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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종로에게

골목에서 만나

by 경주현

# 나의 종로에게

네가 없었다면 나는 어디로 갔을까.

학교 언덕을 오르다 내려오길 반복하던 열여섯의 나.

학교에 가지 않았다고 내가 피시방에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무작정 강릉까지 걸어보기도 했고, 고속버스를 타고 남해로 내려가 왕후박마을이나 다랭이마을에서 민박을 해보기도 했다. 대청댐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밤새 빌리 홀리데이 노래를 들었던 것도 다 그쯤이었다.

14, 15살이 할 수 있는 일탈치고는 꽤나 당돌했지만 당시에 읽었던 소설의 주인공들은 더러 이런 유의 일탈을 했더랬다.




내겐 사람도 사랑도, 동네도 정을 붙일 곳이라면 서사가 중요했다.

시선 끝에 볼품없는 아파트가 아닌

인왕산 자락과 하늘을 걸어둔 너는

내 영혼의 가시거리를 넓혀주었다.

온 세상이 불만거리였던 나,

부지불식간 부아가 치밀고 별안간 엉엉 울던 에푸수수한 내가

너의 낮은 담장들 사이에서 인격체로 거듭났다.


이상이 글을 쓰고, 김환기가 그림을 그리고,

에디 히긴스가 서울 뮤직을 떠올리던 골목들.

그들의 발자국에 내 것을 겹쳐 찍으며 나는 비로소 나를 만났다.

내 서사는 너의 서사와 함께 숨 쉬기 시작했다.


너의 낮은 담벼락과 열린 하늘은

내 두 눈의 자유였다.

볼통했던 영혼이 숨 쉴 공간.


지금, 신도시풍 건물들이 한옥의 기를 죽이는 동안에도

우리의, 내가 살던 이야기는 계속된다.


이 나라가 거대한 판교가 되어도

우리의 서사만은 지켜내리.

무작정 삶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그게 강릉일 수도, 혹은 부산일 수도, 정말 어쩌면 저세상일 수도 있었지만 나는 종로에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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