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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gineer Jan 05. 2022

14화 1973 하숙집

지노와 마리아

유라가 독립하면서 우리의 만남이 한결 자유로워졌다. 언니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 유라도 마음이 편한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른 제약이 있음을 발견했다. 유라의 하숙집을 자주 드나들다 보니 주인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생긴 것이었다. 집 구조상 주인이 사는 공간을 통해야 2층 하숙방으로 가게 되어 있어 너무 자주 가면 아무래도 그들에게 불편을 줄 수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한 번은 와인 한 병과 꽃 한 다발을 선물했는데 그 효과는 상당했다. 지노는 와인을 상당히 즐기는 편이라며 내가 준 와인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좋은 선택이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마리아는 내가 꽃을 건네자 수줍음을 감추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했다. 내가 어정쩡하게 서 있자 남편 지노에게,

You too bring me flowers Geno, like Charles~!

Go see Yura Charles. I’ll get you some coffee and cake.

“남편 당신도 찰스같이 꽃 좀 줘 봐라” 

“얼른 유라한테 가요.. 내가 커피하고 케이크 가져다 줄게요… “


이 작은 해프닝 이후로 유라의 하숙집 방문이 편해졌지만 실상은 방문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대신 밖에서 만나는 일이 더 잦아졌다. 유라는 지노와 마리아한테는 편해졌지만 다른 3명의 하숙생들한테는 편치 않았다 했다. 3명 모두 남자 학생들이고 공부에만 전념 하는 타입들이라며 조심스러워했다.  결국 우리의 정기적인 데이트는 금요일 저녁과 주말 오후로 하고 그 외 아무 때나 수시로 만나는 것으로 했다. 금요일 하루 나의 일과는 주유소에서 오후 2시 퇴근, 집에 들러 샤워, 옷 갈아 입고 4시에 학교 수업이 끝나는 유라를 픽업해 함께 지내다가 밤 12시에 그녀를 하숙집에 드롭해 주고 난 스카보로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주말에는 유라도 나도 일주일 동안 밀린 잠을 자고 12시쯤에 만났다. 특히 아침잠이 많은 유라는 주말에라도 늦잠을 자고 싶어 했다.


토론토의 겨울은 오후 4시쯤 해가 기울기 시작하여 5시면 밤이 된다. 금요일 오후에 유라를 만나면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당시 토론토는 월드클래스 도시도 아니었고 대부분의 비즈니스도 6시면 문을 모두 닫는 그런 촌 동네였다. 다행히 차이나타운만큼은 밤늦게까지 영업을 했고 극장도 갈 수 있었다.  유라의 하숙집에선 음식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유라가 알아서 해결해야 했는데 유라는 제대로 챙겨 먹지 않았다. 난 유라의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의 관심사는 자연히 그녀의 건강이었다. 금요일 저녁 나의 임무는 일주일 동안 제대로 챙겨 먹지 않은 유라의 영양 보충을 위해 맛난 음식을 먹게 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토론토의 유일한 한국식당은 코리아 하우스(1)였다. 하지만 음식값이 비싸고 다양하지도 않았다. 그에 비해 중국 식당은 값도 싸고 음식도 다양했다. 여러 중국 식당을 다니면서 중국 음식의 지역적인 다양함도 알게 되었는데 중국 남부 홍콩을 중심으로 한 칸토니스, 북경 중심의 만다린, 중국 서부의 하카, 등등.. 모두들 지역의 특색을 살린 정통 음식들이 토론토에 모두 존재하고 있었다. 그중 우리의 입맛을 가장 즐겁게 한 음식점은 상해 반점(2)이었다. 


던다스 스트리트 남쪽 스파다이나 서쪽 편에 위치한 상해 반점은 토론토 스타(토론토 일간지)가 가장 맛있는 만두 식당으로 선정할 정도로 최고의 만두를 만들고 있었다. 만두 외에 상해누들이라는 중국식 볶음면 또한 최고의 인기 음식이었다. 식당의 구조는 드럼통을 반으로 잘라 위에 둥그런 나무 판을 올려놓은 어설픈 식탁이 6개밖에 없었고 구석 천장에 티브이가 달려있는 허술하고 저렴한 식당이었다. 하지만 아이스하키 경기가 있는 날에는 학생들이 식당을 꽉 채우고 티브이에서 중계하는 북미 아이스하키 리그 경기를 관람하며 흥분과 아우성으로 가득 차기도 했다. 유라와 나도 그 무리에 가세하여 토론토 팀인 메이플립스를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경기가 없는 날에는 식사 후 근처의 중국 영화관으로 가기도 했다.  이 영화관은 홍콩 영화를 2편씩 상영했는데 당시 북미에서 아시아인으로 최초의 전 세계 슈퍼스타가 된 이소룡(부르스 리)(3)이 등장하는 영화는 극장가 주변을 수많은 젊은 들이 모여들어 북새통을 만들었다.  


유라의 하숙 생활이 3개월이 되었을 무렵 유라가 다시 이사를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숙집 이층에서 남자 학생 3명과 사는 게 점점 불편해진다며 빨리 집을 옮기고 싶어 했다.  마침 유라 학교에서 자신과 같은 또래의 여학생을 만나 같이 2 베드룸 아파트를 얻어 살자는 이야기를 했다며 나의 의견을 물었다.  나도 사실 은근히 불편하게 느끼고 있었기에 나도 함께 새 집을 찾아보기로 했다. 


(1) 코리아 하우스 : 1972년도에 다운타운 불로워 스트리트에 오픈한 토론토 최초의 한식 식당. 교민 중에 음식 솜씨 좋은 주부님들이 주방을 운영했고 나름대로 정통 한식을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2) 상해 반점 : 스파다이나와 던더스 교차로에 위치했던 상해 반점은 토론토 스타가 최고의 만두집으로 선정할 만큼 맛있는 만두를 만들던 식당이었다. 선술집 같은 분위기였고 값도 저렴해 주머니 가벼운 청춘들의 영양 보충을 책임졌던 추억의 장소였다. 하지만 음식을 만들던 부모가 은퇴하고 자식들이 운영하면서 더 큰 장소로 이전하고 메뉴도 다양하게 늘렸지만 가장 중요한 맛을 잃는 바람에 오리지널 상해 반점은 사라졌다. 스파다이나 어딘가에 있는 현재의 상해 반점은 그냥 그런 식당일 뿐이다.


(3) 부르스 리 : 1960년대 말 미국 탐정 드라마 그린 호넷에 케이토란 이름으로 주연급으로 출연해 영화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린 호넷은 북미에서 큰 성공은 못했지만 홍콩의 무술 영화에 다수 출연, 1973년에 Enter The Dragon이란 불록버스터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해 아시아인으로 최초의 슈퍼스타가 되었다. 불행히도 1973년 그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그의 할리우드 작품은 Enter The Dragon(1973)과 Game of Death(1978)두 편뿐이다. Game of Death는 영화 제작 중에 부르스 리가 사망하는 바람에 1978년도에 완성되었다. 그의 출연했던 많은 중국 영화에서 여러 장면들을 짜깁기해서 영화가 완성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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