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 동화 [시크릿 가든]
태어난 지 100살이 넘은 동화가 있다.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비밀의 화원]
이다.
뽀얀 흙먼지 황무지 세상에서 벽을 뚫고 펼쳐진 아름다운 꽃향기 넘실대는 세상을 만나는 이야기다. 세상 속에서 또 다른 세상을 만난 화원은 영원한 전설이 되었다.
전염병으로 갑자기 부모님을 잃은 메리는 친척들에 의해 고모부 아치볼드의 집에 보내진다.
어른들에게 방치되어 혼자 크는 아이는 그 집에도 살고 있었다.
더부살이 신세는 메리뿐만이 아니었다. 엄마를 잃고 어른들의 과잉보호로 방안에만 갇혀 지내는 이치볼드의 병약한 아들 콜린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메리는 높은 장벽에 둘러 쌓인
비밀의 정원을 발견한다.
돌아가신 콜린의 어머니가 생전에 가꾸던 화원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정성 들여 만든 화원이었다.
아내가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상심한
이치볼드에 의해 정원은 폐쇄돼 버리고 충성스러운 할아버지 정원사에 의해 몰래 가꾸는 비밀 정원이 된다.
같은 황무지인데 전혀 다른 공간!
어느 날 비밀의 정원을 발견한 메리는 병약한 사촌 콜린의 손을 잡아 화원으로 이끈다.
정원에서 뛰고 구르며. 햇빛과 바람과 친구가 되고 두 아이는 자신들도 모르게 서서히 몸과 마음이 치유된다.
이 고전 동화는 시대를 넘어 여러 편의 영화로 탄생했다.
2020년에 나온 영화 [시크릿 가든]은
동화적 상상력을 한 단계 발전시킨다.
정원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영화의 배경을 보여주는 전부이기도 하다.
동화 같은 색감의 정원은 한 곳만 빼고
세트가 아닌 영국에 실제 하는 정원들이다.
제작진은 60개의 화원을 직접 돌며
촬영을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어찌 이리 아름답게 가꾸며 살아갈까 부럽고 감탄스러웠다.
인간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위대한 자연을 재창조하지 말자
감독의 제작 철학이다.
정원은 인간을 변화시킨다.
환경의 변화가 중요하다.
고아로 홀로 남은 메리를 달라지게 만들었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넘어서 인물들의 감정 회복과 심리의 전환을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한다.
먼저 메리의 외롭고 상처 난 마음을 부드럽게 누구러뜨렸다.
메리가 다시 아이답게 천진난만하고
밝게 살도록 변화시켜 주었다.
메리 덕분에 콜린의 방도 달라졌다.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어 햇볕을 들였다.
그게 시작이었다.
콜린의 병약한 마음에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밝고 따스한 기운이 낡고 오래된
아치볼드가에 스며들었다. 아이의
어리광과 나약함과 짜증이 줄었다.
걷지 못했던 콜린이 회복된 건 자연의 회복력이 준 선물이다.
정원은 아이들 삶에 반영되었고
변화를 불러왔다.
영화는 그렇게 아이들과 자연의
공생관계를 보여준다.
아이들이 슬프면 꽃들도 시들고
아이들이 기뻐하면 자연도 생기가 돌았다.
식물들은 인물들에 반응하며 변화하기에 영화를 보면 누구나 장면에 빨려 들어
동화 속 세상에 들어온 느낌이 든다.
이렇게 영화 《시크릿 가든》은 아이들의 순수한 성장기를 미학의 관점에서 색채와 조명과 음악으로 그려냈다.
어느새 콜린은 생기도는 복숭아빛 볼이 빛나는 아이로 회복된다.
아빠 아치볼드도 폐쇄적이고 우울한 삶에서 벗어난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하나 남은 병든 아들까지 잃을까 봐 노심초사했던 그였다. 또다시 불행을 겪고 싶지 않았다.
집사에게 아이를 맡기고 현실도피를 택하며 늘 세상을 떠돌기만 했다.
아들을 말할 수없이 사랑하고 보듬고 곁에 두고 싶어 하면서 자신이 부족하고 어리석어서 사랑하는 이 곁에 있으면 그들이 아프고 먼 곳으로 떠나 버린다고 믿었다.
아치볼드가 어디선가 떠돌며 집을
그리워할 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환청인 듯 부르짖음이 울렸다.
그게 무엇인지 몰랐지만 돌아와서야
비로소 알았다.
아내의 사랑이 남긴 정원이 부름 비밀의 주문이었다. 나뭇잎들이 부딪치는 바람소리, 영혼을 깨우는 새소리, 아이들의 건강한 웃음소리였던 거다.
처음에 메리도 그러했듯 콜린과 아치볼드도 그들 앞에 놓인 운명을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믿었다. 자신의 처지를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운명이 이끄는 대로 받아들였지만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정원이라는 존재에 과감히 문을 열고 들어서니 불행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삶이 변하기 시작했다.
영화 《시크릿 가든》은 우정과 연대 자연치유의 놀라움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를 막아서는 것들을 극복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백 년 이상 된 [비밀의 정원]라는 동화와 영화가 아직까지 우리 곁에 생생히 남아 있고 사람들에게 꾸준히 읽히는 핵심은
인생이란 요리에 빠져서는 안 되는
비밀 레시피가 담겨 있어서다.
정원이 보여주는 아름다움만큼
정원의 비밀을 음미해 보자!
눈을 떠보면
온 세상이 화원이라는 걸
알게 될 거야
며칠 전에 특수청소사가 쓴 글을 읽었다.
20대 고독사한 집을 청소하며 경험과
느낌을 사진과 함께 담은 책이다.
젊은 날의 선택으로 유명을 달리했어도
그도 우리와 다를 바 없던 평범한 이웃이었고, 일상의 꿈을 꾸고 미래를 준비했던 사람이었다.
현관문을 열자 한 발짝도 들어서지 못할 정도로 온갖 쓰레기로 쌓여 있었고, 악취와 벌레로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거실과 안방, 주방, 화장실도 마찬가지였다. 움직일 공간도 숨 쉴 공간이 없는 게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비록 나중에는 화장실조차 가지 못할 정도로 심신이 피폐하여 반려견이 쓰는 배변깔개에 용변을 처리할 정도로 삶이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청소원이 장롱문을 열어보고 놀랐다. 가지런히 걸린 양복과 외투, 깨끗이 세탁한 셔츠들을 보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도 이 옷들을 장만하고, 입고, 사람들과 만나고 어울렸던 시간이 존재했을 텐데
어찌 막다른 지경에 놓이게 되었을까!
주식과 코인에 투자하여 모든 걸 잃기 전까지 알바를 하고 친구들과 미래를 꿈꾸던 평범한 청년의 삶. 아직 많은 게 남아 있었을 텐데.
그의 청춘이, 건강했던 시간이, 그의 미소와
꿈이 어쩌다 연기처럼 다 사라져 버린 걸까!
창문을 열고 문을 박차고 나가서 다시 세상 바람을 맞고 햇빛 속에 나섰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아직 세상에 존재하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갔고, 알바를 가려고 버스를 가다리며 정류장에 서있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인생에 의미를 찾으려 애쓰지 말자.
삶에 의미가 없어도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간다. 살다 보면 내가 사는 이유가 저절로 보이는 때가 온다.
다들 그리 산다.
사람마다 닮은 듯 다르게
상처는 묻고, 희망 하나쯤 붙잡고 산다.
힘들어도 남들도 그러려니 하고
오르막도 있으면 내리막도 있으니 그냥 사는 거, 그냥 인생인 거다.
산다는 게 그런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