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seille, France (google pic)
마르세유 역은 파리나 리옹의 역과는 달리 대합실이 지저분하고 노숙자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바닥에 누워 있었다. 대부분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들로 보이는데 노숙 생활이 익숙한듯 그들의 눈빛에는 삶에 대한 의지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프랑스 정부는 관대한 난민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끈임없이 밀려 들어오는 난민들의 수가 너무 많아 감당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인도적인 차원에서 마련된 프로그램들 조차 제대로 작동 하지 못해 많은 난민들이 노숙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혼잡한 기차에서 내리면서 잠시 흩어졌던 일행 7명이 모두 함께 모여 역바깥으로 나갔다. 상당수의 택시들이 줄줄이 서 있고 택시 운전사들은 담소를 나누고 있거나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짐이 없거나 한두명의 간소한 승객들만 태우려는 눈치였다. 유럽 어느 도시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근처에서 우리들의 당황스런 대화를 듣고 있던 한 젊은 프랑스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하이! 디스 가이스 온트 테이크 유(저 인간들은 너희들 안태워)..
그녀가 서성거리는 택시 운전수들을 가르키며 말 했다.
자신은 파리에 사는데 일 때문에 자주 마르세이유에 출장을 오지만 택시는 타지 않는다 했다. 이유는 저들은 대부분 부정직하고, 택시안에 카드 결제기가 설치되어 있는데도 현금만 요구하고 우리들 같이 승객수도 많고 짐도 많은 승객들은 절대로 안태운다며 자신은 항상 우버를 이용한다고 우리한테도 우버를 컨택하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마르세유 이스 소 언프렌치” 마르세유는 전혀 프랑스 답지 않아!!
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그녀는 도착한 우버를 타고 떠났다. “마르세유 이스 소 언프렌치” 라는 그녀의 말은 그리 충격적인 말이 아님을 알게 되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일행중에 우버 어카운트가 있는 멤버들이 우버를 검색하는 사이 우리중 가장 키가 큰 로버트가 마침 승객을 내려 놓은 밴택시를 향해 뛰어 갔다. 운전수와 한두마디의 얘기가 오고 가는듯 하더니 우리에게 빨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역 앞에서 서성인지 30여분이나 지나서야 간신히 택시를 탈수가 있었지만 모두들 다행이라고, 잘 생긴 로버트 덕분이라며 넉살을 떨며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쉬었다.
우리가 예약한 래디슨 블루 호텔은 마르세유 항구 바로 앞 번화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항구에는 많은 요트들과 배들이 정착하고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럭셔리 한 니스나 몬테칼로와는 달리 어딘가 어수선하고 고급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라고 알려진 선입견 때문인지 뜨거운 태양아래 밝아 보여야 할 도시의 분위기 마져 음산하고 침울해 보이는 듯 했다. 프랑스 빠리에서 스페인 바르셀로나까지 기차 여행을 계획하면서 중간 포인트인 마르세유에서도 하루 묵기로 했다. 궂이 위험 하다고 알려진 마르세유를 선택한 이유는 나의 오래된 기억 속에 마르세유는 늘 묘한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었다. 스티브 맥퀸이 주연한 영화 빠삐옹에서 그를 포함한 수백명의 죄수들을 실은 배가 살아서는 돌아 올수 없는 감옥, 악마의 섬으로 떠난 항구가 마르세유 였다. 그외에도 마르세유는 여러 헐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데 마약 범죄 실화를 영화한 프렌치 커넥션의 배경도 마르세유였다. 마르세유는 6,70년대 세계 최대의 마약 공급지였고 중동과 아시아에서 생산된 마약들은 마르세유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갔었다. 이렇틋 마르세유는 프랑스 역사 속에 부유하지만 부패와 범죄의소굴이란 오명으로 지속되고 있었다.
BC600여년에 그리스의 식민지로 시작된 마르세유는 로마 시대에 중동 지역과 북아프리카와의 교역이 번창하였고 지중해에서 가장 큰 항구 도시로 발전했다. 16세기 부터 전세계로 펼쳐 나간 프랑스 식민지 정책의 출발도 마르세유가 그 거점였다. 아메리카(캐나다,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 캐러비언, 아프리카 전역, 아시아(월남), 남태평양(보라보라, 타히티 등등) 등등의 식민지에서 착취한 문물들의 대부분이 마르세유를 통해 빠리로 전달 되었다. 인상파 화가 고갱도 이 마르세유를 거쳐 타히티로 이주해 원주민 여인들의 삶을 그린 다수의 작품을 남겼다. 이디오피아가 원산지인 커피도 17세기 중반 마르세유를 통해 빠리의 귀족들에게 전달되었고 차츰 전세계로 퍼져 나가 한반도에는 조선말기 황실에 보급되었다. 고종은 녹차대신 가베차라고 불리우던 커피를 즐겨 마셨고 그를 불면증에 시달리게 만들었었다. 이런 방대한 교역은 마르세유를 지중해에서 가장 부유하고 번창한 도시로 만들었으나 급격한 인구 팽창과 각종 부정부패, 살인, 마약, 매춘 등등의 범죄에 시달렸고 15세기와 18세기에 창궐한 흑사병으로 수십만이 사망하기도 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아점을 먹을겸 거리로 나왔다. 우리 여행의 두번째 도시 리옹에서 2시간 남짓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아침을 건너뛰고 왔기에 모두들 허기져 있었다. 먹거리 찾기에 가장 유능한 다니엘이 약 10분거리에 정통 마르세유 음식을 맛볼수 있는 식당이 있다며 안내했다. 마르세유의 다운타운은 ㄷ 모양의 포구 3면에 거리가 형성되어 있었고 북쪽엔 대형 호텔들과 고급 식당들, 남쪽으론 소규모 호텔들과 비지니스가 형성되어 있었다. 포구 남쪽에 위치한 식당을 향해 걸어 가면서 파리와는 현저하게 다른 인종 구성을 볼수 있었는데 특히 유럽의 대도시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중국 관광객을 전혀 볼수가 없었다. 관광객의 대부분은 프랑스인이나 근처 국가들의 유럽사람들로 보였다. 포구를 둘러 싼 길거리에는 수 많은 노점상들이 끈임없이 펼처져 있었고 노점상의 주인들은 대부분 중동이나 북아프리카 사람들로 보였다. 이들은 중세기 부터 프랑스로 건너 온 오래된 이민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빈곤층을 벋어나지 못하고 있는듯 했다. 다니엘이 안내한 식당은 마침 포구쪽에 야외 식당을 갖추고 있어 그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마르세유 전통 해물찌개 SEAFOOD PLATE
호텔에서 식당까지 십여분의 짧은 거리였지만 위도 43도에 위치한 마르세유의 7월의 태양은 바로 머리위에서 직선으로 내려 쪼여 아주 뜨거웠다. 자리에 앉자마자 모두들 타는 목을 축여야 한다면 마르세유의 로컬맥주를 시켰다. 이름도 기나긴 비어델라플레인스 맥주인데 마르세유의 뜨거운 태양을 식히기에 아주 훌륭한 맥주였다. 항구 도시에 왔으니 해물 위주의 음식들을 주문했다. 그날 잡은 생선들을 올리브 오일, 레몬과 한두가지의 허브를 첨가해 바베큐 그릴에 구운 음식들였는데 맛이 훌륭했다. 특히 오징어는 우리 입맛에도 아주 잘 맞았다. 마르세유 정통 음식인 해물찌개는 말그대로 각종 해물에 토마토와 근처에서 생산되는 야채, 허브등을 첨가해 조리한 찌개였는데 매운 맛만 가미한다면 훌륭한 한국식 매운탕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파리와 리옹에서 주로 육식 중심으로 식사를 하다가 오랫 만에 먹은 해물 요리에 모두들 기분이 좋아 보였다. 마르세유 관광은 오늘 오후 뿐이 시간이 없었다. 내일은 다시 니스로 가는 일정이었기 때문였다. 마르세유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틀담 델라 가드 성당을 방문 하기로 했다. 19세기 마르세유에서 제일 높은 언덕위에 비잔틴과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세워진 이 성당은 마르세유 도시 전체를 내려다 볼수 있어 마치 도시를 수호 하는듯 했다.
실제로 “수호 여신”으로 번역되는 “노틀담 델라 가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마르세유를 점령하고 있던 독일군과 프랑스 군대가 치열한 전투를 벌려 마르세유를 해방시키고 독일을 패망시키는데 불씨를 지핀 장소였다. 성당 내부는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와 수 많은 조각들로 장식되어 아름다움과 웅장함이 돗보였다. 언덕 아래로는 붉은 타일 지붕과 흰색 벽인 지중해 특유의 건물들이 넓게 펼쳐저 있고 멀리 바다 쪽으로는 작은 암벽 섬위에 지어진 성이 눈에 들어왔다. 알렉산더 뒤마의 소설 몬테 크리스토 백작을 탄생시킨 감옥 샤토 디프였다.
노틀담 델라 가드 성당 샤토 디프 감옥
바다 가운데 보이는 작은 섬이 샤토디프 감옥
사실 이 언덕 위에 올라온 이유는 성당보다는 샤토 디프가 보고 싶어서 였다. 몬테 크리스토 백작은 무성영화 시대였던 1910년대 부터 2000연대까지 수십여편의 영화로 만들어졌고 현재도 아마존사에서 시리즈를 제작하고 있다고 한다. 소설에는 에드먼드 단테가 감옥을 탈출하여 1.5 km 떨어진 육지로 향하지 않고 반대편 쪽으로 7.5km나 멀리 있는 섬 티볼렌까지 헤엄쳐 갔다고 되어 있는데 그것이 가능 할런지는 모르겠으나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지형을 볼때 그 이유를 알것 같았다. 소설의 배경인 19세기에 마르세유는 이미 거대한 항구 도시였고 상권과 주거지가 지금처럼 해안가 주위로 형성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쪽으로 갔다가는 탈출범이라는것이 쉽게 발각 될것임으로 7.5키로나 떨어져 있는 반대쪽으로 갔고 거기서 이탈리언 해적을 만나 그의 복수가 성사 되는 계기가 되었다.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언덕길 아래로 내려 가자 길 옆으로 좁은 골목을 따라 작은 상가들이 형성되어 있었다. 일행 중에 이 근처에 특별한 상품을 파는 가게가 있는것 같다 하여 골목으로 들어섰다. 한참을 걸어가도 우리가 찾는 가게는 보이지 않고 상가들은 더 이상 없었다. 가게 찾기는 포기하고 항구로 향하는 언덕진 골목을 따라 내려 갔다. 골목 좌우로 줄줄이 낡은 건물들이 나오며 허름한 옷에 구걸까지 하는 아이들이 여럿 보이고 계단에 앉아 대마초를 피우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였다. 골목 안은 대마초 냄새로 진동을 하고 마약을 투사하고 아무렇게나 버려진 주사기들도 보였다.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었는데 로버트가 내손을 꽉 잡으며 빨리 이곳을 빠져 나가야 한다며 걸음을 독촉했다. 마르세유인들 마저 기피하는 무법지역에 우리가 들어온 것이었다.
길 눈 밝은 다니엘이 앞장 서고 그뒤로 일행이 뒤 따랐다. 아무도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모두들 두려움에 가슴 조리며 걷고 있었다. 그런데 골목은 좁고 건물들이 사방을 가려 어느쪽이 항구인지 알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한테 물어볼수도 없고 그저 아래로 향하는 골목으로 이리저리 돌며 길거리 사람들 누구와도 눈길을 맞추지 않으려고 앞만 보며 걸어 갔다. 옆으로 급하게 꺽인 골목을 돌자 허름한 건물 앞에 속살이 비치는 옷만 대충 걸친 여자들이 여러명 서 있고 건물 안쪽으로는 덩치 큰 남자들이 서너명 보였다. 여자들이 음흉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이미 공포와 두려움에 떠는 우리들은 고개조차 돌리지 못한채 더 빨리 걸음을 재촉했다. 갑자기 대 여섯명의 아이들이 건물에서 우르르 나오더니 손을 내 밀고 떠들며 우리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여기서 빨리 벋어 나야 하는데 아이들까지 합세 했으니 상황은 더 난감했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떼어 버려지….. 동전이라도 줘야 하나 라는 생각이 떠 오르며… 순간 아이디어가 생각 났다. 나는 얼른 주머니에서 동전들을 꺼내 로버트에게 건네주며 동전을 모아 아이들한테 주는 척 하다가 땅에 흘리라고 말했다. 여섯명 일행의 주머니 속에는 꽤 많은 동전들이 있었다. 로버트가 동전을 모두 모아 아이들 한테 주는척 하다가 땅에 떨어트렸다. 우르르 동전들이 떨어지며 여기저기로 굴렀다. 아이들은 와 소리치며 동전을 줍기위해 이리저리 뛰었다. 뒤에서 차이니스 어쩌구 하는 남자들의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저 속으로 제발 우리한테 가까이 오지만 말아라 하는 심정으로 무조건 앞으로만 빠르게 걸어갔다. 발코니가 반은 무너진 건물을 지나자 갑자기 앞이 환히 트이면서 마르세유 항구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OMG !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내 뿜었다.
마르세유! 이번 여행에서 가장 가슴 조린 기억을 선사한 도시. 잘 있어라.. 오르봐!
** 브런치에서 사진 포함한 글쓰는 요령울 몰라서인지 사진 배열이 원본대로 옮겨지지 않아 전체적인
글의 모양새가 좋지 않습니다. **