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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과 반응

침묵과 무반응도 의사표시다.

by 페이지 성희



우리는 어떤 자극이 오면 반응을 하게 된다 반응에는 두 종류가 있다.


React

상황에 대한 본능적이고 즉각적이면서 감정적인 1차적인 반응을 말한다.

충동적이며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이나 두려움의 영향을 받는다.


Respond

깊게 생각하고 신중한 행동으로

대응하는 것. 상황과 옵션들을 고려해서 의식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

여기에는 심사숙고한 후 무반응으로 대응하는 것도 포함된다. 기전이 다르다


얼마 전 내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까 싶은

황당한 일이 연이어 일어났다.

이웃 동네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서 벌어진 일이다.

아파트 출입구 가까이 지나는데

바로 내 발 앞에 무언가가 하늘에서 떨어져

파열음을 내며 박살이 났다.

순간 "악" 비명이 튀어나왔다

이어서 창문 닫는 소리.

"누구얏!" 올려다보며 외치는

나의 목소리가 아파트 단지로 퍼져 나갔다.

자세히 보니 얼음 덩어리였다.

여기저기 파편조각이 나뒹굴었다.

지나는 사람들이 내게 다가왔다.

" 아이고 큰일 날 뻔했네!"

"다행이네요. 왜 이딴 게 떨어졌지?"

"어느 세대에서 창틀에 있던 얼음덩어리를 던져 떨어뜨린 거네."

"아래를 보고 나서 던지지. 쯔쯔쯔."

단지 안에는 유독 노인들이 많이 지나다녀서 어르신들이 한 마디씩 하시며 마치 자신이 당한 일인 양 걱정하시며 말씀하셨다.

이웃 아파트는 노인 세대가 많은 터라

나 아니었다면 누군가 떨어진 얼음

파편에 다칠 수도 있게구나 하는

마음에 간담이 서늘해지고 있었다.

무사함에 안도를 하고 서둘러 집으로

발길을 재촉하며 왔다.


저녁을 먹고 나니 동네 커뮤니티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혹시 옆 아파트 사람이라 오해의 소지도

있을 거 같아 망설여졌다.

얼마 전 우리 아파트에서도 아이들이 작은 돌멩이를 고층에서 낙하시켜 상가 세워둔

자동차 앞 유리가 금이 간 일도 있었다.

몇 년 전에는 같은 시에 한 아파트에서 옥상에 올라간 초등생들이 던진 벽돌에

캣맘이 머리에 맞아 즉사한 일도

벌어진 터라 사소한 일로 그냥 넘겨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이 스쳤다.


마을 카페에 글과 사진을 올리고 주의를 당부했다. 해당동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방송 알림도 부탁했다. 잠시 후

내 게시글에 댓글이 달렸다.

모두 위로와 걱정이 대다수였다.

다들 내 마음과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두 주쯤 지나서 해당 아파트 주민이

뜬금없이 누가 던진 게 아니라 고드름 아니냐면서 괜한 의심 글을 올렸냐고

훈계성 댓글을 올렸다.

글 끝에는 내 성격을 아는 듯 천천히 조심해서 다니라고 조언까지 듬뿍

얹어서....

난 미처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걱정해 주어서

고맙다고 답글을 남겼다.


이걸로 끝난 줄 알았다.

또 일주일이 지나서 동일인의 댓글이 올라왔다.

확실한 증명도 없이 사람을 의심한 건 아니다 라며 훈계조로 다시 비판글을 남겼다. 얼음덩어리에 지문이 찍힐 리도 없는데

뭘로 증명을 하라는 건지 그냥 염려하는 글로만 행간을 해석하고 걱정해 주어서 감사했던 나의 댓글에서 단순함을

간파하고 어그로를 끌어

싸움을 하자는 건가 싶었다.

기분이 묘했다. 안 그래도 잊어버리고

싶은데 자꾸 그날 일을 되감기로

떠오르게 했다.

댓글을 2~3일도 아니고

한참이나 지나서 뜬금없는 내피셜로

올리는 저의가 의심스러워졌다.


무사한 걸로 다행이라 여기자 했던 마음.

내가 아닌 다른 노인분들이 맞았다면 어땠을까 했던 마음.

혹시 모를 예방 차원에서 방송 요청까지

나는 좋은 마음으로 한 일을

이런 오해까지 들어야 하나 싶어

마음이 휴지처럼 꾸깃꾸깃해졌다.

아니 더럽혀지고 있었다.


굳이 내 마음이 담긴 글을 이렇게 까지 자기식으로 이해하고 댓글로 기분 나쁘게

할 필요가 있을까 의아하기까지 했다.

증명을 해라, 증명을 하고 글을 쓸 것이지 괜한 걸로 괜한 사람을 의심하지 마라 등 선을 넘어도 심하게 넘고도 넘었다.

얼굴을 보지 않는다고 익명성에 숨어서

일방적으로 공격을 하는 야비함과

잔인함이 괘씸했다!


옛말에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속담처럼 자신이 가해자인가 싶었다.

들켜서 핑계를 대나? 의심이 들기도 했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심호흡을 하고 차분하게 감정을 최대한 가라앉혔다.

이런 어이없는 글에 열받고 머리를 썩혀야 내 건강만 나빠진다.

대거리해 봐야 무가치하다.

짧고 강하게 그러나 감정은 빼고 담담히 마지막 답글을 달았다.


지나가는 이웃으로서 다치지 않은걸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예방차원에서 올린 글에 떨어진 파편에

대해 증명하라는 말은

선을 넘으신 거 같습니다.

당사자나 가족이 이런 일을 당한 경우라면 그런 말을 하실 수 없을 겁니다.

누구를 비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만약을 대비해 조심하자는 마음으로

올린 글이니 오해는 말아주십시오


하고 글을 쓰고 마음을 접었다.

그다음 답글은 안 보기로 했다.

선을 넘었다는 말은 맞았으나 댓글러가

분명 발끈할 테니 빼야 했나 싶기도 했다.

그 말밖에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 어떤 것도 반응하지 않기로 했다

침묵도 답변이고, 무반응도 반응이다.

아예 그 카페에 들어가지 말자 했다

평소라면 답글을 확인하고픈 마음이 들었겠지만 나는 궁금함을 참았다.

더 이상 다투지 말자고 다짐했다.

나를 들볶지 말자 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다.

각자 자신이 한 말이 가장 합리적이라

하고 주장하며 산다. 그 댓글러도

그중에 하나고 그저 의견을 올린 거다.


요즘 유행하는 말에 "얼죽신"이 있다.

얼어 죽어도 신죽아파트가 좋다는 신조어다.

우리 아파트는 문제의 그 아파트보다 무려 25년이나 어린 새내기 신축이다.

건물만큼 주민들도 신세대가 많고 원주민보다 새 입주자가 전부다.

기존 아파트 동네 주민들과 불협화음이

종종 있어왔다. 대개가 텃새에서 오는 갈등이라 중학교 신설, 전철 연결선 갈등 등 사사건건 발전과 안정에서 늘 부딪혀 왔다 우리 입대의에서는 마을 협의체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한숨을 쉬어왔다.

그 생각이 스치며 살짝 글을 쓴 저의가 이해되기도 했다.


마지막 댓글 후 그렇게 꽁꽁 들썩이는 궁금증과 불쾌함을 묻기로 했다. 내 의견을 감정을 누르고 완곡하게 표현한 걸로 충분하니 이쯤에서 멈추기로 했다.


아마 그 글을 보는 대다수 카페 회원들이 뭐라 생각하겠는가!

굳이 당사자에게나 중요할 뿐인 일로

그저 스치는 글 한편으로 그들을 괜히

피곤하게 할 마음도 없었다.

그 글을 보고 댓글을 보는 사람들은 누가 지나쳤는지 누가 정상인지 알 테니까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고

다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러고 보니 벌써 한 달이나 지났다.

살면서 처음으로 이런 일을 겪고 나니

댓글에 왜 사람들이 상처받고 심지어 목숨까지 끊는지 조금 이해가 되었다.

맘먹고 지속적으로 괴롭힐 목적으로 글을 올리는 악플러라면 그들이 바라는 게

공격당하는 사람이 마음 상해하고

좌절감을 느끼는 게 될 테니 그들이 그런 성취감을 느끼게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몸에 난 상처는 시간이 해결해 주지만

말로 베인 언어폭력은 영혼을 죽이는

가장 나쁜 범죄다.

그들의 감정 쓰레기를 받아먹는

쓰레기통은 되지 말자.

이웃의 질투와 시샘을 너그러이

여기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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