려

등록을 했다.

아니 덜컥 등록해버리고 말았다. 언젠가 해 보리라 예약돼 있었던 것처럼 당연하듯이!

그딴 걸 어디다 쓰려고 등록했냐는 메아리가 마음속에서 울렸다.

오래된 채기가 가라앉아 버리 듯

마음 속이 평온해져 왔다.


그런데 배우러 간 곳에서

강사한테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제서야 배우러 왔냐는

선 넘는 소리를 들었다. 무례했다.

수강생은 대다수는 30대가 주류였다. 꽃집을 운영하러 온 취업이나 창업이 목적인 꽃꽂이 유경험자들이였다.

꽃을 꽂거나 다루는 것,

완성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솜씨가 범상치 않았다.


덕분에 나만 이곳에서는 왕초보

티가 팍팍 났다. 강사는 순수하게 제목대로 힐링 꽃꽂이를 배우러 온 수강생인 나, 자기 또래 나이인 내가 진심 별종으로 보였던 거다.


배움에 나이나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다. 반드시 목적이 있어야 시작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생계를 위한 소위

쓸모 있는 배움을 위해

온 거였고, 나는 자기만족으로

나 좋아서 온 터라 이방인으로 보였던거다.

단지 그 차이일 뿐이다.

난 그들 눈에 돈과 쌀로 환산되는 쓸데없는 취미 나부랭이에 비싼 꽃값을 지불하나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제 배움에 진지할 필요도, 취업이나 돈벌이에 다급할 상황도 아니다.

이걸 돈 주고 팔 수 있을까 고민할 필요는 더더욱 없었다.

빈 마음만 준비해 가서

향기롭고 고운 꽃 보며 다듬고

강의명 그대로 힐링하면 되었다.


나름 내 개성에 맞게 꽃을 다듬고

아리따운 꽃다발을 만들었다.

꽃집 경영과 관심 없는 내가

쓸데없이 왜 이걸 배우나 했던

강사는 자신의 말이 미안했는지

내게 더 신경을 써주고 챙겨주었다.

나중에 자신의 한마디에 혹시 기분 상해 안나올까봐 신경쓰였다 했다.


남의 말 몇마디에 흔들려서 안다닐 내가 아니란 걸 그녀는 몰랐을 것이다. 뭐든 시작하면 수준에 이를때까지

내 스스로 만족할때까지 최소한 1년 이상은 다녀야 배운 보람이 있다.


언제나 나는 똑같았다.

매회 수업마다 수업내용 과정을 사진으로 담고 메모했다.

부족하지만 정성껏 만든 작품이

꽃과 함께 시들어 버려 영영 잊힐까 봐 블로그와 카페에 올렸다. 그렇게 수업을 남기고 기억했다.


축하 꽃다발,

어버이날 용돈상자,

꽃바구니,

크리스마스 센터 피스,

유리 보울 꽃단지,

크리스마스 테이블 트리

센터피스


차곡차곡 하나하나를 완성하면서

밀린 숙제를 끝냈다. 결국

작은 과업을 이룬 듯

기쁨이 차올라 행복했다.


미래는 모르겠다.

내가 이걸로 쓸모 있는 일을 벌일지~

현재는 좋은 날 꽃다발 정도

선물할 실력이면

그 정도이면 충분한 거 아닐까!




축하 꽃다발



첫번째 수업 작품


부모님 용돈 상자


유리 보울 꽃단지


생나무 솔방울 크리스마스 테이블 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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