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특가 상품으로 친구와 여행을 약속했다.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부터 우리는 꼬이기 시작했다. 서로를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서로 너무 몰랐다. 나는 힘든 여행을 좋아하는데 친구는 여유로운 여행을 좋아했다. 시작부터가 우리는 달라도 너무 달랐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양보하면 싸우지 않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공항에서 만나 오사카에 도착했다.
웬만하면 '오케이'하는 긍정적인 성격을 가진 친구 덕분에 여행을 계획할 때 내가 편한 대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셋째 날이 되었을 때 우리의 아슬아슬했던 위기가 터지고 말았다. 친구는 쉬지 않고 돌아다니는 나의 여행 일정에 폭발을 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관광 명소에서 싸우고 토라져서 각자 갈 길을 갔다.
친구와 싸웠는데도 불구하고 언제 오사카에 또 오겠냐는 마음으로 관람차를 혼자 타러 갔다. 친구와 싸웠다는 이유로 나의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람차를 혼자 타러 온 사람은 나뿐이었다. 조금은 외로워서 친구 생각이 나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이후, 오사카 유람선을 타러 갔다. 혼자 기다리는데, 나처럼 혼자 탑승하는 여자 여행객이 보였다. 안 되는 일본어를 써서 용감하게 말을 걸었다. "곤방와(밤 인사)"라며 반갑게 말을 걸었는데 알고 보니 한국인이었다. 나이가 나보다 한 살 많았으며, 도쿄에서 유학 중에 오사카에 혼자 여행 온 거라고 하셨다. 서로 혼자인 것을 알고 유람선을 탄 후에 밥을 같이 먹으러 갔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상황 덕분에 친구와 싸웠던 것조차 잊고 있었다.
이렇게 나는 처음 만난 사람과 식사를 한 후 오사카의 클럽까지도 함께 갔다. 겁이 많은 내가 새벽 4시까지 모르는 사람과 함께 보냈다는 게 놀랍기도 하지만, 친구가 얄미워서 복수심에 늦게 숙소에 들어간 것도 있다.
친구가 자고 있는 새벽, 슬금슬금 호텔 문을 열고 들어 갔다. 친구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일말의 반성조차 없었다. 그저 친구가 얄미웠다. 나 혼자 여행 계획 세운다고 힘들었는데 저 친구는 뭐가 저렇게 불만이 많은 걸까,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토라진 우리는 이른 아침 호텔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따로 가기 시작했고, 기념품 살 정신도 없이 각자 귀국을 하게 되었다. 공항 가기에 빠듯했던 오전, 복잡한 오사카 지하철역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한참을 헤맸다. 울기 직전에 이르러서야 큰 캐리어를 들고 공항에 가는 것처럼 보이는 한국인 3명을 발견했다. 두렵고 무서우니 말을 걸 용기가 났다.
"정말 죄송한데요, 길을 모르겠어요. 저 공항에 가야 하는데, 공항까지 같이 갈 수 있을까요?"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같이 가게 되어 안심했다.
모르는 사람과 동행한 이 상황이 불편할 법도 한데, 최대한 어색하지 않기 위해 말을 걸었다. 나로 인해 불편해진 이 상황이 싫었기 때문에 스몰 토크를 최대한 활용했다. 평소에 연예인에 관심도 없는데 친해질 때는 연예인, 드라마만큼 괜찮은 소재가 없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어색함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고, 이들 덕분에 안전하게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너무 고마워서 인증 사진도 함께 찍었다.
오사카 터미널 2로 넘어가야 하는데 이것조차 혼자 가는 게 무서웠고, 또 같이 갈 사람을 구했다. 내가 모르는 사람한테 이렇게 말을 잘 거는 사람이었던가..
혼자가 되니, 두려우니, 용기가 생겼다. 아직도 생각나는 리사 님..
본인은 혼자 일본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는 길인데, 나한테는 왜 혼자냐며 여쭤보셨다. 사실대로 친구와 싸워서 지금 혼자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사과하라고 말씀하셨다. 사과는 빠를수록 좋다는 말도 덧붙이면서 말이다.
여행에서 누구나 싸울 수 있다. 그게 연인이든 친구이든 가족이든 누구든 상관없이 우리는 각자 사고방식이 다르고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싸웠을 때 중요한 것은 화해의 타이밍이다. 화해의 타이밍이 항상 빨라야 할 필요는 없지만 사소한 것일수록 빠른 화해가 좋다. 사과에 인색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사과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겠지만 사과가 때로는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서로에게 조심해야 할 포인트가 어디인지 알게 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여행에서 만난 리사 님 말처럼, 친구와의 여행에서 너무 나만 생각했던 거 같다. 친구가 쉬고 싶을 때도 관광명소 돌아다니기에 바빴고, 쉴 틈을 주지 않았다. 그게 친구에게는 소화하기 힘든 여행이 되었던 것이었고, 결국 나의 행복을 위해 친구는 희생이 되어야만 했다. 내가 조금 더 어른스러웠다면 친구의 기분까지도 생각했을 텐데 그러지 못한 스스로를 반성했다. 그렇게 친구와 나는 빠른 화해를 했고, 다시는 여행을 함께 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